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봉우리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이기웅 옮김, 김동수 감수 / 리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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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봉우리 : 산이 있어 거기에 오르다.



스마트폰이 모든 걸 빨아들이니, 책 두께가 얇아진다.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 앞에 서서 1위부터 20위까지 면면을 들여다보면 두툼한 책은 찾기 어렵다.
덩달아 활자의 위엄도 가벼워졌다.
베스트셀러가 워낙 트랜디하고 직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야 하다보니 감성독자에 대한 어필과 출판사의 마케팅이 좌우하지만, 유사한 제목과 표지 디자인, 그리고 너무 패션화된 느낌의 책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현실은 못 내 아쉽다.
두껍고 무거운 주제에 대한 책들이 서너 권 정도는 포함되는 코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물론 그 만큼 출판사가 힘들다는 이야기다.-
밖에 들고나가거나 누워서 독서가 불가능한 두께로 어쩔 수 없이 전자책으로 구매하게 된 "일본제국 패망사"가 본 서가에서는 찾을 수 없고 결국 컨시어지 코너에서 비닐 포박에 묶인 채로 뉘여있는 모습을 보고 씁쓸했던 기억.

"신들의 봉우리", 산악소설이라는 생소한 책과의 첫 조우

어라! 두꺼워.
분권으로 나올 수도 있지만 굳이 한 권으로 만든건 한 호흡에 읽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분권하게 되면 2편에 도전하는 독자가 떨어져 나갈까하는 마케팅 고민의 결과일까.
나 역시 두꺼운 책은 마지막장까지 한결 같이 완독하리라는 다짐으로 시작하지만.... 책장에서 가장 빛나는 소설 "율리시스"는 100 페이지 읽고 5년째 북마크가 제자리 걸음이니 할 말 없다.
두꺼운 책 읽기는 약간의 용기도 필요하고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만화처럼 비닐랩핑 쌓여있는 책을 과감히 벗겨내다.

"신들의 봉우리"는 유메마쿠라 바쿠의 소설이다.
만화 좋아하는 덕후이기도 하고 만화로도 발간된 "음양사"나 "아랑전" 같은 만화 원작을 선보인 바 있다.
장사 안될 것 같은 이 소설도 만화로 출시가 되어 있다. 그림체도 마음에 들고 머리속의 웅장한 산봉우리를 그림으로 감상할 수 있는 또다른 선택지다.

산악을 주제로 영화는 떠올려 본다.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클리프행어, 얼라이브, K2 줄줄 나온다.
그런데 소설은.... 존 크라카우어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 정도 생각이 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꽤나 많은데 산악 소설은 나 스스로 관심이 적어서 그런 것일까 찾아보기 쉽지는 않다.

주인공이 네팔을 여행하던 중 골동품 가게에서 우연히 구입하게 된 오래된 카메라.
어쩌면 1924년 6월 영국 히말라야 원정대에 참가했던 조지 말러리와 얼빈의 카메라 일지도 모른다는 단서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카메라를 실제 입수했다는 하부 조지라는 일본인을 알게 되고, 그가 벌이는 모험과 도전에 대해 마음이 끌리기 시작한다.
동계 에베레스트 단독 무산소 등반. 
신이 용납하지 않는다면, 아니 신에게 사랑받지 않는 존재라면 불가능한 일에 대한 도전.
"에베레스트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요."라고 산을 타는 이유를 말한 조지 말러리와 같은 동경일까 아니면 하부 조지 자기 자신에 대한 또는 신의 영역으로 진군하는 목적만 남은 무모한 도전일까.
누구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고수할 것이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바보같은 도전, 또는 무모한 고집일지라도 개개인의 깨달음과 삶의 의미를 찾는 평생의 작업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부를 이루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신의 허락을 받고 마지막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안나푸르나 남벽에 도전하다 실종된 박영성 대장은 시신도 못찾는 원정을 떠났고 불행한 마지막 페이지를 써내려갔지만 후회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가 생각하는 목적이 분명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르기 때문에. - 물론 평범함은 또다른 행복 고지를 찾아 등반을 떠난다.

어렸을 때 왜 내려올 산을 올라가느냐 아버지에게 항의를 하다 한소리 들었다.
그냥 잔말 말고 따라오라.
지금도 산을 즐겨 타는 편은 아니다.
가끔 직장동료들과 주말에 산에 오른 사진을 톡으로 보내주는 친구들을 비아냥거린 적도 있다.
오죽 할 일 없으면 주말에 산이나 가냐.
그런 생각이 조금 바뀐 이유는 같은 업계에서 만난 선배.
대학시절부터 산악부였고 히말라야도 한 번 다녀왔다.
본인은 정상에 오르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는 후배들의 staff 개념으로 다녀왔다고는 하나, 항상 그것이 자랑스러운 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산봉우리 정상에는 오르지 못하지만 하나의 팀으로 책에서나 보던 산을 경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평생 잊을 수 없다 했다.
그리고, 눈 앞에 잡힐듯한 신과 같은 봉우리들의 아찔한 조우.
형님은 산에 왜 오르냐고 물었더니, 이런 이야기를 한다.
"숨이 타들어 가는 가슴을 타고 올라오다 멈출 때가 있어. 침을 뱉거나 삼킬 수도 없지. 그때 느낌이 난 너무 좋아."
변태같다.
장거리 달리기를 하고 마지막 바퀴를 돌 때 거의 쓰러질 것 같은 다리를 끌어당기며 결승점을 지나면 앞으로 엎어진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기분은 좋다. 완주를 했으니까. 쇠 맛 나는 가슴의 고통이 살짝은 마음에 든다.
그런 의미로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책에 묘사되는 산봉우리들의 모습과 도전하는 이들의 꿈을 엿보면 고통은 있을지라도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 깊은 곳에서 꼼지락거린다.
소설을 읽어가며 단어를 찾아보고 사진을 검색하는 일은 흔치 않은데, 평상시 보다 다른 독서의 모습이 나온다.
방바닥에 누워서 그냥 페이지만 넘기는 편한 소설읽기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다.

산악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산을 오른다.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죽음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하지만 눈 앞에 버티고 있는 산 보다도 무거운 짐을 다시 둘러매고 묵묵히 발을 앞으로 옮겨 나간다.
그들은 각 자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다.
산이 있어 가거나, 자신의 인내를 시험하거나, 정상에서 바라보는 장엄함을 기대하거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명예를 갈구하거나
쉽게 아무나 다가갈 수 없는 공간으로 옮기는 발걸음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고 세상에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다. 목숨과 바꿔질 대가를 치루고서라도.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직접 히말라야에 올랐고 유사한 모험에 도전하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 경험과 고통을 바탕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산악인들이 저 높은 공간을 목적으로 했듯이, 저자는 그런 외로운 영웅들의 길을 글로 남기고자 했다.
다시 만나기 힘든 산악소설의 타이틀을 부여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글로 남기고 싶은 숭고한 도전을 소설이라는 형식의 기록으로 남기기 위하여.

"나에 대해, 동료에 대해, 신들이 머무르는 산 봉우리의 존재에 대해."

먼지 쌓인 등산화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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