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의 결국은 말입니다
강원국 지음 / 더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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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결국은 말입니다 : 말하기가 어렵다면 말하기 잘하고 싶다면.
 
 
 
비즈니스 세계에서 협상은 성공 요인의 50% 이상 역할을 차지한다.
제 아무리 상품이나 서비스가 탁월해도 가격이나 판매조건, 사후 지원 등 세일즈에 동반된 제반사항은 협상을 통해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직장생활의 반은 이런 협상 업무가 메인이었다.
특히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제휴 업무는 나만 잘되면 곤란하고 상대방도 충분한 혜택을 가져가야 성립되는 관계이기 때문에 협상은 더할 나위 없이 업무의 관건이었다.
 
나름 성황리에 마무리된 사업들이 많았고, 가끔 충돌이 난 부분들은 어찌 어찌 해결되었기 때문에 업무 커리어에 대한 자신감은 남 달랐다.
5년 정도 공백을 가지고 다시 업무로 복귀했을 때, 이상하게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과거의 방식은 통하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새롭게 접근하거나 조건을 변경해도 뜻 대로 마무리가 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한참 지나서야 깨달은 건, 사실 내가 능력이 탁월해서 성공리에 업무를 진행했다기 보다는 그저 포지션이 갑질까지 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였을 뿐이고, 5년의 시간 동안 회사의 역량과 상대방에게 주는 매력도가 줄어들었기에 협상이 난항을 겪게 되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말로 하는 협상에서 나 자신 스스로 매력 넘치거나 카리스마로 뭉쳐진 상황이 아니었고 오히려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하거나 논리의 허점도 많이 드러내는 단점이 있다는 차디 찬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협상을 위한 말하기는 오랜 단련이 필요했고, 실전의 경험이 어우러져야 했음에도 나는 그저 상황이 유리했기에 내뱉는 대로 따라오는 상대방을 무시하고 본인의 강점과 약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세월을 흘려보낸 후회로 반성을 하기에 이른다.
 
그 이후 말하기와 쓰기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어가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하지만, 이미 직장생활에서 가장 활동성 강한 시기를 지나다 보니 새로 입력되는 정보와 조언들은 실행력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실을 맛보기 어렵다는 서글픈 장면에 이르기도 한다.
 
말하기의 중요성에 대해 작가는 다양한 관점에서 사례와 원칙을 전달하며 스스로 방법을 찾아갈 조언을 아낌없이 나누어 준다.
 
4개장을 통해 어떻게 말하기를 향상시키고 나의 주장과 미래를 확보해 나갈지 기대해보자.
말을 잘 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청하는 마음자세를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
작가가 맨 앞 꼭지에서 듣기를 잘하는 주문으로 시작하는 이유다.
4가지 노하우를 알려준다.
1.상대가 하는 말의 줄거리를 몇 개 단어로 정리하며 듣기
2.의중을 헤아리기
3.맞장구 치며 듣기
4.내가 할 말을 준비하며 듣기
실제 개인 경험을 떠올려보면 표면에 드러나는 말에는 집중하지만 상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제스처나 목소리 톤, 얼굴 표정 등에는 무관심했다. 화자가 말하는 진짜 목적을 잘 못 이해할 수도 있는 방식이다. 그냥 듣는 “Hearing”이 아니라 새겨듣는 “Listening”을 하라는 주문은 결국 말 잘 하기 위한 첫번째 발자국이다.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거나 자기 주장을 펼쳐야 할 때 평상시 준비자세가 필요하다.
어떤 질문을 해도 턱턱 답을 내놓은 사람을 보면 우와 감탄하지만 나름대로 철저한 준비가 있다는 이면의 상황을 이해하고 나 역시 같은 준비를 해야 한다.
물고기를 잡는 요리사 이야기로 쉽게 설명을 한다 미리 쓸 물고기를 잡아 놓는다면 낚시가 취미활동이 되지만 요리할 때 필요한 물고기를 낚으러 가면 일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
평상시 독서와 사색으로 나 지식과 감상과 주장이라는 큰 못을 만들어 놓는다면 누가 훅 들어오더라도 평상시 자신의 의견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답안을 입으로 꺼낼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준비활동을 나만의 “어록”을 만드는 과정으로 표현한다.
 
