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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7년 8월
평점 :
상실 속에서, 결국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하는가.
고등학생 때, 지친 마음을 달래주던 곳은 학교 도서관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일본 문학에 빠져있었지만,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과 어딘가 촌스러워 보이는 표지는 유독 손이 가지 않았다.
눈길은 계속 갔지만, 괜한 고집에 그 호기심을 눌러왔던 기억이 난다.
결국 참지 못하고 책을 펼쳤지만, 그때의 나는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와타나베의 방황과 문란한 성생활, 그리고 삶을 포기하는 인물들.
어린 나에게 그들의 선택은 쉽게 공감되지 않았다. 지금도 모든 행동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남겨진 사람들이 느꼈을 상실의 고통만큼은 분명하게 마음을 파고들었다.
이야기는 주인공 와타나베의 절친 기즈키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와타나베는 죽은 친구의 연인 나오코와 슬픔을 나누며 가까워진다.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던 나오코는 애써 괜찮은 척하지만, 점점 무너져간다.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지만, 그 이후 나오코는 홀연히 사라진다.
수개월 후, 와타나베는 나오코가 숲속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다는 편지를 받고 그녀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중년 여성 레이코를 만나고, 나오코는 그녀와 함께 생활하며 조금씩 회복의 기미를 보인다.
한편, 대학교에서 만난 미도리는 전혀 다른 빛을 지닌 인물이다.
발고 솔직한 그녀는 와타나베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가고, 와타나베 역시 점차 그녀에게 끌린다.
결국 그는 미도리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 사랑임을 깨닫지만, 나오코가 죽음을 선택하면서 다시 깊은 상실 속으로 빠져든다.
레이코의 조언을 통해 와타나베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오코를 떠나보낸다.
그리고 미도리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속에서 상실을 견디고 있다.
나오코가 슬픔을 피해 도망쳐 요양원이라는 공간에 스스로를 가두었다면, 와타나베와 미도리는 그 아픔을 안은 채 현실을 살아간다.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감당하는 이들의 모습은, 물이 말라버린 어항 속에서 버티는 물고기처럼 위태롭게 느껴졌다.
끝내 버텨내는 존재와, 슬픔에 잠식되어버리는 존재가 나란히 놓여 있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당시 일본 사회의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함께 담아낸다. 안보반대투쟁으로 상징되는 '혁명의 시대' 속에서, 젊은이들은 방향을 잃은 채 흔들린다.
그들은 슬픔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고, 결국 어떤 이들은 삶 자체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인물들은 상처를 견디는 방식으로 서로의 몸을 통해 연결되기도 한다.
직설적인 장면들이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상처 입은 존재들이 서로의 온기를 빌려 버티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더 안타깝게 다가왔다.
나오코라는 과거와, 미도리라는 현재 사이에 선 와타나베.
다시 과거의 상처 속으로 가라앉으려는 그에게, 레이코는 현실적인 선택을 권한다.
자신이 끝내 하지 못했던 선택, 그리고 남겨진 후회.
그 조언을 통해 와타나베는 과거라는 동굴에서 벗어나 현재의 삶으로 나아간다.
그의 선택이 완전한 치유는 아닐지라도,
나는 그가 끝내 삶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응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