[세트] 황금종이 1~2 세트 - 전2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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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종이 : 인간의 욕망이 뒤얽힌 씁쓸한 자화상
 
 
대가의 작품을 신간코너에서 발견하게 되는 서점행은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어린 시절 우상 같던 록스타들이 마약이나 약물중독이 아닌 노환과 질병으로 유명을 달리하는 뉴스를 볼 때마다 나이를 먹는 자신을 발견한다.
머리에 서리가 내린 인터뷰 속 무라카미 하루키를 바라보며 문득 거울 속 내 머리카락도 하얗게 몇 가닥 변했나 헤아린다.
 
한국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몇 권의 소설이 있는데 조정래 작가의 작품들은 대다수가 목록에 포함되어 있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손자와 찍은 사진의 웃음 가득한 모습이 세월의 또다른 행복으로 남겨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신작이 서점 메인 페이지에 장식되고 독자들의 설레임을 가져오는 장면은 그만큼의 몰입과 끈기가 있어야 하는 작업이기에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거대한 역사의 증인으로 작품을 만들어왔다면 이번에는 결을 달리하며 현대사회가 가진 욕망과 이를 쫓는 인간 군상의 비루함을 읽기 좋게 써 내려갔다.
 
MZ세대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이질감 많은 소재와 배경이지만 작가의 색을 유지한 채, 그들에게도 소통의 창구를 열어놓을만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어 다행스럽다.
 
정치와 종교가 인류의 2대악이라면 여기에 돈을 추가해 3대악이라고 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인공 변호사의 읊조림은 2023년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현재 시점에도 유효하다.
 
잘못된 정보와 판단으로 부동산 급등 시대에 영끌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키며 너도 나도 아파트 매입에 열을 올렸지만, 치솟는 금리에 빈털터리가 되어 끔찍한 선택을 한 이들이 뉴스가 한 켠을 차지하는데 다음 경제면으로 넘어가면 청년 지원금 성격의 저이율 이자로 내집 마련의 기회가 생겼다는 소식이 실린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언론의 펜 장난인가?
이렇게 되면 집을 사야하는건지 팔아야하는건지 경험 많지 않고 돈 주머니도 넉넉치 않은 서민들에게는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를 던져 놓고 은행권만 배불리는 모양이 된다.
 
다른 나라에 비해 답 안 나오는 개인부채 규모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심성 정책인 듯 대출완화를 해준다면 책임은 누가 질 것이며, 이런 내용을 여과없이 정부의 나팔수가 되어 기사를 써버리는 언론은 책임은 없는지 답답하다.
 


법에도 명시된 임대료 인상 폭을 무시하고 4배나 올리겠다고 생떼를 쓰는 건물주의 폭거는 이런 사회적인 무질서함과 뻔뻔함을 뒷배로 가질 수 있다.
힘없는 세입자가 내려친 망치에 머리가 깨지고 나도 황금종이에 대한 갈망은 없어지지 않을 테니 답도 없는 문제다.
 
가족 간의 우애가 상하고 친구와 단교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고가는 돈의 존재는 결국 인간의 욕망과 결집되어 오랜 역사동안 지배-피지배의 형태를 유지했고 겉모습만 이름만 변형된 채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돈 앞에서는 고인에 대한 부끄러움도 내던지고 형제가 머리를 잡고 싸우고 소송에 나서는 일이 자연스럽고 당연할 일이 되었듯,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선서를 하고 법관의 옷을 입은 이들이나 국민을 위한 공복을 하겠다며 금뱃지를 단 사람들도 결국 돈을 추구하고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뜨거운 청춘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던 시절, 운동권의 동지애로 뭉쳐진 이들도 시간의 퇴적 속에서 자기만을 위한 권력 다툼에 빠진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요즘 대한민국에게 저자가 내세운 정의감 넘치는 인물들의 모습은 그저 이상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 자괴감만 든다.
 
짧은 에피소드 속에 묻어나는 돈에 대한 진저리나는 싸움은 거대한 인류의 진보가 욕망에서 시작된 것인만큼 우리의 본연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틈바구니에 끼어들어가는 행위를 우리는 현명함이라고 불러야 할 지 모르겠다.
 

짧은 에피소드의 호흡이 대하 소설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는 못마땅한 부분이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흥겨움만으로도 신나는 독서의 두 권이라고 생각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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