말의 분량을 늘려야할 때가 있다. 주어진 시간이 생각보다 길거나 원래 하려던 말의 준비가 부족할 때 진땀이 나는 상황에 닥친다. 
작가가 제시하는 팁은 평범하지만 제대로 써먹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이런 준비도 결국 나만의 말하기 공간을 확장하나는 평상시의 준비자세다.
1.의례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을 준비하라
2.앞서 말한 사람의 내용에 덧붙여 말한다. 무임승차 느낌이다
3.다방면, 다각도로 확장해서 말하라 정치사회적 측면뿐 아니라 문화외교적 측면까지 고려하면 된다.
4.범위를 확대한다
5.구체적으로 말한다
6.부연 설명을 자세히 한다
7.반대 의견을 소개한다
8.자신이나 현재로 국한시키지 않는다
9.인용하자
10.열거 개수를 넉넉히 늘리지, 바로 지금 10가치 법칙처럼.
 


알맹이 없이 기법으로 시간만 늘리는 일은 사실 의미 없다. 부득이 하게 시간을 채우더라도 나 머릿속 곡간이 충분하다면 단점을 상쇄할 수 있다. 부지런히 채운 두뇌에서 지혜가 나오고 위기 탈출도 가능하다.
 
말하기의 근간은 인간관계라는 주장은 핵심을 꿰뚫는 대목이다.
말하기는 결국 다른 사람과 의견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양측에 도움이 되는 목표점을 지니게 된다. 남을 너무 의식하고 기대하고 나 스스로를 비교한다면 세상 있지도 않는 틀 안에 자신을 가둔 채 굶어 죽기를 바라는 새의 비참한 말로를 겪을 수도 있다.
적정한 선이라는 밸런스는 쉽지 않은 과제지만, 어려울 수록 스스로 자제하고 줄타기를 잘한다면 조금 더 건설적이고 미래를 지향하는 관계를 통해 말하기도 훌륭하게 소화해낼 수 있다.
 
말 잘하는 사람의 특징을 살펴보는 작업은 필요가 있다면 누구나 접근하기 쉽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듣는 능력만 키워주었지 질문하는 능력은 배제시켰다.
요즘 아이들은 과거와는 달리 토론과 질문 대답을 유연하게 구사하지만,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본다면 그 녀석들이 컸을 때 지금처럼 호사로운 분위기를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MZ들은 꼰대라고 비꼬는 상사의 무례함에 분노하지만 그들 내부에서도 이런 꼰대 문화는 마치 대한민국 전매특허인양 당연시되기도 한다.
체면을 중요시하는 성격은 전세계 1인당 사치품 소비순위 1위를 굳건히 지키는 이유기도 하고, 수업시간이나 회의시간에 질문 잘 못 하나 던지면 온 참석자에게 눈총 받는 일을 두려워하는 상황으로 몰린다.
하지만, 질문을 통해 몰랐던 사실을 확인하여 지식의 창을 넓히고 대화에 물고를 트면서 침묵을 깨뜨리고, 진심으로 마음을 통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효용성에 주목해야 한다.
 
팀장의 중책을 맞고 팀원들의 맹렬한 업무에 활력을 주기위해 요청한다. 
“내가 하는 일에 문제가 있거나 틀린 부분이 있으면 바로 지적해줘, 절대 뭐라고 안 한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제대로 하고 있지 않는 부분이 발생하면 알려줄 누군가가 필요해.”
회의 시간에 신명 나게 설명을 하고 있는데 고개를 누군가 갸우뚱하면 “뭐가 문제지, 지적을 해 봐, 뭔 데?” 협박조로 언성이 높아진다.
이러니 제대로 된 비평이나 문제점 파악이 될 리 없다.
작가의 직장생활에서는 정반대 상황이 있었다고 한다. 누구든 비판하고 잔소리하는 걸 좋아 할리 없다. 하지만 100% 내가 맞다고 확신할 수 없는 게 직장의 비즈니스라면 지적질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활기찬 비판과 소통이 내게도 득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 독으로 생각하고 잔소리꾼은 저 멀리 부서로 발령을 내버린다.
 
