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는 과학 -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즘 과학계의 이슈들
다비드 루아프르 외 지음, 이규빈 외 감수 / 클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지금 만나는 과학 : 과학적 호기심 자극제 양산형 버전

 
 


어른이 되어 좋은 건 "시험"을 안 본다는 것이다.
토익, 사내시험, 승진시험, 면접의원시험... 그래, 직장인들도 시험은 보긴 한다.
8주 동안 토요일 서울 근교 연수원에 들어가 하루 종일 수업 듣고 A3 4장짜리 논술시험을 매주 치룬 적도 있다.
그래도, 학창시절 시험 보다는 여유가 있다.
꾸벅 꾸벅 졸긴 해도 밤잠 참아가며 각성제 비슷한 것도 먹어가며 독서실에 처박혀 달달달 외우거나 이해가 안되는 수학공식을 어떻게 든 외우고 대입시키는 공부는 아니니 말이다.
시험 없는 어른의 공부가 즐거운 이유는 책 읽기가 시험을 목표로 하지 않으므로 술술 편하게 페이지를 원하는 만큼 뒤적거리며 내 시간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때는 보지도 않던 "수학의 쓸모"라는 책을 집어 든다 거나 "코스모스" 같은 과학 도서들을 망설임없이 집어들 수 있는 여유로움.
편집자들도 이런 심리를 잘 아는지 진입 문턱은 낮게 만들어 놓고 일단 발을 내딛고 책 안으로 들어가면 문을 걸어 잠근다.
-그래, 돈 주고 산 책 졸리긴 해도 끝까지 읽어야겠네.
 
심플한 노란 표지가 매력적인 이 책은 과학책이다.
하지만 계란 노른자 같은 표지는 나 별로 어려운 책 아니야 일루 와바....하며 유혹한다.
물론 페이지를 넘길 때, 이거 시험보는거라면 머리 좀 아프겠네 하는 공식이나 도표가 나오긴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읽은 후 시험을 보지 않기로 했으므로 마음이 가볍다.
 
특정 분야의 과학이야기가 아니다.
생물, 수학, 우주....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요즘 과학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쟁점 18가지를 선정했다.
중간 중간 삽화도 있고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화법이 매력적이다.
주제가 사람의 흥미를 끄는데 내용도 -살짝 막힐 때도 있지만 - 술술 넘어가게 구성했다면 성공적인 교양 과학서 아니겠는가?
게다가 한가지 주제에 꽂히면 다른 본격 도서를 찾을 호기심 자극제 역할도 해주니 즐거운 공부하기의 시작점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처음 들어 보는 "루카"란 분이 있다.
들어는 봤나? 루카?
루크 스카이워커....아니다.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의 약자 되겠다.
한글로 번역하면 마지막 보편적 공통조상.  어렵다.
결론적으로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지구상 생명체의 궁극적인 조상이다.
생명이 나무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루카 그 분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오래된 논쟁거리인 외계인은 있을까?
수학적 과학적 이야기, 많이 들어본 이야기지만 알기 쉽게 설명을 해준다.
어쩌면 존재하는 외계인은 우리가 등산할 때 발 밑을 지나가는 개미와 일일이 인사를 나누지 않기 때문에 우리와 조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스러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요즘 거울을 보면 슬픔이 치밀어 오르게 만드는 "노화"는 아직 인류에게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라니.
첨부한 이 페이지는 단 한 장 만으로 이 책은 선량한 독자에게 충격을 던진다.
게다가 노화되고 있다고 생각한 폐와 같은 기관이 사실 4주 밖에 안된 녀석이라는 믿기 어려운 주장을 들이민다.
 
과학책을 보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을 느낄 수 있어서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다.
"위험한 과학책" 시리즈처럼 딱딱하기만 한 머나 먼 은하계 저 멀리 "과학책"이 옆집 친구처럼 친한 척을 하니, 피해야할 것이 아니라 악수를 크게 한다.

