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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 제6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김의경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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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고객에게 복수하기 위해 부산으로 떠나는 다섯 청년들의 시트콤 같은 이야기.

피자 브랜드 콜센터에서 일하는 주리, 용희, 시현, 형조, 그리고 피자 배달 기사인 동민은 모두 스물다섯 살 동갑내기 친구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꿈을 이루기 전, '잠시 머무르는 정류장'과도 같은 콜센터에서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내일 진상 죽이러 갈 거야. 부산 해운대로."(69p)
라는 시현의 말 한마디로 다섯 사람의 갑작스러운 여행이 시작된다. 우당탕탕거리며 흘러가는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한 기분과 함께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20대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용희는 두려웠다. 평생 불안한 일자리를 전전해야 하는 것이. 취업하지 못하고 결혼도 못한 채로 세상에 내던져지는 것이. 고된 노동에 시달리느라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 지 오래된 엄마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87p)

이들은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두려움을 안은 채 부산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과연 어떤 감정과 마주하게 될까.

작품 속 인물들은 아나운서 지망생, 창업 준비생, 공무원 준비생으로, 콜센터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바쁜 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준비생'이라는 이름 아래 놓인 현실은 늘 불안하고 초라하다. 콜센터에서 마주하는 진상 고객 앞에서, 고객과 직원이라는 분명한 갑을 관계 속에서 스물다섯의 청춘들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감정을 삼켜야 한다. 그런 현실을 잠시 벗어나 떠난 부산에서 이들은 분명 자유를 느끼지만, 동시에 다시 콜센터로 돌아가야 할 자신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 장면들이 과거의 나와 겹쳐 보이면서 깊은 공감을 느꼈다. 하루에도 수십 장의 이력서를 쓰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속에서 제자리를 맴돌던 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섯 명의 청춘은 부산에서의 짧은 일탈을 통해 조금씩 서로에게 스며든다. 콜센터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진상 고객을 견뎌내던 이들은, 여행을 통해 '함께 버티는 존재'가 되어간다. 지치고 숨 막히는 콜센터라는 현실 속에서, 서로의 존재는 잠시나마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쉼터였다.


"우리는 모두 이 일자리가 아쉬운 사람들이고 센터에서 잘리면 다시 힘든 구직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지렁이가 꿈틀해봤자 변하는 건 없다."(174p)

우리는 모두 20대의 청춘을 지나왔거나, 지나고 있거나, 혹은 앞두고 있다. 찬란하고 빛날 것만 같던 20대는 사실 '콜센터'와도 같은 공간에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처음으로 마주하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공간이 영원히 머무는 곳이 아님을 말해준다. 언젠가는 각자의 문을 열고 사회로 나아가게 될 것이며, 그 문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문을 열 용기는 결국 나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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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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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수는 가출청소년 이호를 만나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가출청소년이었던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견딜 수 없는 추위를 느끼고, 이호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본다. 결국 인수는 이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인수는 폭력적인 가정에서 도망쳐 떠돌던 중 성연과 경우를 만나게 된다. 폭력적이고 거친 성연, 그리고 바르고 올곧은 모습의 경우와 함께하며 ‘우리집’이라 불리는 가출팸들의 공동거주지에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A의 갑작스런 죽음과 시신 처리, 그리고 경우의 자수로 인해 ‘우리집’의 아이들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 속절없이 휘말리게 된다.

☕️ 도둑질이나 성매매 같은 방법으로 돈을 버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경우는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성실히 돈을 모았고 인수의 잘못된 행동을 말렸다. 그런 경우의 모습을 보며 인수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그 감정의 이유를 경우와 함께 식당 일을 하게 되면서, 인수는 깨닫게 된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경우만의 특징이랄까 매력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나는 경우 곁에서 나쁜 짓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97p)

경우에게는 소위 ‘가출팸’ 아이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뒤틀림‘이 없었다. 그는 엄마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며 착실하게 돈을 모았고, 그 모습은 유난히 밝은빛을 띄고 있었다. 어쩌면 인수는 그 빛을 동경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경우가 사라진 세계에서야 비로소 ’경우‘라는 존재를 되돌아보게 된 인수. 자꾸만 외면해왔던 경우의 따뜻한 관심과 손길을, 이제는 이호를 통해 자신의 묵은 마음을 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소설 속 아이들은 가정 폭력, 불우한 환경, 부모의 부재 등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 있다.