책에는 다양한 소재로 우리가 말을 못하는 이유가 적나라하게 열거된다.
또한 이런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한 작가의 원칙과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작법책이나 말하기 교본으로 책을 선택했으면 아차 싶을 거다.
교과서과 아닌 수필 냄새가 책에서 모락 모락 피어오르니 말이다.
어쩌면 말하기 교본이 필요해서 책을 집어 들었다면 그대로 내려놓지 말 것을 권한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상황이고 이를 극복해내지 못한다면 어떤 교본을 완독하더라도 만족할 결과를 내지 못한다.
확실한 말 못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들어보고 살펴보고 나만의 방법을 만들어갈 수 있는 조언가가 필요하다 그럲잖은가?
급할 거 없다.
당장 다음주 회의 시간 말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라지만, 많은 사람들이 빠져서 허우적 대는 늪에서 능히 빠져나올 방법을 페이지를 넘겨가며 확립시킬 수 있을지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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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판매원 호시 신이치 쇼트-쇼트 시리즈 2
호시 신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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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판매원 : 다시 돌아온 쇼트 쇼트 SF의 대가, 반갑습니다!
 
 
 
장편소설. 손바닥 장자를 써서 아주 짧은 소설을 일컫는다. 단편소설보다 짧은 소설이다.
긴 스토리를 가진 장편소설과 헷갈리기 때문에 엽편소설이라는 용어로 불리기도 하지만 국내에는 이런 스타일의 작가가 많지 않아 생소하다.
일본에서는 쇼트 쇼트 소설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이처럼 짧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가가 오늘 소개하는 호시 신이치가 최초는 아니지만 활성화된 장르나 형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보니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가 많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TV 드라마를 들여다보면 파생된 작품들이 눈에 띈다.
국내에도 많이 소개된 일본의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에는 호시 신이치의 작품을 각색한 에피소드가 많이 등장한다.
미국 드라마에는 “환상특급(Twilight Zone)”이나 “어메이징 스토리”같은 작품들이 괘를 같이 한다.
 
원고지로 40매 이하의 짧은 이야기지만 상상력과 재빠른 내용 전개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지만 마음을 울리는 강도는 걱정할 필요 없다.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몇 페이지 안되는 분량에도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작가의 작품들은 1000여편이나 되는데 짧지만 수량으로 승부를 본다.
가끔은 이 책에 등장하는 타임머신 타고 공룡 잡으러 가는 에피소드처럼 시시한 작품도 분명 있지만 전체 작품들이 중타 이상은 나오니 기대를 가져도 좋다.
 
십여년 전에 플라시보 시리즈라는 형태로 작가의 선집이 33권 출판되었지만 한동안 재발행 되지는 않았다. 열 권 좀 넘게 소장하고 있는데, 어떤 책은 중고시장에서 저렴하게 구할 수 있지만 몇몇 권은 꽤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어 두어 권 판매한 경우도 있었다.
 
새로 출판되면서 번역도 매끄러워지고 새 종이에 빛 바랬던 등장인물들이 나타나니 기분도 좋다.
작가가 유명을 달리한 시기가 21세기를 눈 앞에 둔 때였으니,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사물이나 사회의 모습은 꽤 오래된 내용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래를 예견한 장면들에 꽤나 예리한 미래예측을 엿볼 수 있고, 요즘 나오는 SF소설이나 영화처럼 과학 고증에 심혈을 기울이지는 않았지만 상상만으로도 책 읽는 맛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여러 편 만날 수 있다.
사실 SF작가로 소개되고 있지만 일상생활 속의 재기 넘치는 소설도 여럿 만날 수 있으니 기대를 가져도 좋다.
 


