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아트북 : 크리스토퍼 놀란의 폭발적인 원자력 시대 스릴러
제이다 유안 지음, 김민성 옮김, 크리스토퍼 놀란 서문 / 아르누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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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아트북 : 작가주의 영화에서 발견하는 모두의 땀방울과 결과물들
 
 
 
 

 
두 번의 폭격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았나?
민간인 희생이 끔찍한 결과를 보여주었다고 한들, 범죄국가에 대한 가혹한 처사는 가능 범위 내에 있다.
대신 원자탄의 위력을 맛볼 뻔했던 독일이 보여준 역사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철저한 반성과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은 너무 먼 곳에서 멈춰 서서 1945년도의 흉포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직도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의 손에 쥐어 준 무기의 응징으로부터 자신은 피해자라고 우기는 그들에게는 그래서 두 번이 아닌 더 많은 폭격으로 국가소멸 단계에 들어가고 그들이 천황이라는 부르는 왕가의 몰락과 처단이 있었어야 했다는 과격한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맥아더의 일본 사랑과 한반도 전쟁의 악몽이 없었다면 바른 생활 국가로 얌전한 모습을 보이며 현대를 살아갔을까?
 
인류의 손에 쥐어지지 않았어야 할 무기를 개발했다는 자책감으로 노년의 삶을 피곤하게 살아가게 된 원자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는 일본이라는 패전국의 프레임으로 한정 지어 생각한다면 한국 사람이라면 영웅이라고 극찬의 박수를 쳐도 좋을 것이다.
한 국가의 소중한 주권을 짓밟고 유린한 오만한 국가가 백기를 들게 만드는 유일한 무기였으니, 정치와 군부의 기묘한 결합으로 자국민들을 더 피폐하게 만들어간 리더들을 감안하면 일본 국민들에게도 다행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놀란 감독의 신작이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을 제한하는 대신, 역사의 커다란 페이지 변환을 일으킨 한 인물과 프로젝트에 집중한다는 기사를 보고는 솔직히 실망을 했었다.
아직도 100% 이해가 되지 않는 전작 “테넷”처럼 흥미와 지적 집중을 요구하는 영화가 또 한편 등장해 주길 기대했지만 현대사의 따분함 속에 작가주의는 요원하지 않겠는 가라는 의구심이 들었고, 개인적으로 “덩케르크”를 워낙 재미없게 감상했던 지라 실망은 한층 깊어 졌다.
 


감독에 대한 예의상 긴 러닝타임을 감안하고 개봉일 극장을 찾았지만, 막상 영화를 마치고 화장실로 달려가면서 1시간 30분짜라 순삭 영화를 본 느낌은 기묘했다.
분명 시간상이나 러닝타임을 알고 있음에도 지루한 부분은 거의 없었고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스토리조차 새롭게 느껴졌으며, 원폭 테스트 장면의 긴장감은 현장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의 위기상황에 몰입될 수 있었다.
 
컬러화면과 흑백화면의 분리를 통해 사건을 바라보는 두 인물의 팽팽한 긴장감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손꼽는 “JFK”의 숨막히는 편집 솜씨가 재현된 느낌도 들어 좋았다.
영화 블루레이가 출시되기 전에 아트북을 통해 영화의 장면들과 촬영현장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되어 즐거움은 배가된다.
작가나 감독 모두 처음 생각보다 영화의 규모가 커지는데 약간의 놀람이 있었다는 부담감을 토로하는 장면에서는 헛웃음이 나오긴 했지만 말이다.
(감독 특유의 스케일을 본인이 모를 리가 없잖은가.)
 

무엇보다 영화 뒷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갈등관계를 구성하게 된 계기였다.

알다시피 스토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갈등관계에 인물을 배치하는 과정이다. 수소 폭탄의 아버지이자 극 중에서 오펜하이머에게 굴욕을 당하고 재판과정에서 독소를 날릴 정도로 대척점에 있던 두 사람이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객관적 사실을 떠나서도 흥미로운 배치였겠지만 놀란은 색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스트로스”라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등장시킨다. 해군제독이자 백만장자였던 그의 등장은 서로 대단한 한 방을 주고받았던 사실뿐 아니라 영화 곳곳에 갈등의 과정을 삽입하여 플롯이 상승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두 인물의 연기력은 더욱 관계의 대척점을 강조하였고 고고한 학자와 철저한 속물이라는 평범한 캐릭터를 매력덩어리로 바꾸어 놓았다.

마블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연기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도 아마 이 영화는 최고의 선물이었으리라.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인 “가젯”은 생김새는 물론 가공할 위력을 내재한 상상력을 포함시켜야 하기 때문에 제작진에게는 꽤나 부담스러운 소품이었다.

사실성을 제대로 표현해야 하는 조건은 기본이고, 32미터나 높은 고도로 올려야 하기 때문에 무게까지 신경 써야 했다. 눈 높은 관객들에게 폭탄에 플루토늄 코어를 올리고 마지막 봉인하는 장면 하나 하나에 실제감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은 프로페셔널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세상이 바뀌는 날, 폭발 실험이 성공하는 장면은 아이맥스 화면에 실제 폭탄이 터지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일부 영화 팬들은 기대에 못 미친 연출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개인 의견으로는 오히려 실제와 더 가까운 장면이지 않았을 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폭발 직전과 직후 배우들이 보여주는 긴장감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연결된 시퀀스야 말로 당시의 감정과 느낌을 가장 확실하게 표현하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주면 예약했던 “오펜하이머” 4K블루레이가 도착할 예정이다.

폭발하는 화염 앞에 당당히 서있든 킬리언 머피의 깡마른 커버가 스틸북으로 정성스럽게 제작된 영상물로 기대된다. (그의 키가 175cm밖에 안된다는 놀라기도 했다. 큰 키라고 봤는데 말이다. 심지어 “28일 후”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유니버셜의 공식 마지막 물리매체로 판매되는 슬픔이 교차되는 영화로 오펜하이머가 선정된 점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앞으로는 놀란 감독의 물리매체에 한글자막이 실리 않게 된다는 아픈 현실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영화를 감상하며 아트북에서 읽은 배우와 스탭진의 노력을 스크린으로 감상할 즐거움이 기대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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