노란 책 한 권이 또다른 과학책과 깊숙한 대화를 시작하게 만드는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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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쓸모 - 불확실한 미래에서 보통 사람들도 답을 얻는 방법 ㅣ 쓸모 시리즈 1
닉 폴슨.제임스 스콧 지음, 노태복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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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쓸모 :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수학의 원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과 맞붙었던 "아이리시 맨".
지난해에도 "로마"라는 알퐁소 감독?의 영화를 작품상 후보에 올려놓았던 넷플릭스는 올해에도 후보를 배출했다.
다행히도 또 역사적으로 중요한 획을 긋는 봉감독의 선전으로 넷플릭스는 고배를 마셔야 했지만 시상식을 보면서 궁금증이 떠올랐다.
넷플릭스는 왜 자꾸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많은 영화가 선전하고 있는가?
쏟아져 나오는 드라마는?
쏟아져 나오는 다큐멘터리는?
케이블 채널과 경쟁을 하는 그들이 자기만의 컨텐츠로 승부를 걸어야 하기에 여러가지 작품들을 제작하고 런칭시키는 거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작품을 발표하면 중타 이상은 치는 비결이 궁금했다. 물론 엄청난 자본을 자신있게 투자하는 자신감에 대해서도 인터뷰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수학의 쓸모"라는 책을 보면 어느 정도 이유를 깨닫게 된다.
넷플릭스는 수학적 근거에 의해 많은 사람이 좋아할 가능성이 많고, 성공 확률이 높은 내용을 선별하여 제작함으로서 다른 제작사들이 실패한 작품의 파일럿으로 만드는 비용을 절약하여 효과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한 것이다.
진짜 수학이 "쓸모"있는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 준 것이다.

수학은 애증의 존재이다.
가끔 수학을 싫어하는 딸아이에게도 이야기한다.
"아빠가 말이야. 수학을 잘했다면 제일 좋은 대학갔을거야. 학교다닐 때 열심히 할걸."
"나 수학 싫어. 아빠가 싫어했으니 그것도 유전인가 보네."
엉뚱하게 요즘은 수학의 정석을 펴놓고 다시 공부를 해보자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시험이라는 부담없이 순수하게 배운다는 마음을 견지하며 수학을 진지하게 공부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다.
아직 실행에 옮기진 못했지만 "수학의 쓸모"라는 책을 집어들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수학책에 공식이 복잡하게 페이지의 반을 차지해도 부담은 없다.
학생이 아니니 전체적인 맥락상 문제가 없다면 "SKIP" 버튼을 과감히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 책은 공식 때문에 버튼을 누를 일은 없다. 일반적인 교양수학책에 비해서도 수식이나 복잡한 설명이 따라 붙지는 않는다.
다만 역사적 위인들의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전개에 비해 딱딱한 이론적 설명이 대비되어 나올 때는 눈동자의 속도가 느려진다.

매혹적인 검은색과 노란색의 대비로 강렬한 유혹을 뽐내는 책표지와 앞면에 노란 활자로 박혀있는 "NETFLIX"라는 글자가 수학에 관심이 없던 독자들도 한번 읽어볼까 하고 책을 집어들게 되는 차별화가 아닌가 싶다.
계속해서 "이 책에는 복잡한 수식은 없어요"를 중얼거리는 이유도 보다 많은 독자가 책을 읽고 수학에 대해 한 발 쉽게 다가설 수 있게 만들고 싶어서 일게다.

7개의 챕터에는 지금 시대에 수학이 쓸모있게 활용되고 있는 개념을 소개하며, 오래전 역사적 인물들이 후세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수학적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역사 속의 한 장면을 소개하며 개념이 시작된 배경과 수학적 이론을 가급적 이해하기 쉽고 천천히 걷는 스텝으로 독자에게 흥미를 유도하며 지식을 전달하려 한다.

절묘하다는 표현이 맞겠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여러가지 개념을 친숙한 인물들과 이론을 통해 설명하고 이것이 지금 시대에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되지 박수를 치게 만드니 말이다.