현재 3권 출시된 시리즈물중 “사색판매원”은 2번째 볼륨을 갖고 있다.
손바닥 소설에 맞게 하려고 판형을 짜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 줄의 문장 길이가 짧아 읽기는 편한데 좀 아쉬운 느낌이 든다. 플라시보 시리즈 때는 아예 크기가 작은 출판물이었지만 신판에서는 글자가 좀 더 꽉 찬 느낌이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든다.
 
작가를 본격 데뷔시켰던 제목과 동일한 에피소드부터 40여편의 에피소드는 각자 나름의 색깔을 가지고 독자와 만나고 있다.
 
첫번째 에피소드부터 코믹하면서도 상상력을 펼치는 어느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짧기 때문에 주인공의 이력이나 감정선을 충분히 뽑아 내기는 어렵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작품 출판 당시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줄 수 있는 총의 성능을 소개한다.
지금 숀 코넬리가 출연하던 시절의 007 영화를 본다면 첨단무기라고 내놓은 아이템들의 허접함에 놀랄 수 있듯, 이 책에 등장하는 사물들도 구닥다리임은 감안하고 읽어 나가야 한다. 오래된 소설인만큼 당시의 시대상을 감안해야 한다.
 
작가를 세상에 알린 첫번째 작품인 “섹스트라”는 독특한 형식과 상상의 확장을 엿볼 수 있다.
기사의 헤드 라이너를 위주로 짤막한 뉴스를 전하지만 글의 전개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성적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는 기계 하나가 세상을 이렇게 바꿀 수도 있겠다라며 과장 가득한 전개에도 동감을 표시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가장 짧지만 포복 절도하게 만드는 “꽁트” “악을 저주하자”는 저자의 위트와 개그감이 번뜩이는 섬광과도 같다고 모두 인정하게 만들 만한 쇼트-쇼트-쇼트 소설이다. 당장 유머 게시판에 올려 놔도 시대와 상관없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릴 수 있다. 믿어도 좋다.
 
책을 마무리하며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작품과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워낙 방대한 1000여편의 작품이 포진되어 있어 추가 시리즈가 나와도 거를 수 없겠다는 자기 예언을 하게 된다.
 
짧지만 임팩트 강한 소설로 오랫동안 서가에 꽂혀 있던 책들의 먼지도 털어가며 번역의 개선과 다 읽지 못했던 에피소드에 홀딱 빠질 시간이 됐다.
여러 분에게도 작가의 세계에 입문할 것을 추천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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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패
미아우 지음 / 마카롱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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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패 : 역사의 한복판에서 음모와 모험을 같이 하는 이야기 속으로

 

 

 

영화 “관상”은 얼굴을 읽어 사람의 사주를 판별하는 신묘한 기술이 결국 불행의 씨앗이 되는 비극의 서사를 그려냈다.

명품 배우들의 대단한 연기는 매력 가득 찬 시나리오를 더욱 알차게 만들었고 영화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으로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송강호가 연기한 주인공은 소문난 관상쟁이로 수양대군을 판단하는 잣대로 사용되는데, 처음에는 엉뚱한 사람을 수양으로 소개받아 별 볼일 없는 인물로 판단하지만, 그 유명한 이정재의 등장 씬에서 포효하는 늑대의 관상을 보고 거의 주저 앉을 상황에 이른다.

 

21세기에서 관상은 때로는 재미거리로 여겨지지만, 타고난 성품을 예견하는 하나의 과학 논리를 내세울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만큼 탄탄한 배경을 지닌 해석도 존재한다.

물론 혈액형이 사람 성격을 표현한다는 구독자일 미신같은 변변찮은 이론도 다수 포함되겠지만.

 

주인공 재겸은 노비다.

팔도를 떠돌던 하찮은 신세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기는 몸이 된다.

자신의 결백을 밝히고자 진범을 찾아 10여년을 떠돈다.

