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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평점 :
때론 상상해본다.
낙엽지는 거리 벤치에서 한잔의 커피를 마시며 시를 읽는 모습을...
이제 불혹의 나이가 되어가니 더욱 그리운 풍경이다.
그러나 한권의 시집을 읽기란 여전히 어렵다. 아무 뜻없이 읽을수는 없는
노릇이니 제대로 읽어야 하는데 마땅치 않다. 읽는 사람의 느낌이 중요하다지만
함부로 멋대로 해석하며 읽어서야 그 참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시를 이해하고 읽을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잡이가 무엇일까 하던 참에
이책은 그런 욕구를 상당부분 충족해 주는 책이다.
작가는 다양한 시를 소개하고 그 시에 담긴 철학을 풍부한 지식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아.. 시는 이렇게 이해하고 이렇게 받아들이면
되겠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물론 읽는 자신의 느낌대로 시를 이해해도
그만이다. 안읽는 사람보다 시인에 가깝다.
책의 서두에는 "1680년 파리의 화려한 국립극장 테아트르 프랑세 맞은편에
문을 연 프랑스 최초의 카페 '커피 마시는 집'에 몰리에르, 라신, 라퐁텐 같은
당대의 작가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고 이야기 하며 루소, 볼테르,
몽테스키외 등도 이 곳을 드나든 사실을 적고 있다. 이들이 수다가 결국은
시가 되고 철학이 되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다.
작가는 '시란 무엇인가'를 알려주기 위하여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노벨문학상을 탄 실존인물인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청년이 어떻게 시를 알아가는지를 잘 묘사하고 있다.
청년 마리오 히메네스는 민중시인 파블로와 이렇게 대화한다.
"좋아, 하늘이 울고 있다고 말하면 무슨 뜻일까?"
"참 쉽군요. 비가 온다는 거잖아요"
"옳거니, 그게 메타포야"
메타포의 위력을 알게된 마리오 히메네스는 결국 베아트리스라는 아가씨에게
그녀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는 '날아다니는 나비'이며, 그녀의 웃음은 '한 떨기
장미이고 영글어 터진 창이고 부서지는 물이며 홀연히 일어나는 은빛 파도'
라는 은유를 구사하여 마침내 그녀를 정복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결국 "시란 진부한 일상과 낯익은 세계에 새로운 색깔을 덧입히는 일"이다.
우리는 이책을 통해 관찰과 사유가 은유의 산실이며 시의 출발이라는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된다.
덤으로 현학의 허세를 부릴 수 있는 몇가지 은유도 배울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루크리스의 겁탈>이란 책에서 '시간'을 '민첩하고 교활한
파발마'라고 하였으며,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하얀눈을 '은은하게
걷는 부드러운 동반자', '하늘의 풍요로운 우유', 티 하나 없는 우리 학교
앞치마', '말없는 여행자의 침대시트', '하늘거리는 귀공녀들', '수천 마리
비둘기 날개', '미지의 이별을 머금은 손수건', '나의 창백한 미인'등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하얀눈을 저 중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청춘이라면 어떤 인연을 얻지 못하겠는가?
우리는 이책을 통해 시에는 사람과 세상을 바꿔놓는 놀라운 힘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힘의 실체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이책에서는 정일근 시인의 <신문지밥상>이란 흥미로운 시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어머니..신문질 신문지로 깔면 신문지 깔고 밥먹고요.
신문질 밥상으로 펴면 밥상 차려 밥먹는다고요"라는 표현이 나온다. 해방후
소학교 2학년이 최종학력인 어머니의 이 개똥철학에는 따듯한 말이 사람을
얼마나 따듯하게 하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다음으로 <연애의 기술>로서 멋진 시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동,서양을
넘나드는 다양한 시와 그 사랑을 하나의 사건으로 파악하는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와 그의 저서 <사랑예찬>의 내용을 교묘하고 조화롭게 서술하고
있다. 연애의 기술로서 시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미 마리오를 통해
알게되었지만, 우리의 문정희시인은 <다시 남자를 위하여>라는 시에서 보다
역동적으로 설레이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가 힘들지.
싱싱하게 몸부림 치는
가물치처럼 온몸을 던져 오는
거대한 파도를................"
이 구절을 보고 철저히 기획된 위험없는 사랑보다는 바디우의 말처럼 우연한
사랑을 만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시를 시답게 읽지 않은 것이다.
이제 불안한 젊음을 위안하는 시들이 소개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청년실업이 시대의 문제가 되고, 백수. 백조가 넘쳐나는
이사회에서 어쨋든 젊은이들이 속살을 부대끼며 살아가야하고 살아남아야
한다. 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것 또한 바로 시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 보이는 법, 절망같은 현실이지만 희망을 노래한
시를 읽으며 희망을 찾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절망을 딛고 일어서 저 푸른 동해바다로 고래를 찾아 떠나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지 않는가? 검붉은 태양이 고래이고 고래는 곧 그대 청년이다.
이와같은 자기 사랑법을 터득하는 것 외에도 이책을 통해 우리는 위험사회에서
살아가는 법, 소비사회에서 행복을 가꾸는 방법,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 등을
배울 수 있다. 책을 읽고 나면 정신적 포만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작가의
문학에 대한 다양한 식견을 알게된다.
단순한 시의 나열과 그에 대한 해설을 한 서적은 많이 보아왔지만, 철학, 문학을
특정 장르의 시와 교묘하게 섞어 조화롭게 구성한 작가의 능력도 돋보인다.
다만 그것이 때론 인위적이어서 시의 순수함이 조금은 퇴색되어 보이는 것이
단점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시를 읽어야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작은 희망의 등불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좋은 책이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미사여구로
점철된 자기개발서와 오역이 넘쳐나는 외국서적을 읽기보다는 한편의 시를
읽으시라!
이책을 읽기도 전에 이미 매년 시집 한권씩을 읽어내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책을
읽을 필요도 없겠다. 그는 이미 눈내리는 겨울 강가에서 온 세상을 시로 읽어낼
능력이 있는 사람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