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가슴을 후벼파는 대사 한마디가 있다 - 우리가 사랑한 드라마 명대사 필사집
정덕현 지음 / 서교책방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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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님,
제발 에세이 좀 내주세요!



한때 드라마 시장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마음을 흔들렸다.


평범한 스턴트우먼에게 마음을 빼앗긴 성공한 백화점 사장,
루시퍼라 불리던 상속자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부잣집 도련님들을 쟁취하는 세탁소 집 딸의 이야기들.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보며
동경 어린 마음으로 등장인물들에게 온 마음을 바쳤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그렇게 사랑했던 드라마 속
빛나는 대사들을 한데 모은 필사집이다.



📖 단순히 명대사를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가다 보면
드라마 속 지금보다 앳되었던 배우들의 얼굴과
그 장면 속 날씨, 그 장면을 보던 그 시절의 내 모습,
그리고 그 문장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내 마음까지 하나둘 떠오른다.


대사들을 직접 적어 내려가는 것도 분명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감동하게 했던 것은
작가의 문장들이었다.


작가 자신의 경험과 일상을 담아낸 짧은 이야기에는
나를 향한 따뜻한 격려와 희망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유독 마음을 글썽이게 했던 이야기는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에 담긴 사연이었다.


정작 자신에게는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지 못했던
드라마 속 김 부장과,
자신의 모든 것을 아들을 위해 쏟아부었던 작가의 어머니.


그 이야기를 읽고 나니
평범하게 지나쳤던 말 한마디가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그냥 너무 좋아서.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네.”(165p)



❔드라마 속 대사에 마음이 사무치는 이유는 뭘까.


멋진 배우가 그 말을 해서도,
그 장면의 분위기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타인을 위로하고 사랑해 주던 수많은 말들을
정작 나 자신에게는 해준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를 향한 따뜻한 말 한마디가
사실은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그저 추억에 젖어 좋아했던 드라마의 명대사를
마음껏 필사할 생각에 들떠 있던 마음이
책을 덮을 때쯤에는 조금 차분해져 있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드라마 속 대사보다
작가의 말 한마디에 더 많이 위로받았다.


🔖 그래서 나는 작가님께 꼭 한마디 하고 싶다.

작가님,
제발 에세이 좀 내주세요…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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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의 삶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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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 동경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동경은 때로는 미련과 후회로 남아 있기도 하고,
설렘과 작은 행복으로 밀려오기도 한다.


📖 스티븐은 어린 시절 갑작스럽게 가족을 떠난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간다.
아버지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왜 가족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아가기 위해서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는
자신의 기억 속 아버지와는 사뭇 달랐다.


아버지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 모습이 또렷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흐릿해지는 스티븐.


대체 아버지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스티븐은 왜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걸까.
큰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 궁금증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이게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스티븐은 아버지를 찾으면
자신이 설명하기 어려웠던 감정과
살아가면서 느꼈던 힘든 것들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가 결국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찾은 뒤 마주한 깨달음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어서 놀라웠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으로 갈수록 작품의 먹먹함은 더욱 커졌다.



▫️작품을 읽으며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결국 그 어떤 것도 영원히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어린 스티븐에게 엄마는
“있잖아, 어떤 사람은 우리 삶에 잠시 들어왔다가
그냥 그렇게 사라지는 거야.”(146p)라고 말한다.


정확히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말이 이상하게 신경 쓰였다.
뒷부분에서 스티븐의 친구 차우 역시 비슷한 말을 건네자,
이 말들이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작 『사라진 것들』에서도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던 작가가
이번에는 사람과 관계, 그리고 기억을 통해
또 다른 ‘사라지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앤드루 포터 작가 특유의 서늘한 먹먹함도 좋았다.
슬픔을 과장하지도, 큰 사건을 앞세우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 한쪽이 먹먹해진다.
마치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불쑥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결국 기억이라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과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을 만들어간다.


스티븐 역시 아버지를 끝까지 찾지 않았고,
끝까지 미워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자신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조금씩 바꿔온 것은 아닐까.



🔖 내가 기억하는 사람의 모습은
사실은 그 사람을 바라보던 나의 마음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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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츠하우스 ㅣ ANGST
강지영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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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아니, 이제는 K-오컬트!!!


한남동에 위치한 고급 빌라 ‘프린츠하우스’에 살고 있는 선우.
그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방 한 칸을 월세로 내놓게 된다.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는 승아를 세입자로 들이게 되고,
그녀는 자신이 선우가 이사 오기 전에 프린츠하우스에 살고 있던 사람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다른 주민으로부터 승아와 프린츠하우스에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녀가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고 있었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모는 그 사실이 드러난 뒤 사라졌다는 것.