투전판에서 증인이 될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도박도 마다치 않는다.

재겸에게는 특출 난 능력이 있었는데, 영화에서 송강호가 사람 얼굴만 보고 파악하는 관상의 재주를 가졌다면 재겸은 얼굴 표정을 만드는 미세한 근육의 떨림과 움직임을 꿰뚫어 상대가 참인지 거짓인지 밝혀내는 재주를 가졌다.

 

포커페이스처럼 평온하고 감정이 없는 얼굴을 한 자라도 패를 움켜졌을 때, 눈에 보일까 말까 한 작은 근육 하나의 떨림으로 이 녀석이 끝내주는 패를 쥐고 있는지 블러핑을 피우고 있는지 간파할 수 있다는 놀라운 능력이다.

지금 시대였다면 엄청난 칩을 모았을 테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어느 투전판에서 호기롭게 상대방을 제압하지만 갑자기 들어닥친 어금부에게 체포되고 만다.

 

그런데 그가 끌려간 곳은 엉뚱하게도 벼슬아치의 면전이었다.

익히 시장판에 떠도는 재겸의 악명을 듣고 그를 시험해보려고 잡아들인 터였다.

양반의 이름은 정약용.

그래 바로 그 분.

정약용은 노름판의 죄를 면하게 해줄 테니 살인사건 하나를 해결해보라는 제안을 받는다.

재겸의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여 묘상한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라는 주문이었다.

피할 수 없는 제안이었고, 재겸은 놀라운 기지를 발견하여 살인사건의 전모와 범인을 밝혀내며 정약용의 신임을 얻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한밤중에 들이닥친 병사들에게 끌려가 곳은 바로 궁궐이었다.

눈 앞에 버티고 앉아있는 인물은 정조대왕.

비천한 자가 임금 앞에서 자신의 재주를 증명하는 일은 소설이니까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적에게 둘러싸여 개혁을 방해 받던 정조에게는 재겸의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개혁을 둘러싼 관리 중에 참인 사람을 골라내는 불가능한 작전에 재겸이 투입되니, 이로써 조선의 변화는 재겸의 재주에 달린 형태가 된다. 왕의 비밀친서를 품에 안고 상대방이 적인지 아군인지 정체를 밝혀야 하는 임무는 실로 중요하지만 조심스러운 역할이다.

 

조선 임금 중 가장 정열적이고 미스테리였던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개혁을 주도하는 임금과 이에 반대하는 신하 사이의 갈등과 애증으로 표출되는 상황을 가공의 인물을 통해 풀어가는 과정은 흥미롭다.

 

기존에도 영화나 소설을 통해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여럿 보아왔지만,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사람 말과 행동의 진위를 살펴내는 일은 익숙지 않은 모습이지만 강렬하다.

 

중간에 섞여있는 난해한 용어들은 페이지 별로 주석이 잘 실려있어 책장을 넘기는데 방해도 없고 오히려 현실성을 부여하여 좋은 편이다.

 

다만 가끔 상황의 억지스러운 전개는 거슬리기는 하지만 이거야 대부분 소설에서 등장하는 작은 까끌거림이니 상관은 없다.

 

독자를 설득해가는 주인공의 재주 또한 현대의 입김이 많이 얹혀 있기는 하나, 하늘로 받은 재주와 본인의 노력으로 만든 귀한 능력이니 부럽기만 하다.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 등장하는 소설들은 하나같이 강력한 스토리의 발상으로 독자를 새로운 세계에 힘껏 발을 내딛을 수 있게 도와준다. 흥미진진, 공모전에 빛나는 역사 소설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도서를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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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 - 역사를 뒤집은 게임 체인저
폴 록하트 지음, 이수영 옮김 / 레드리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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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 : 전쟁사를 뒤바꾼 끝내주는 무기의 대하 서사 역사서

 

 

 

 

역사 읽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요즘의 출판 시장은 즐거움이 가득한 신비의 세계다.

