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의 재판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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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혼자 지훈은 친구 양길과 떠난 필리핀 여행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사건 두 달 전, 지훈 명의의 사망보험금 19억 원의 수익자가 양길로 되어 있었고, 모든 정황은 양길을 살인자로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법의 심판은 끝내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지 못한다. 판결의 이유는 '증거 불충분.'


지훈의 약혼자 선재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재판이 정의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닫는다. 법과 정의 사이에서 느끼는 깊은 슬픔과 분노 속에서, 그녀는 결국 살인자 양길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재판대 위에 세우기로 결심한다. 법의 수사망을 교묘히 빠져나간 가해자를, 과연 그녀는 심판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캄보디아 만삭 아내 사망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쓰였다고 한다. 변호사 출신 작가의 소설답게 이야기의 구성은 매우 촘촘하고 설득력이 있다. 법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도 충분히 이해하며 따가갈 수 있도록 서사가 친절하게 전개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수렁에 빠지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몹시 고통스러웠다.


❝용의자를 위한 이론은 잘 짜여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에게는 턱없이 위로가 부족한 시스템이었다. ❞ (156p)

▫️선재는 진실과 다른 방향으로 속절없이 흘러가는 재판을 바라보며 한탄한다. 나는 살아오면서 법정에 가본 적이 없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선재의 모습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다. 왜 법은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을까.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해, 여러 명의 가해자를 풀어주어도 괜찮은 걸까.


❝법은, 재판은 결국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을까? 분쟁의 종식, 시끄러워지는 걸 막는 것.......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법이 정작 관심 있는 건 '지킨다'는 것에 있었다. '규칙'을. '질서'를. 그들의 '체면'을. ❞ (271p)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 나는 이 사회의 시스템이 '정의'를 위해 작동한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소설 속 피해자들은 그런 믿음이 얼마나 순진했는지를 보여준다. 법은 정의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사회가 안전하게 유지되기를 바랄 뿐이다. 다수를 위한 사회는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그 다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

▫️결국 또 다른 법을 이용해 자신만의 '4의 재판'을 열게 된 선재에게, 나는 마음 깊이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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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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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그 이상을 향해 질주하는 사람들의 광기를 그린 블랙 코미디.

정신평등운동으로 '평등'이 절대 규범이 된 시대, 개인의 언행과 신념은 예외가 없다. 시험, 단어 사용, 서열 등 모든 것이 통제되는 사회가 펼쳐진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부모 아래에서 자란 피어슨은 교리와 가족으로부터 도망쳐 에머리의 가족과 함께 살게 된다. 둘도 없는 단짝이 된 두 사람은 평등에 미친 시대 속에서 결국 서로 다른 신념을 선택하게 된다.

피어슨은 사회적 규범과 자신의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하는 반면, 에머리는 변화를 자신의 목표 달성에 적극 활용한다. 그런 에머리를 보며 피어슨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고, 결국 두 사람은 되돌릴 수 없는 각자의 길로 나아간다. 뒤틀린 시대, 두 친구는 과연 어떤 태도로 자신의 신념을 지켜 나갈 수 있을까.


작품 속 정신평등운동은 의미만 놓고 보자면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운동처럼 보인다.
"태어날 때 우연히 얻은 지적 능력으로만 타인을 평가하지 말라는 교훈"(164p)은 차별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결과, 기술이나 지식이 없어도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된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라는 표식은 더 이상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외치는 불평등의 제거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작품 속 사회는 개인 간의 차이와 능력, 개성을 문제 삼고, 결국 모두를 가장 낮은 기준에 맞추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극단적으로 변해버린 이 사회는 독자에게 불편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의 풍자는 독자로 하여금 씁쓸한 실소를 짓게 만든다.

"사람에 대해 머리가 '안 돌아간다'는 표현을 쓰면 안 되듯, 시곗바늘에 대해서도 '안 돌아간다'라는 표현을 쓸 수 없었다. 사람은 '단순'할 수 없었고, 수학 문제도 마찬가지였다."(202p)

A를 A라고 부를 수 없고, B를 C라고 말해야만 하는 시대. 두 주인공이 단순히 사상이 달라져 멀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적·도덕적 입장이 다른 개인의 관계가 거대한 사회적 신념 앞에서 어떻게 균열되는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작품 속 사회와 인물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독자가 스스로 현실의 문제를 더 날카롭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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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아래층에 반달곰이 산다
마리메 지음, 임지인 옮김 / 라곰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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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달곰과 인간 여자의 사랑스러운 나날을 담아낸,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 맨션 2층으로 이사 온 유리코는 첫날부터 1층에 사는 반달곰과 마주친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집으로 유리코를 초대해 커피와 벌꿀 케이크를 대접하는 반달곰. 그 자연스럽고 다정한 태도에 유리코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렇게 반달곰과 함께하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일상이 이어지고, 유리코는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던 문제들을 마주할 용기를 조금씩 얻는다. 늘 어렵게만 느껴졌던 일들이 사실은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다는걸, 반달곰과 함께하며 깨닫게 된다.

▫️작품에는 반달곰을 비롯해 수달, 삼색 고양이, 여우 등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인간처럼 커피를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푸드트럭을 운영하기도 한다. 어쩌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반달곰을 통해 이들과 관계를 맺게 된 유리코는 지친 일상 속에서도 작지만 분명한 행복을 하나씩 느끼기 시작한다.