첫장 부터 이런 시도는 독자에게 정확히 흥미를 유발시킨다.
넷플릭스를 보게 되면 내게 꼭 맞는 영화를 귀신같이 알려주는데, 개인적인 성공확률은 80%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스포티파이 추천음악은 90% 정도 귀에 감긴다. 생전 알지도 못하고 들을 일도 없던 R&B 흑인 아티스트가 내 취향에 맞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조건부확률"이라는 많이 들어보았던 2차 대전때 실용화된 이론이 2020년대의 구세주들인 넷플리스와 스포티파이에게 중요한 전략적 무기로 사용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가! 
더우기 이론을 발전 시킨 사람은 유태인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학자라니!
아인슈타인은 인류에게 상대성이론을 선물했지만, 왈드는 넷플릭스를 제공해 준 것이다.
뉴톤의 실수 이야기. 
그리고 영국 왕립 조폐국의 어이없는 실수와 결과물들은 수학적인 내용들을 다 걷어내고 읽어도 재미있지만, 어렵지만 하나 하나 수학적 공식들을 이해하고 참게 된다면 왠지 수학 천재가 되는 기분좋음을 느낄 수 있다.
(밀링이라고 표현하는 동전 옆면의 가공처리를 왜 하는지 평상시에 궁금했는데 이유를 알게 된 것은 뜻밖의 득템.)
조 디마지오의 56경기 연속안타 신기록의 확률을 보며 로또를 수학적으로 분석할 방법은 없을까 엉뚱한 삼매경에 빠지기도 한다.

  • 조건부 확률
  • 패턴/예측비교
  • 베이즈 규칙
  • 통계/알고리즘
  • 변동성
  • 가정 모형화
  • 데이터 분석

별로 읽고 싶지 않다. 이런 테마.
자신감을 좀 가지고 이 책을 읽어본다면 수학의 정석을 사러 가게 될 수도 있다.
기분 좋은 일 아닌가! 
(솔직히 다음달에 수학시험 볼 일이 없으니까 이런 여유를 부리는게 사실이지만, 어쩔 것인가? 학창시절이 그리운 나이가 되었으니 이런 맛이라도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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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봉우리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이기웅 옮김, 김동수 감수 / 리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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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봉우리 : 산이 있어 거기에 오르다.



스마트폰이 모든 걸 빨아들이니, 책 두께가 얇아진다.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 앞에 서서 1위부터 20위까지 면면을 들여다보면 두툼한 책은 찾기 어렵다.
덩달아 활자의 위엄도 가벼워졌다.
베스트셀러가 워낙 트랜디하고 직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야 하다보니 감성독자에 대한 어필과 출판사의 마케팅이 좌우하지만, 유사한 제목과 표지 디자인, 그리고 너무 패션화된 느낌의 책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현실은 못 내 아쉽다.
두껍고 무거운 주제에 대한 책들이 서너 권 정도는 포함되는 코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물론 그 만큼 출판사가 힘들다는 이야기다.-
밖에 들고나가거나 누워서 독서가 불가능한 두께로 어쩔 수 없이 전자책으로 구매하게 된 "일본제국 패망사"가 본 서가에서는 찾을 수 없고 결국 컨시어지 코너에서 비닐 포박에 묶인 채로 뉘여있는 모습을 보고 씁쓸했던 기억.

"신들의 봉우리", 산악소설이라는 생소한 책과의 첫 조우

어라! 두꺼워.
분권으로 나올 수도 있지만 굳이 한 권으로 만든건 한 호흡에 읽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분권하게 되면 2편에 도전하는 독자가 떨어져 나갈까하는 마케팅 고민의 결과일까.
나 역시 두꺼운 책은 마지막장까지 한결 같이 완독하리라는 다짐으로 시작하지만.... 책장에서 가장 빛나는 소설 "율리시스"는 100 페이지 읽고 5년째 북마크가 제자리 걸음이니 할 말 없다.
두꺼운 책 읽기는 약간의 용기도 필요하고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만화처럼 비닐랩핑 쌓여있는 책을 과감히 벗겨내다.

"신들의 봉우리"는 유메마쿠라 바쿠의 소설이다.
만화 좋아하는 덕후이기도 하고 만화로도 발간된 "음양사"나 "아랑전" 같은 만화 원작을 선보인 바 있다.
장사 안될 것 같은 이 소설도 만화로 출시가 되어 있다. 그림체도 마음에 들고 머리속의 웅장한 산봉우리를 그림으로 감상할 수 있는 또다른 선택지다.

