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력 : 전쟁사를 뒤바꾼 끝내주는 무기의 대하 서사 역사서
역사 읽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요즘의 출판 시장은 즐거움이 가득한 신비의 세계다.
예전에는 볼 수 없는 참신한 시각으로 과거를 조망하고 매니아틱한 장르를 얹어 전혀 새로운 하나의 카테고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출판에 있어서 둘째라면 서러운 일본의 출판 기획에게 보내던 박수를 우리나라 출판사들에게도 보내게 됐다.
유튜브가 책 읽는 독자를 집어 삼키는 시대지만, 영상물도 결국 콘텐츠라는 문장의 집합체가 필요한 만큼, 책 읽는 방식이 다양화되는 현상으로 이해해도 좋을 성 싶다.
다만 움직이는 그림이 활자가 되어 종이에 누워 버리면 독자도 같이 누워 잠드는 바람에 책은 거들떠도 안보는 비율이 늘어가는게 걱정이겠다.
어차피 인구소멸이라는데 걱정도 팔자다. 쓴 웃음을 짓고 두툼하고 빨간 책을 기대 가득 찬 마음으로 넘겨본다.
인류는 오랜 역사 속에서 정직하고 단순한 방법으로 서로의 경쟁우위를 확인했다.
“창 들어!”
“칼 들어!”
“돌 날려!”
“방패 막아!”
고대 시대부터 중세시대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무기는 좀 더 예리하고 단단해졌지만 싸우는 방식은 비슷했다. 소위 "쪽수 우선의 법칙", 대가리 수 많은 편이 승리.
제갈공명같이 걸출학 책사의 전략도 변수가 될 수 있고, 끓는 애국심 같은 변수도 승리에 영향을 미쳤지만 일반 상황에서 숫자 놀음에서 크게 벗어나긴 어렵다.
고전영화를 떠올려보면 도열 앞으로 공격, 창을 앞으로 전진시켜 우루루 몰려다니는 병정들의 단순한 전쟁 방식이 기억나지 않는가?
이런 측면에서 인류 전쟁의 역사는 화약 발명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물리적인 충돌 양상이 화학적 무기를 활용한 대량 살상 시대로 성큼 발길을 내딛은 전환점이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화약이 최초로 발명된 곳은 "중국"이다.
당시 세계 최고의 문명국이었던 나라에서 혁명에 가까운 기술이 개발된 점은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유럽에 기술이 전파된 후 100여년동안 화약의 활용은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물론 아시아도 마찬가지.
차츰 화력에 눈을 떠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폭발력은 누구나 알지만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이 호흡을 따라오지 못한 탓이다.
중세시대의 공성전은 하품 난다.
무거운 돌덩이를 어렵게 거치대에 올린 후, 줄을 끊어내는 방식으로 날려 굳건하게 버티고 서 있는 성벽을 연타로 때리기 반복한다.
물리력을 동원한 기계가 날이 갈수록 발전하지만 한계가 있었고, 요새 안에 충분한 물과 식량만 있다면 버티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에 대포가 등장한다면 상황은 급 반전된다.
전장 주변의 돌을 활용하기도 했지만 제대로 철로 만든 대포알이 성벽에 가격 될 때의 파괴력은 성 안에 버티고 있던 병력의 충격과 혼돈으로 전달된다.
공성전의 시대는 이렇게 화약의 공격무기로 터닝 포인트를 맞으며 급격하게 저물어 갔다.
창 끝과 방패, 성안에서 버티는 공성전으로 전쟁 치루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화약의 거대한 힘이 세상과 인명을 대량 파괴할 수 있는 본격 화력 전쟁 시대에 인류는 진입한다.
중세 시대의 전투 장면이 여럿 소개되는데 전술과 무기의 변화는 준비가 부족했던 상대에게는 필패를 가져왔고 놀란 두 눈이 두배로 커지는 장면을 머리 속에 떠오르게 한다.
물론 초기의 시행착오는 불가피했다.