”아빠에게 조금 더 이해 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거든요. 내 방에서 자고 싶고, 고양이를 쓰다듬고 싶어요.“(246p)

아이들이 바랐던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조금의 이해, 조금의 손길, 조금의 관심. 그러나 그 작은 결핍은 아이들을 거리로 내몰았고, 그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행동들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이를 너무도 현실적으로 그려내기에 더 마음이 시리다.

”부디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지기를. 햇볕을 쬐면 정화되기를. 경우 없는 세상에서도.“(262p)

경우는 아이들에게 ’바른 길로 이끄는 손길’이었다. 그 손길이 끝내 아이들에게 온전히 닿지 못해 모두 흩어지고 말았지만, 어른이 된 인수만큼은 ‘경우‘와 같은 삶을 살아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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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게임
마야 유타카 지음, 김은모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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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요시오는 초등학생으로, 친구들과 함께 하마다 탐정단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그러던 중 마을에서 연쇄 고양이 학살 사건이 발생하고, 탐정단의 단원이자 요시오의 짝사랑 상대인 미치루가 아끼던 고양이마저 희생된다. 사건을 조사하던 요시오는 전학생 스즈키로부터 "나는 신이야"라는 말을 듣게 된다.

스즈키는 사건의 범인뿐 아니라 요시오의 미래와 출생의 진실까지 알고 있는 듯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요시오는 이를 그저 새로운 '신 게임'쯤으로 넘긴다. 하지만 단짝 친구 히데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상황은 급변한다. 큰 충격에 빠진 요시오는 스즈키에게 히데키를 죽인 범인에게 '천벌'을 내려 달라고 부탁하고, 실제도 천벌은 내려진다.

"내가 천벌을 내려줄게. 너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거든. 일종의 보답이야."(194p)

그 순간부터 요시오는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정말 스즈키는 신인 것일까, 천벌을 받은 사람은 진짜 범인이었을까. 폭풍처럼 몰아치는 결말 앞에서 요시오는 또 한 번 명확하지 않은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 이 작품은 일반적인 추리소설처럼 범인을 추적하거나 트릭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신'을 등장시키면서도, 그 말이 왜 진실인지 설득하지 않는다. 그저 "신의 말이기 때문에 진실"이라고 할 뿐이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서도 "진실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다 맞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20년째 회자되는 전설의 결말'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마지막 장에서 실감했다. '범인을 알게 되었지만, 동시에 알 수 없게 되었다.'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린다. 이 소설은 범인을 밝히지만, 왜 그 사람이 범인이지에 대해서는 끝내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남는 찝찝함마저도 작가의 의도처럼 느껴졌다. '이 불편한 감정을 독자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마치 어딘가에서 '신'과 같은 위치에 선 작가가, 우리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수많은 의문 속에서도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그것은 '신'이라는 존재와 마주하는 일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요시오가 "신과 만난 것이 후회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도 전부 다 잊고 싶었다.'(234p)라고 말하듯, 어쩌면 진실은 알기 전이 가장 행복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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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 - 원샷한솔 가족 이야기
김한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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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은 유튜버로 활동 중인 원샷한솔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이 책은 가족과의 이별, 상처와 후회, 그리고 사랑을 경험해 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회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1부 <사라지는 집>에서는 부모의 이혼과 반복되는 이별 속에서 외로움과 결핍을 느끼며 자란 어린 한솔의 모습이 그려진다. 특히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의 이별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나중에. 나는 이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안다. 그 사실을 분명하게 안다는 것이, 어쩌면 아버지가 내게 남긴 가장 값진 유산일 것이다."(52p)