산악을 주제로 영화는 떠올려 본다.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클리프행어, 얼라이브, K2 줄줄 나온다.
그런데 소설은.... 존 크라카우어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 정도 생각이 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꽤나 많은데 산악 소설은 나 스스로 관심이 적어서 그런 것일까 찾아보기 쉽지는 않다.

주인공이 네팔을 여행하던 중 골동품 가게에서 우연히 구입하게 된 오래된 카메라.
어쩌면 1924년 6월 영국 히말라야 원정대에 참가했던 조지 말러리와 얼빈의 카메라 일지도 모른다는 단서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카메라를 실제 입수했다는 하부 조지라는 일본인을 알게 되고, 그가 벌이는 모험과 도전에 대해 마음이 끌리기 시작한다.
동계 에베레스트 단독 무산소 등반. 
신이 용납하지 않는다면, 아니 신에게 사랑받지 않는 존재라면 불가능한 일에 대한 도전.
"에베레스트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요."라고 산을 타는 이유를 말한 조지 말러리와 같은 동경일까 아니면 하부 조지 자기 자신에 대한 또는 신의 영역으로 진군하는 목적만 남은 무모한 도전일까.
누구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고수할 것이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바보같은 도전, 또는 무모한 고집일지라도 개개인의 깨달음과 삶의 의미를 찾는 평생의 작업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부를 이루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신의 허락을 받고 마지막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안나푸르나 남벽에 도전하다 실종된 박영성 대장은 시신도 못찾는 원정을 떠났고 불행한 마지막 페이지를 써내려갔지만 후회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가 생각하는 목적이 분명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르기 때문에. - 물론 평범함은 또다른 행복 고지를 찾아 등반을 떠난다.

어렸을 때 왜 내려올 산을 올라가느냐 아버지에게 항의를 하다 한소리 들었다.
그냥 잔말 말고 따라오라.
지금도 산을 즐겨 타는 편은 아니다.
가끔 직장동료들과 주말에 산에 오른 사진을 톡으로 보내주는 친구들을 비아냥거린 적도 있다.
오죽 할 일 없으면 주말에 산이나 가냐.
그런 생각이 조금 바뀐 이유는 같은 업계에서 만난 선배.
대학시절부터 산악부였고 히말라야도 한 번 다녀왔다.
본인은 정상에 오르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는 후배들의 staff 개념으로 다녀왔다고는 하나, 항상 그것이 자랑스러운 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산봉우리 정상에는 오르지 못하지만 하나의 팀으로 책에서나 보던 산을 경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평생 잊을 수 없다 했다.
그리고, 눈 앞에 잡힐듯한 신과 같은 봉우리들의 아찔한 조우.
형님은 산에 왜 오르냐고 물었더니, 이런 이야기를 한다.
"숨이 타들어 가는 가슴을 타고 올라오다 멈출 때가 있어. 침을 뱉거나 삼킬 수도 없지. 그때 느낌이 난 너무 좋아."
변태같다.
장거리 달리기를 하고 마지막 바퀴를 돌 때 거의 쓰러질 것 같은 다리를 끌어당기며 결승점을 지나면 앞으로 엎어진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기분은 좋다. 완주를 했으니까. 쇠 맛 나는 가슴의 고통이 살짝은 마음에 든다.
그런 의미로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책에 묘사되는 산봉우리들의 모습과 도전하는 이들의 꿈을 엿보면 고통은 있을지라도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 깊은 곳에서 꼼지락거린다.
소설을 읽어가며 단어를 찾아보고 사진을 검색하는 일은 흔치 않은데, 평상시 보다 다른 독서의 모습이 나온다.
방바닥에 누워서 그냥 페이지만 넘기는 편한 소설읽기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다.