예전에는 볼 수 없는 참신한 시각으로 과거를 조망하고 매니아틱한 장르를 얹어 전혀 새로운 하나의 카테고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출판에 있어서 둘째라면 서러운 일본의 출판 기획에게 보내던 박수를 우리나라 출판사들에게도 보내게 됐다.

유튜브가 책 읽는 독자를 집어 삼키는 시대지만, 영상물도 결국 콘텐츠라는 문장의 집합체가 필요한 만큼, 책 읽는 방식이 다양화되는 현상으로 이해해도 좋을 성 싶다.

다만 움직이는 그림이 활자가 되어 종이에 누워 버리면 독자도 같이 누워 잠드는 바람에 책은 거들떠도 안보는 비율이 늘어가는게 걱정이겠다.

어차피 인구소멸이라는데 걱정도 팔자다. 쓴 웃음을 짓고 두툼하고 빨간 책을 기대 가득 찬 마음으로 넘겨본다.

 

인류는 오랜 역사 속에서 정직하고 단순한 방법으로 서로의 경쟁우위를 확인했다.

 

“창 들어!”

“칼 들어!”

“돌 날려!”

“방패 막아!”

 

고대 시대부터 중세시대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무기는 좀 더 예리하고 단단해졌지만 싸우는 방식은 비슷했다. 소위 "쪽수 우선의 법칙", 대가리 수 많은 편이 승리.

제갈공명같이 걸출학 책사의 전략도 변수가 될 수 있고, 끓는 애국심 같은 변수도 승리에 영향을 미쳤지만 일반 상황에서 숫자 놀음에서 크게 벗어나긴 어렵다.

고전영화를 떠올려보면 도열 앞으로 공격, 창을 앞으로 전진시켜 우루루 몰려다니는 병정들의 단순한 전쟁 방식이 기억나지 않는가?

 

이런 측면에서 인류 전쟁의 역사는 화약 발명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물리적인 충돌 양상이 화학적 무기를 활용한 대량 살상 시대로 성큼 발길을 내딛은 전환점이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화약이 최초로 발명된 곳은 "중국"이다.

당시 세계 최고의 문명국이었던 나라에서 혁명에 가까운 기술이 개발된 점은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유럽에 기술이 전파된 후 100여년동안 화약의 활용은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물론 아시아도 마찬가지.

 

차츰 화력에 눈을 떠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폭발력은 누구나 알지만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이 호흡을 따라오지 못한 탓이다.

 

중세시대의 공성전은 하품 난다.

무거운 돌덩이를 어렵게 거치대에 올린 후, 줄을 끊어내는 방식으로 날려 굳건하게 버티고 서 있는 성벽을 연타로 때리기 반복한다.

물리력을 동원한 기계가 날이 갈수록 발전하지만 한계가 있었고, 요새 안에 충분한 물과 식량만 있다면 버티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에 대포가 등장한다면 상황은 급 반전된다.

전장 주변의 돌을 활용하기도 했지만 제대로 철로 만든 대포알이 성벽에 가격 될 때의 파괴력은 성 안에 버티고 있던 병력의 충격과 혼돈으로 전달된다.

 

공성전의 시대는 이렇게 화약의 공격무기로 터닝 포인트를 맞으며 급격하게 저물어 갔다.

창 끝과 방패, 성안에서 버티는 공성전으로 전쟁 치루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화약의 거대한 힘이 세상과 인명을 대량 파괴할 수 있는 본격 화력 전쟁 시대에 인류는 진입한다.

 

중세 시대의 전투 장면이 여럿 소개되는데 전술과 무기의 변화는 준비가 부족했던 상대에게는 필패를 가져왔고 놀란 두 눈이 두배로 커지는 장면을 머리 속에 떠오르게 한다.

 

물론 초기의 시행착오는 불가피했다.

제대로 된 주철 기술이 없었으니 오픈 된 목재 기둥을 쇠 밴드로 묶은 형태의 대포가 사용되었다.