❝여태껏 혼자 먹건 함께 먹건 똑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과 함께 먹으며 깨달았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 전골이 훨씬 더 맛있다는 걸. ❞ (121p)

우리는 살아가면서 일상의 작은 행복을 자주 놓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나 날씨가 유난히 좋은 날, 우연히 지인을 마주치는 순간조차 그것이 행복이라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반면 반달곰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늘 밝은 얼굴로 상대를 대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지친 삶 속에서의 나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레 돌아보게 된다.

❝지쳐 있는 나에게는 그 화사한 미소가 다소 눈부셨다. 변함없이 활기찬 놈이다. ❞ (164p)

문득 반달곰처럼 화사한 미소를 건넬 수 있는 존재다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반달곰과 유리코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복잡하고 무거웠던 걱정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듯하다.

내 삶 역시 이들처럼 조금 더 따뜻하고 포근하게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말없이 마음을 채워주는 작은 용기가 차오르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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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아마존 베스트셀러 기념 전면 개정판)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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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며, 묵묵히 과거, 현재, 미래의 나를 품어주는 에세이다.

🏷️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될 것이다』는 '잘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흔들리는 모든 이들에게 작가가 건네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책이다. 나라는 존재에게 필요한 용기와 질타, 타인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마음, 그리고 때로는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우울과 불안까지. 작가는 나를 둘러싼 모든 감정과 상황이 사실은 내가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임을 하나하나 짚어 나간다.

"부디, 기필코, 삶은 남이 대신 살아 주지 못하는 것이기에, 내가 나를 살아 내기를 바라며."(38P)

▫️그렇다. 내 삶은 결국 나만이 사는 것이다.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쉽게 잊고 마는 이 사실을 따뜻하면서도 조금은 냉철한 말로 건넨다. 그 말들이 여러 번 내 마음을 울린다. 그의 위로가 와닿는 순간, '아, 나는 잘 살아가고 있구나. 여기까지 온 나에게 칭찬이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누구나 자신에게 닥친 역경과 고난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과거의 일들이 지금까지도 마음을 좀먹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런 나에게 꼭 필요했던 말은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망가지는 내 모습이라고. 잊지 말고 나 하나 정말 잘 살아 내자고."(53P)
였다. 지금처럼 행복을 느끼고, 잘 웃고, 잘 먹고, 잘 지내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복수이자 나 자신을 위한 삶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작가의 말들은 잊고 지냈던 마음의 중심을 정확히 찌른다.

▫️이 책은 나처럼 하루하루가 버겁고, 가끔은 멈춰 서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독여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말들이 아닐까 싶다.

▫️작가에게 받는 '참 잘했어요' 도장이 나에게 유독 큰 힘이 된다. 평범한 하루에도 '잘하고 있다'라고 말해 주는 이 도장은, 칭찬이 인색했던 부모님 아래서 자란 나에게 조금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성인이 된 후에는 진심이 담긴 타인의 칭찬조차 어색한 웃음으로 흘려보내곤 했지만, 오랜만에 받은 이 도장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를 조용히 지탱해 주는 힘이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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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조선여행 : 전국 편 - 지식 가이드와 떠나는 팔도강산 역사 투어 한국사 여행 2
트래블레이블 외 지음, 이도남 감수 / 노트앤노트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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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의 역사를 하나의 코스로 따라가며 읽을 수 있는 '역사 투어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역사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국 곳곳의 역사적 장소를 직접 여행하듯 만나게 된다. 각 장소마다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가 더해져,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를 사건과 인물 중심의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낸다. 《당일치기 조선여행 전국 편》 한 권만으로도 시간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책은 수원, 서울, 전주, 인천, 경주 등 여러 지역을 실제로 여행하는 듯한 흐름으로 전개된다. 정조의 효심과 사상이 담긴 수원 화성, 동학농민혁명의 중심 무대였던 전주, 나병 환자들과 함께 조선총독부로 향했던 최흥종의 삶을 따라가는 광주,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을 통해 조선 시대 여성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강릉까지, 교과서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숨은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식민지 정책의 의도가 짙게 담긴 대전에 이르게 된다. 각 지역마다 녹아 있는 역사와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져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일반적인 역사 도서가 왕이나 영웅 중심의 서술에 집중한다면, 이 책은 하나의 장소 위에 살아 숨 쉬었던 평범하지만 특별한 사람들의 삶에 주목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 땅이 오랫동안 간직해 온 소중한 기억들을 꺼내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장 인상 깊었던 지역은 전주였다. 전주 출신인 나에게는 경기전과 풍남문, 동학혁명 기념관은 익숙한 장소였지만, 전주가 조선 왕실의 뿌리가 내려진 도시라는 사실은 새롭게 다가왔다. 그런 공간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동학농민군이 외쳤던 새로운 세상으로의 변화는 실패가 아닌 시작이었습니다."(137p)
외면받아 왔던 백성들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었던 전주 편은 민중의 작지만 반짝이는 힘을 전해주었다.

각 장소 앞에 실린 그림 지도와 사진도 인상 깊었다. 그림 지도는 따라 걸으며 '온고지신'의 매력을 느껴보는 경험은 역사 여행의 재미를 더해준다. 책장을 넘길수록 배낭 하나 메고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고, 역사는 정보를 넘어 관심을 갖게 만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들의 삶을 통해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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