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낭패
미아우 지음 / 마카롱 / 2023년 2월
평점 :
낭패 : 역사의 한복판에서 음모와 모험을 같이 하는 이야기 속으로
영화 “관상”은 얼굴을 읽어 사람의 사주를 판별하는 신묘한 기술이 결국 불행의 씨앗이 되는 비극의 서사를 그려냈다.
명품 배우들의 대단한 연기는 매력 가득 찬 시나리오를 더욱 알차게 만들었고 영화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으로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송강호가 연기한 주인공은 소문난 관상쟁이로 수양대군을 판단하는 잣대로 사용되는데, 처음에는 엉뚱한 사람을 수양으로 소개받아 별 볼일 없는 인물로 판단하지만, 그 유명한 이정재의 등장 씬에서 포효하는 늑대의 관상을 보고 거의 주저 앉을 상황에 이른다.
21세기에서 관상은 때로는 재미거리로 여겨지지만, 타고난 성품을 예견하는 하나의 과학 논리를 내세울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만큼 탄탄한 배경을 지닌 해석도 존재한다.
물론 혈액형이 사람 성격을 표현한다는 구독자일 미신같은 변변찮은 이론도 다수 포함되겠지만.
주인공 재겸은 노비다.
팔도를 떠돌던 하찮은 신세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기는 몸이 된다.
자신의 결백을 밝히고자 진범을 찾아 10여년을 떠돈다.
투전판에서 증인이 될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도박도 마다치 않는다.
재겸에게는 특출 난 능력이 있었는데, 영화에서 송강호가 사람 얼굴만 보고 파악하는 관상의 재주를 가졌다면 재겸은 얼굴 표정을 만드는 미세한 근육의 떨림과 움직임을 꿰뚫어 상대가 참인지 거짓인지 밝혀내는 재주를 가졌다.
포커페이스처럼 평온하고 감정이 없는 얼굴을 한 자라도 패를 움켜졌을 때, 눈에 보일까 말까 한 작은 근육 하나의 떨림으로 이 녀석이 끝내주는 패를 쥐고 있는지 블러핑을 피우고 있는지 간파할 수 있다는 놀라운 능력이다.
지금 시대였다면 엄청난 칩을 모았을 테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어느 투전판에서 호기롭게 상대방을 제압하지만 갑자기 들어닥친 어금부에게 체포되고 만다.
그런데 그가 끌려간 곳은 엉뚱하게도 벼슬아치의 면전이었다.
익히 시장판에 떠도는 재겸의 악명을 듣고 그를 시험해보려고 잡아들인 터였다.
양반의 이름은 정약용.
그래 바로 그 분.
정약용은 노름판의 죄를 면하게 해줄 테니 살인사건 하나를 해결해보라는 제안을 받는다.
재겸의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여 묘상한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라는 주문이었다.
피할 수 없는 제안이었고, 재겸은 놀라운 기지를 발견하여 살인사건의 전모와 범인을 밝혀내며 정약용의 신임을 얻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한밤중에 들이닥친 병사들에게 끌려가 곳은 바로 궁궐이었다.
눈 앞에 버티고 앉아있는 인물은 정조대왕.
비천한 자가 임금 앞에서 자신의 재주를 증명하는 일은 소설이니까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적에게 둘러싸여 개혁을 방해 받던 정조에게는 재겸의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개혁을 둘러싼 관리 중에 참인 사람을 골라내는 불가능한 작전에 재겸이 투입되니, 이로써 조선의 변화는 재겸의 재주에 달린 형태가 된다. 왕의 비밀친서를 품에 안고 상대방이 적인지 아군인지 정체를 밝혀야 하는 임무는 실로 중요하지만 조심스러운 역할이다.
조선 임금 중 가장 정열적이고 미스테리였던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개혁을 주도하는 임금과 이에 반대하는 신하 사이의 갈등과 애증으로 표출되는 상황을 가공의 인물을 통해 풀어가는 과정은 흥미롭다.
기존에도 영화나 소설을 통해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여럿 보아왔지만,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사람 말과 행동의 진위를 살펴내는 일은 익숙지 않은 모습이지만 강렬하다.
중간에 섞여있는 난해한 용어들은 페이지 별로 주석이 잘 실려있어 책장을 넘기는데 방해도 없고 오히려 현실성을 부여하여 좋은 편이다.
다만 가끔 상황의 억지스러운 전개는 거슬리기는 하지만 이거야 대부분 소설에서 등장하는 작은 까끌거림이니 상관은 없다.
독자를 설득해가는 주인공의 재주 또한 현대의 입김이 많이 얹혀 있기는 하나, 하늘로 받은 재주와 본인의 노력으로 만든 귀한 능력이니 부럽기만 하다.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 등장하는 소설들은 하나같이 강력한 스토리의 발상으로 독자를 새로운 세계에 힘껏 발을 내딛을 수 있게 도와준다. 흥미진진, 공모전에 빛나는 역사 소설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도서를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