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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은유하는 순간들
김윤성 지음 / 푸른향기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여행이 은유하는 순간들 – 사색과 구도를 위한 공간으로의 여행
여행 갈 돈이면 맛난 거 사 먹고 책이나 한 권 더 사는게 효과적 아님?
오래전부터 가성비의 효능에 대해 공감을 했던 터라 같은 비용이라면 조금 더 오랜 기간 동안 소유하고 즐길 수 있는 방향을 지표로 살아온 인생이다.
몇 백만원 들여서 여행 가봐야 사진만 남을 뿐이지, 차라리 노트북을 쌩쌩 돌아가는 놈으로 골라라!
Sting 공연은 좋은데 10만원? 라이브 음반을 한 장 사고 다른 음반도 사면 10년은 즐거울 꺼야.
이런 식의 선택 방식이었다.
당연히 정답은 없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친구와 단 둘이 떠난 묵호 항 겨울 바다 여행, 폭설로 이틀이나 발이 묶여 여관방에서 뒹굴 뒹굴 했던 안 좋았던 추억도 패턴을 공고히 하는데 한 몫 했을 것이고.
직장 다니며 내 집 마련하는 게 더 급했고, 아이 좋은 유치원 보내는 게 더 중요했으니 국내 여행으로도 좋았다.
Dream Theater의 공연을 처음 예매하는데 대성공을 거두어 맨 앞 열에서 관람을 하게 되었다. 2008년 1월이다.
음반과 블루레이 디스크에서 듣고 보던 강렬한 음악을 정확히 1m 앞에서 볼 때의 감동은 그동안 살아왔던 가성비가 잘 못 측정되었다는 천청벽력.
여행도 마찬가지.
회사 돈으로 즐겁게 떠난 1박 2일 오사카 비즈니스 여행은 다른 이들처럼 관광지를 유람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일상적인 하루를 뒤쫓는 추격전이다 보니 생활의 방식과 사고하는 틀이 어떻게 다르고 유사한지, 도시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책이 아닌 눈으로 보며 - 서울이나 오사카나 다 사람사는 동네 네....- 하는 또다른 경험과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사진에 담긴 뒷골목의 어두운 풍경과 명소로 알려진 다코야키 가게의 마지막 손님이 된 장면은 사진과 머릿속 기억의 합성으로 가성비가 우수한 경험으로 결론이 난다.
삶의 방식이 변곡점을 맞이 한.
직장에 메인 몸이고 아이 교육비로 인한 금전적 여유를 고려는 합시다.
그러나, 여행은 앞으로 남은 시간 또 하나의 사색의 공간으로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강한 믿음.
일단 책으로 연애를 시작해 봐 야지. 여행이라는 연인과.
여행 도서를 읽을 때 즐거운 마음은 이런 배경을 가지고 콧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저자가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30여국 100개 도시 세계 곳곳을 다니는 이력을 보니, 나도 모르게 시샘이 흘러나온다.
여행 에세이.
이런 류의 책이 마음에 든다.
어차피 당장 내일 로마로 떠날 것이 아닌 만큼 로마 시내의 여행코스나 맛집 리스트를 찾는 것 보다는 로마라는 도시의 인상이나 여행가가 겪는 소소한 일상의 엿보기 같은 부분이 더욱 와 닿는 편이다.
책 제목처럼 여행의 한순간이 인생의 어떤 시간이나 부분을 은유하고자 "매칭"하는 작가의 노력과 시선에 동질감을 느끼고 싶은 탓이다.
목차에 나열된 도시 리스트만도 봐도 입이 딱 벌어진다.
스웨덴
아이슬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영국
독일
이태리
볼리비아(!)
몽골
일본
캐나다
볼리비아 같은 나라는 뜻밖의 선택이다.
사실 어디 붙어있는지도 몰라서 네이버 지도를 검색해보고 서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들이야 좀 낫겠지만 혼자 어슬렁거리며 다니기엔 부담스러운 텐데 용케 찾아갈 수 있었나 보다.
이미지 좋기로 기대했던 나폴리에서 곤경에 처할 뻔한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외로 안전이라는 문제는 여행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나라는 관광자원에 조금 더 박차를 가해 지금도 잘하고는 있지만 보다 풍성한 볼거리와 체험할 수 있는 컨텐츠 개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맨날 한복 입고 고궁 체험하는 거 말고.
마르게리타의 원산지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피자를 먹고, 뻥 뚫린 지붕만큼 붕괴된 지방정부의 무능함을 생전 보지도 못한 여행가의 기록으로 알게 되고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퍼져 나갈 것이다.
나폴리는 가지 마라. 과거만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 볼 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위험해. 피자는 피자헛에서 시켜 먹어.
부모 품을 떠나지 못하는 아이 같은 나폴리는 내 머릿속에 있던 이미지와 대체되어 평생 복구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소녀는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부딪히게 될 위험 보다는 강렬한 것이겠다는 생각을 깨닫게 해준다.
저자는 현자를 만난 양 소녀를 한껏 치켜세웠고, 불안함의 그늘을 여행에서 뽑아낼 방법을 고민하던 나 역시 때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끈다.
히이 하이킹을 할 때 방법을 알고 있던 소녀와 그저 단순히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어른 사이에 실질적인 안전망이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말이다.
헉헉거리며 고산지대의 어려움을 이겨내야 했던 볼리비아 이야기는 최근에 읽었던 다른 여행에세이에 등장한 마추픽추의 페루와 함께 잉카의 화려했던 문명을 꼭 한번 찾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끄집어 낸다. 욕망이 되어버릴 것 같다.
남들은 자주 가지 않는 다소 한적한 여행지에서 살아가는 사색을 얻고자 하는 저자의 여행은 그저 경험을 쌓고 이색적인 관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직장생활에 지치고 도시생활에 갑갑함을 느낀 현대인이 새롭게 삶의 활력소를 찾는 방법과 구도자를 자신의 내면에서 찾겠다는 간절함이 뒤엉켜 있는 모습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깊은 수렁으로 떨어져 버린 우리나라의 관광 종사자들은 이런 다른 유형의 관광객에게 어떤 컨텐츠를 들이 밀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실천할 수 있는 변화의 시기로 재생산 되었으면 좋겠다.
자, 짐을 싸기 위해서는 먼저 통장 잔고를 확인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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