뜨거운 열기를 나무 총열이 제대로 버텨 내지도 못했을테고, 견고하지 못한 화약 실의 폭발은 포병 손모가지 여럿 작살냈을 게다.

하지만 화포의 위력을 깨달은 국가가 절대 강자가 될 기회를 무산시킬 리야, 무기는 개량을 거듭한다. 오랜 도전과 시행착오로 무기는 숨어있던 강렬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고 포병들은 과거의 불안한 탄착과 발사의 위험성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전장에서 절대 군주의 위엄을 적에게 고하는 최강의 무기로 화력은 거듭난다.

 

임진왜란 처렁 무기의 변화가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변화시킨 전투씬이 여럿 등장한다.

그중 인상적인 장면을 잠시 살펴보자.

사실 이 장면만으로 두툼한 이 책 한권이 내포하는 강조점은 확실하게 방점을 찍을 수도 있다.

 

전쟁에 임했음에도 긴장감 풀어졌던 프로이센과 애국심 똘똘 뭉친 덴마크 군의 대결양상이다.

프로이센군은 한가롭게 식사준비를 하며 눈 앞에 다가온 적의 낌새를 느끼지 못한 상황이었다. 덴마크 군의 기습은 “공격!” 이 한 마디만 지휘자의 입에서 튀어 나오면 게임은 끝난 상황이라고 봐야할 정도였다.

기습공격은 상대가 무방비 상태일 때 최고의 효과를 보인다.

이 싸움은 누가 봐도 덴마크의 압승이었다.

당황한 프로이센군은 설상가상 총기를 모아둔 거리도 꽤 멀었다.

하지만, 막상 총을 손에 쥐자 양상은 기대했던 바와 달리 돌아간다.

장전하는데 시간이 걸리던 과거의 무기가 아닌 몇 초 간격으로 사격이 가능한 드라이제 총이었다. 잠시 밀리는 듯했지만 침착하게 반격하는 덴마크 군은 추풍낙엽으로 떨어져 나갔다.

이 과정은 영화의 한 장면이 느릿하게 움직이듯 총을 다루는 과정을 찬찬히 설명하게 사실감을 극대화시킨다.

 

그리고 훌쩍 시간이 지나 끝까지 항전을 불사하던 일본의 머리 위로 인류가 개발한 촤악의 화력 무기는 세상을 잠재운다.

앞으로도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에 걸맞는 가공할 대량살상무기의 진보를 약속이나 하듯이.

 

돌이켜 생각해보면 임진왜란 때 조선군이 속절없이 무너진 가장 큰 이유는 조총이라는 신무기의 전격 활용이었다.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는 세계의 흐름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국가에게 승리는 사치일 뿐이다.

정부군과 백성들이 도륙을 당할 때, 어가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도망친 것도 모자라, 명나라 망명까지 고려해야할 세상의 끝에 서있는 임금은 마땅한 자격이 있을까?

당파 싸움에 제대로 된 정보조차 무시당하던 조정의 무능은 까딱했으면 500년 후 지도에서 한반도는 일본의 번으로 표기될 뻔 했다.

작금의 일본과의 외교에서 무엇이 가야할 길이고 무엇이 피해야할 길 인지도 모른 채, 어떻게 서든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 이득을 얻고자 하는 세력과 다를 게 무엇일까?

 

화력으로 수많은 살상과 피해를 당하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고 목숨을 바치던 수백 년간의 치열한 전투에서 민족주의는 이제 사라져 버린 구닥다리 정치 구호가 아님은 우리는 잘 알고 있잖은가?

 

책 한 권의 정밀한 서술과 서사로 인류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에 대한 군사, 정치, 사회 전반의 흐름을 꿰뚫어보는 역작이다.

역사의 흐름은 언제나 승자의 편이 듯, 승자에게는 과거의 유산을 정리하고 새롭게 들어올린 총구의 파괴력에 의해 도도히 흘러간다는 증언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일단 책으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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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범 지음 / 북스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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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실에서 배우지 못하던 패전사의 아이러니한 결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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