산악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산을 오른다.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죽음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하지만 눈 앞에 버티고 있는 산 보다도 무거운 짐을 다시 둘러매고 묵묵히 발을 앞으로 옮겨 나간다.
그들은 각 자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다.
산이 있어 가거나, 자신의 인내를 시험하거나, 정상에서 바라보는 장엄함을 기대하거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명예를 갈구하거나
쉽게 아무나 다가갈 수 없는 공간으로 옮기는 발걸음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고 세상에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다. 목숨과 바꿔질 대가를 치루고서라도.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직접 히말라야에 올랐고 유사한 모험에 도전하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 경험과 고통을 바탕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산악인들이 저 높은 공간을 목적으로 했듯이, 저자는 그런 외로운 영웅들의 길을 글로 남기고자 했다.
다시 만나기 힘든 산악소설의 타이틀을 부여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글로 남기고 싶은 숭고한 도전을 소설이라는 형식의 기록으로 남기기 위하여.

"나에 대해, 동료에 대해, 신들이 머무르는 산 봉우리의 존재에 대해."

먼지 쌓인 등산화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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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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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들 : 우리 동네 하드보일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팽팽한 긴장감, 한국형 하드보일드 소설의 탄생"
책 소개 코너에 출판사가 선보인 홍보 카피.
일단 이거 믿지 말자. 
페이지가 1/3 남았을 때도 피가 낭자한 택배 현장을 등장할 것으로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
현장 비슷한 씬은 등장하지만 빨간색은 제한적이다.
혹시 부담스러웠던 독자라면 페이지를 마음껏 넘겨도 된다.
소설의 구성은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수용하는 부분이 두가지 있다.
하나는 진지한 주인공의 대사가 말꼬리를 너무 잡고 있는 부분, 재치 있는 생각과 대화이지만 한 권 내내 반복되면 약간 머리가 지끈거린다.
또다른 건 인용구가 너무 많다는 것.
유명한 이들의 일화나 고전적 소설의 한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멋있어 보이는 설정이지만 한 권 내내 반복되면 약간 머리가 지끈거린다.
(솔직히 서평을 하는 나 자신도 글을 쓰거나 할 때 가끔 과도하게 써먹는 방법이라 찔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잔재미를 주고 때로는 대화의 중요한 키를 하는 부분이다 보니 격분할 수준은 아니라 다행이다.
주인공의 정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알 수 없다.
머리통을 강타당해 드문 드문 기억이 나는 수준의 묘사가 있고, 극히 제한적인 장면에서 주인공의 정체가 살짝 드러나긴 하지만 이것으로 하드보일드 소설이 될 수는 없다.
택배기사들이 현장에서 겪는 적나라한 모습들과 인간군상들, 그리고 한적한 동네에서 벌어진 몇 가지 사건들이 얽히면서 소설은 짜임새 있고 현실성 있는 스토리로 페이지를 채워 넣는다.
요즘 같이 택배물량이 차고 넘칠 때 집 앞에서 만나면 시원한 음료수라도 한잔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하루 하루, 그리고 지친 몸과 피로를 푸는 방법이 묘사되어 있다.
각자 다양한 사연과 애써 과거를 지우고 싶어하는 모습들, 가난과 빈곤의 차이가 종이 한 장 같았지만 실제 넘을 수 없을 만큼의 간격이 있다는 현실에 우울해지는 대목도 엿보인다.
 
이 소설은 하드보일드 소설이 아니다.
충분히 방향을 잡아서 섬찟한 칼날들이 공기를 가르는 발걸음을 내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평온한 하루 사이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연을 가지고 마주치고 새로운 사연을 만들어가는지.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관계에서 벗어나 혼자 있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을 하고 그들의 일상을 묘사했다.
그런데 재미있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있었고 마지막 한 장까지 탈탈 털어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이 어쩌면 새로운 에피소드를 들고 다시 노크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기대가 책꽂이 책을 꽂으며 휩쓸고 갔다.
 
뱀다리. 주인공이 주는 폐해 하나는 책을 읽다 보면 자꾸 술이 생각난다는 점이다. 싸움박질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혼자만의 영역을 유지한 채 마시는 재미도 그렇고, 과묵한 사내 둘이서 양주를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 꽃을 피우는 장면도 저녁에 혼술이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재촉한다.