아버지에게 끝내 전하지 못했던 말들이 후회로 남았기에, 그는 더 이상 마음을 미루지 않고 진심을 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2부 <돌아오는 집>에서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큰아빠, 큰엄마와 함께 살게 되며 받았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서로의 선택이 아닌 상황 속에서 가족이 되었지만, 그 누구보다 어린 한솔을 따뜻하게 품어준 새로운 가족. 그들에게 받은 사랑이 자신을 어둠 속에서 끌어내 주었다고 말한다.

3부 <함께 크는 집>은 반려견 토리와의 일상을 다룬다. 장애라는 벽을 넘어 토리와 소통하는 법을 배워가며, 그 과정 속에서 토리가 아니라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 4부 <기다리는 집>에서는 숨기고 싶은 가족이 아닌 '자랑하고 싶은 가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다짐이 담겨 있다.


나는 원샷한솔의 오랜 구독자로 그의 영상을 거의 빠짐없이 챙겨 본다.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설지만, 책 속의 한솔은 내가 알던 것처럼 마냥 밝은 사람만은 아니었다. 그는 늘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두려워하던 아이였고,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수많은 좌절을 겪어온 사람이었다.

지금의 한솔을 만들어 준 것은 새로운 '가족'의 존재가 아닐까 싶다. 그의 큰엄마와 큰아빠는 어린 한솔에게 "그래도 우리가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한다. 두 분의 용기와 노력이 한 아이를 성장시켰고, 그 아이는 이제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사랑을 전하는 어른이 되었다.

나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한솔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놀란 나에게 환한 미소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던 모습. 외로움과 결핍 속에서 마음을 숨기던 아이는 어느새 사랑을 주는 기쁨을 아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나 역시, 사랑을 미루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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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것일수록 작은 목소리로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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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의 골목 지하에 위치한 작은 바 '히바리'와 헬스클럽 '사브'를 배경으로, 이 작품은 각자의 상처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마주하고 풀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소설은 여섯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물들은 서로 다른 사연 속에서 고통과 외로움을 견디고 있다.

🏷️ 일상과 가족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중년의 직장인 혼다, 일의 압박에 짓눌린 미레, 딸의 죽음 이후 무너진 가족 관계 앞에서 한계를 느끼는 치과 의사 시카이까지. 이들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고민을 안고 히바리를 찾는다. 그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은 히바리의 주인 곤다, 일명 '곤마마'다. 그는 조심스럽고 따뜻한 '작은 목소리'로 그들의 마음을 보듬는다. 그러나 곤마마 자신도 스스로를 위로하지 못한 채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위로나 명확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소중한 것일수록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야 하거든. 그래야 상대 마음 깊숙이, 정확하게 전달되니까."(39p)
결국 그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작지만 진심 어린 말 한마디였다.


☕️ 작품 속 인물들의 사연은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더욱 공감이 된다. 일에 대한 압박, 가족과의 단절 같은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역시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인물들이 아픔을 숨긴 채 웃고 있을 때에도 곤마마는 조용히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것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일어난 일에 대해 내가 무엇을 하느냐 아니겠어?"(111p)

☕️ 이 작품은 곤마마를 통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말을 잘하는 능력이 아니라 들어주는 태도와 공감임을 보여준다. 상대를 존중하며 귀 기울일 때야 비로소 진심이 전달된다.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위로해 주던 곤마마 역시, 결국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던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별해 보이는 사람도 각자 상처와 어둠을 안고 살아가며, 그 역시 타인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 속 인물들은 ‘소중한 것일수록 작은 목소리로 전달되는 진심’을 통해 자신의 삶을 견디고 조금씩 성장한다. 덕분에 독자는 지금 자신의 삶의 고통도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여운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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