제대로 된 주철 기술이 없었으니 오픈 된 목재 기둥을 쇠 밴드로 묶은 형태의 대포가 사용되었다.
뜨거운 열기를 나무 총열이 제대로 버텨 내지도 못했을테고, 견고하지 못한 화약 실의 폭발은 포병 손모가지 여럿 작살냈을 게다.
하지만 화포의 위력을 깨달은 국가가 절대 강자가 될 기회를 무산시킬 리야, 무기는 개량을 거듭한다. 오랜 도전과 시행착오로 무기는 숨어있던 강렬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고 포병들은 과거의 불안한 탄착과 발사의 위험성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전장에서 절대 군주의 위엄을 적에게 고하는 최강의 무기로 화력은 거듭난다.
임진왜란 처렁 무기의 변화가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변화시킨 전투씬이 여럿 등장한다.
그중 인상적인 장면을 잠시 살펴보자.
사실 이 장면만으로 두툼한 이 책 한권이 내포하는 강조점은 확실하게 방점을 찍을 수도 있다.
전쟁에 임했음에도 긴장감 풀어졌던 프로이센과 애국심 똘똘 뭉친 덴마크 군의 대결양상이다.
프로이센군은 한가롭게 식사준비를 하며 눈 앞에 다가온 적의 낌새를 느끼지 못한 상황이었다. 덴마크 군의 기습은 “공격!” 이 한 마디만 지휘자의 입에서 튀어 나오면 게임은 끝난 상황이라고 봐야할 정도였다.
기습공격은 상대가 무방비 상태일 때 최고의 효과를 보인다.
이 싸움은 누가 봐도 덴마크의 압승이었다.
당황한 프로이센군은 설상가상 총기를 모아둔 거리도 꽤 멀었다.
하지만, 막상 총을 손에 쥐자 양상은 기대했던 바와 달리 돌아간다.
장전하는데 시간이 걸리던 과거의 무기가 아닌 몇 초 간격으로 사격이 가능한 드라이제 총이었다. 잠시 밀리는 듯했지만 침착하게 반격하는 덴마크 군은 추풍낙엽으로 떨어져 나갔다.
이 과정은 영화의 한 장면이 느릿하게 움직이듯 총을 다루는 과정을 찬찬히 설명하게 사실감을 극대화시킨다.
그리고 훌쩍 시간이 지나 끝까지 항전을 불사하던 일본의 머리 위로 인류가 개발한 촤악의 화력 무기는 세상을 잠재운다.
앞으로도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에 걸맞는 가공할 대량살상무기의 진보를 약속이나 하듯이.
돌이켜 생각해보면 임진왜란 때 조선군이 속절없이 무너진 가장 큰 이유는 조총이라는 신무기의 전격 활용이었다.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는 세계의 흐름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국가에게 승리는 사치일 뿐이다.
정부군과 백성들이 도륙을 당할 때, 어가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도망친 것도 모자라, 명나라 망명까지 고려해야할 세상의 끝에 서있는 임금은 마땅한 자격이 있을까?
당파 싸움에 제대로 된 정보조차 무시당하던 조정의 무능은 까딱했으면 500년 후 지도에서 한반도는 일본의 번으로 표기될 뻔 했다.
작금의 일본과의 외교에서 무엇이 가야할 길이고 무엇이 피해야할 길 인지도 모른 채, 어떻게 서든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 이득을 얻고자 하는 세력과 다를 게 무엇일까?
화력으로 수많은 살상과 피해를 당하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고 목숨을 바치던 수백 년간의 치열한 전투에서 민족주의는 이제 사라져 버린 구닥다리 정치 구호가 아님은 우리는 잘 알고 있잖은가?
책 한 권의 정밀한 서술과 서사로 인류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에 대한 군사, 정치, 사회 전반의 흐름을 꿰뚫어보는 역작이다.
역사의 흐름은 언제나 승자의 편이 듯, 승자에게는 과거의 유산을 정리하고 새롭게 들어올린 총구의 파괴력에 의해 도도히 흘러간다는 증언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일단 책으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