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상담원, 주운씨. - 진상은 자기가 진상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쁜 사람이란 거다.
오래전 모 홈쇼핑 상담원과 크게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
무더위가 시작되고 갓 태어난 아이가 산후조리원에서 나오기 전 날 토요일에 에어콘이 배송 설치될 예정이었다.
아침부터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오후가 훌쩍 지나가도 연락이 없어 문의했더니 설치가 연기되었 단다.
뭐라고?
설치 기사가 전날 며칠 늦어질 거라고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안 받았다는 설명.
휴대폰 전화기록이 없는데 뭔 소리냐며 항의를 하였고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관리자까지 바꿔줘요! 상황이 되었다.
신생아 여름에 덥지 않게 하려고 보름전에 구매하고 1주일 전부터 게시판과 전화를 통해 설치 날짜를 딱 맞춘 건데 핑계만 대고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알고 있다.
콜센터는 누가하나 책임지고 보상을 하거나 늦게 라도 당일 설치를 해줄 권한도 없고 능력도 없다는 것.
전쟁의 총알받이. 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다 취소하라고 성질 내고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 당일 삼성플라자에서 익일 설치 약속을 해주는 바람에 문제는 해결했다. 고마워요!)
독하게 마음먹고 클레임을 걸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지만 그거 쉽게 되는 거 아니다.
콜센터 관련된 업무를 해보았고 지금도 가끔은 악마같은 고객들 상대하는 유통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소위 진상 짓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문적인 지식까지 연마하여 괴롭히는 고객도 있고 밑도 끝도 없는 억지를 부리는 사람도 엄청 많다.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같은 이야기를 무한 반복한다.
잠깐 주말 당직으로 콜상담을 해본 적도 있는데, 대부분의 고객들은 서툰 상담일지라도 이해해 주고 문제를 삼지 않는데, 끝없이 자기 주장만 하고 혼자 답답해하는 고객도 몇 명 보았다.
이야기 좀 들어 보시라니 까요! (사실 이렇게 성질 낸 적이 두어 번 있고 마무리는 잘 해서 컴플레인을 받지는 않았다~)
책에 등장하는 수박을 제수용으로 사용하고 맛이 없다며 환불하는 고객은 부지기수고 심지어 유통기한 초과된 제품을 새로 주문한 상품과 바꿔 치기 한 후 성질 부리는 고객도 있다 한다.
유통기한 관련된 건은 해당 유통사가 벌금 꽤나 크게 얻어 맞는다 심각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강짜를 부리는 것이다.
교통사고 관련한 나이롱 환자도 이런 진상 고객 아니겠는가?
그나마 이쪽은 형사고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있으니 다행이지만.
뚜렷한 미래계획 없이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된 저자는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쉽게 때려 치고 나오고 후회하고 하는 일을 반복한다.
당장 필요한 소득을 위해 콜센터라는 3개월짜리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한 일을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5년이 지나갔는데. 일이 만만치 않음에도 그건 적성에 맞았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참고 참고 참고)
콜센터 일은 사실 사람 성향을 많이 따라간다.
Inbound 또는 Outboud의 분야 선택도 성향을 반영한다.
상품을 구매하거나 추가적인 서비스를 받기위해 전화를 걸게 되는 Inbound는 직접 영업을 하고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취하는 형태가 아니다 보니 금전적이나 업무적인 안정감이 있다.
하지만 고객의 비위를 맞춰주거나 무리한 요구를 해결하는데 애를 먹기도 한다.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 가는 것이다.
Outbound는 공격적인 영업을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욕심이 많은 유형이 지원하게 되는데, 직접 대면 영업보다는 언어의 유희를 통해 사람에게 어필할 자신이 있다면 꽤나 짭짤한 비즈니스 영역이다.
인사를 건네자 마자 바뻐요 하고 끊거나 때로는 쌍욕을 하고, 걸자 마자 통화를 끝내 버리는 일에 내성만 생긴다면 해볼 만하다.
콜센터의 영역은 AI의 등장으로 어쩌면 일자리로의 가치가 축소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인간적인 감성터치가 이루어지는 분야라 일상적이고 루틴한 업무 성격이 아닌 분야에서는 앞으로도 유효한 일자리가 될 수도 있다.
콜센터가 특히 저자가 근무하는 Inbound 영역은 내가 일이 신나서 하거나 계약을 많이 따내서 인센티브를 받는 분야가 아니다 보니 수동적이기도 하고, 하루 하루 정해진 할당량을 쳐내는데 모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주말 근무 라던가 실수를 해결하는 과정 등 상담원 입장에서 따분하고 불만이 가득한 에피소드가 자주 소개된다.
그리고 막돼먹은 고객들의 적나라한 모습들도 보여준다.
요즘은 상담원의 인격을 보호하기 위한 캠페인이나 법적인 장치들이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어 예전만큼 진상 잔혹사가 펼쳐 지긴 어렵겠지만, 그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말 한마디라도 도움을 준 상담원에게 건 낼 수 있는 여유가 점점 없어지는 우리의 자화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5년간 일을 한 콜센터를 떠나며 저자는 작가로서의 길을 선택한다.
그 결실로 이 책이 나온 것 같다.
"나름대로의 목표를 삼고 팀장의 멋진 제안도 뒤로 한 채 10년의 세월에 발목 안잡힌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콜센터의 실질적인 업무와 그들이 하루를 살아가는 일과를 에세이처럼 부지런히 써간 모양새를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12월 25일 티켓 2장을 잘 못 취소하여 애를 먹었던 이야기는 고객 입장에서도 상담원 입장에서도 난처한 상황이었으리라 안타까움이 있었다.)
콜센터 관련 업무를 한다리 건너 편에서 협업을 하며 내가 바라보았던 상담원의 일상과 업무.
관리자와의 관계와 갈등, 그리고 싸움.
병* 같은 고객 + 나쁜 고객들.
그러나 오늘도 대한민국의 콜센터는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분주히 통화가 이루어진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상담원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