마광수 시인의 시는 무척 충격적이다. 관점의 차이는 결과의 다른 세계를 만들어줄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으로 다가 왔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 존재에 대한 인정이 되는 시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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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관리대상자
주원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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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관리대상자 : 영화 한 편 본 느낌의 독서
 

영화의 모든 것은 초반 5분이 결정한다.
THX같이 사운드를 체크하는 멋들어진 화면에 이어 영화사의 아이디어 가득 찬 로고가 등장하고, 때로는 자막으로 때로는 바로 영화의 첫 씬이 등장한다.
액션, 스릴러, 코미디 같은 파퓰러한 작품들은 초기 5분 안에 관객을 스크린으로 충분히 빨아드려야 한다.
처음 호흡에서 관객과의 기싸움에서 밀리면 집중을 시킬 수도 없고, 영화보는 도중 화장실 가는 관객이 생겨난다.
네이버 평점은 10년 정도 남아 기획사들을 우울하게 하니, 5분을 무조건 잡아야 한다.
초반 도입부의 생명력은 빠른 템포 안에 얼마나 제대로 이야기를 전달하는가에 있다.
긴박한 순간이 다소 느린 화면이나 빠른 화면에 상관없이 관람객 머릿속에 다른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는 템포로 표현되야 하는 것이다.
영화 "다크나이트"와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위에 설명한 부분을 가장 효과적으로 화면에 담은 영화로 기억된다.
 
책 이야기를 꺼내면서 갑자기 웬 영화 이야기일까.
"특별감시대상자"의 시작페이지부터 영화를 보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굉장히 "비쥬얼적인 소설"이다.
도시 액션 스릴러물이라고 해야 하나?
책을 읽는 내내 굉장히 스피디한 전개와 영화제작을 염두에 둔 소설이라는데 누구나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군더더기를 많이 제거해버리고 간결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사건의 설정과 대사가 이어진다.
배경이나 현장의 묘사도 영화에서 매우 익숙한 장면들이 오버랩 될 수 있게 장치되었고, 주인공들은 독특한 이름만큼이나 개성이 강한 캐릭터를 보여주기 때문에 영화광이라면 바로 적합한 배우를 매칭시킬 수 있을 정도이다.
특히 여자 주인공중 하나인 " 리눈"은 소설의 첫 대면에서부터 이미지 캐릭터 "할리 퀸"을 연상시킨다.
 
세상이 흉흉해지면 다양한 발상의 범죄들이 쏟아져 나온다.
공권력이 약화되고 사람들이 개인화되고 철저히 개인주의로 흐르게 되면 범죄자들이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자신감의 원천이 될 것이다.
고담시티에서는 악당이 일반인이라는 느낌을 가져도 좋을 만큼 망가진 도시를 표현하고 있으니 적당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은 "자경단"
이 책에서는 "해적"이라는 이름과 "컴퍼니"라는 두가지 조직이 스토리를 끌고 나간다.
이들의 존재가 선인가 악인가 하는 부분은 중요하지 않다.
소설이 추구하는 바는 어차피 독자들이 원하는 후련함에 있을 텐데, 테러리스트가 주인공이 되는 이상 나쁜 캐릭터는 생겨날 수 없다.
구성이 영화로 만들기 좋은 요소가 하나 더 추가된다.
정의의 편인지 이기적인 집단인지 애매한 언론이 주인공들의 뒤를 캐기 시작하는데 갈등 또는 협력, 어떤 형태로 던 드라마틱한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관심있게 보았던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의 원작자인 주원규 작가의 신작 소설인 "특별관리대상자"는 앞서 이야기한대로 영화나 드라마 제작을 염두에 두고 만든 소설이라는 확신이 든다.
목적성이 뚜렷한 게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독자의 판단에 따라 다르겠지만, 간만에 거침없이 페이지가 넘어가는 몰입감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로가 약간 긴 판형의 책이 손에 들고 책장 넘기는 게 왜 이렇게 착착 감기는 즐거운 느낌인지 책의 가치가 상승하게 만든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접으며 영화 한 편 잘 봤네.라는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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