작품은 시작부터 이런 과거의 이야기를 꽤나 자세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아,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처음부터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내가 진실이라고 받아들였던 것마저
사실은 진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순간, 끝났다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았다.

이야기는 고급 빌라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진행되며
악마에게 잠식된 영혼, 구마사제, 그리고 퇴마까지
오컬트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들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한국을 배경으로,
그것도 소위 부유한 계층의 비밀스러운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익숙한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소름이 돋는다.

특히 이 작품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꽤나 독특하다.

보통의 소설은 초반에는 천천히 이야기를 쌓아가기 마련이다.
인물과 사건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차곡차곡 서사를 만들어간다.

그런데 이 작품은 초반부터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같다.
이미 클라이맥스를 진행하고 있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과거의 사건이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져 왔는지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알려주기 때문에 오히려 더 궁금해진다는 점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 잠깐 놓았던 책을 다시 잡게 된다.

분명 퇴마가 이루어지고,
모든 것이 무사히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마지막에 다다르면
그게 끝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순간,
이야기는 다시 한번 뒤집힌다.
지금까지 읽어온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고,
그때부터는 정말 소름이 돋았다.

마치 낯선 여행지에서
능숙한 안내원을 만나 아무 걱정 없이 여행을 하다가
어느 순간 어떤 시골 마을에 나 혼자 뚝 남겨진 느낌이랄까.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엇이 맞는지도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은 든다.

그렇게 방황 아닌 방황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와, 이 작품 미쳤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건
악마에게 사람이 씌는 이유였다.

모든 것의 시작에는 ‘고독’이 있었다.
역시 사람을 가장 깊은 곳까지 끌어내리는 건
고독이라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진짜 무서운 건 고독도, 악마도 아닌 것 같았다.

결국 그 안에 담겨 있던 건
인간의 욕망과 우리가 감추고 살아가는 진짜 얼굴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고 나니

사람이 더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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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 - 보이지 않아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인지노동'의 불평등
앨리슨 데이밍거 지음, 전경훈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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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빨래, 청소 등 우리는 살아가면서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여러 가사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이 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머릿속 노동’,
즉, 가시적인 노동 이외의 ‘인지노동’을 누가 더 많이 하고 있는지에 주목한다.

어떤 물건이 떨어져 가는지 체크하고,
아이들이 더 건강한 식사를 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일상의 계획을 세우는 일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정을 꾸려가기 위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생각과 판단, 계획을 저자는 ‘머릿속 노동’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놀랐던 것은
내가 그동안 직접 행동하고 뚜렷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노동만을
가사노동으로 생각해 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여행지를 정하기 위해
여러 후보지를 찾아보고 정보를 비교한 뒤
“a, b, c 중 한 곳으로 가면 될 것 같아”라고 말한다면,
상대방은 그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겉으로는 함께 여행지를 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결정에 이르기까지 이미 한 사람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상당 부분 이루어진 것이다.

저자는 이성 커플과 퀴어 커플을 포함한 172명의 커플을 심층 인터뷰하며
실제 가사노동이 어떻게 분담되고 있는지를 살펴봤다.
여성의 노동 분담이 남성보다 높은 경우가 많았지만,
그 이유를 ‘성격 차이’로 설명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상대방이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수행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본인 역시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이 필요한 일을 하고 있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퀴어 커플 역시
한 사람에게 가사노동이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다만 이성 커플에 비해 그 격차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이 결과를 보면서 나는 가사분담의 차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성별보다 ‘성격의 차이’로 쉽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더 꼼꼼한가 가 아니라,
어떤 노동이 누구에게 자연스럽게 맡겨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또한 가사노동을 비교적 공평하게 분담한다고 해서
반드시 더 큰 만족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상대가 얼마나 많은 일을 분담하고 있느냐보다
자신의 바람과 실제 삶이 얼마나 부합하는지가 만족감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나의 생활을 돌아보게 됐다.

지금까지 나는 가사분담을 할 때 눈에 보이는 일들을 기준으로 생각해 왔다.
누가 설거지를 했는지, 누가 청소를 했는지를 세어보며
나름대로 공평하게 나누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한 시각으로 우리의 일상을 다시 바라보니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남편이 하지 않았던 일들을 자연스럽게 내가 맡아오면서도
그것을 노동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의 양만으로 우리의 관계를 판단할 수도 없었다.
자신의 바람과 실제 삶이 얼마나 일치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돌아보면,
나는 지금의 결혼생활에 꽤 높은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편이다.

물론 결혼 초반에는 자잘한 문제들로 싸우기도 했다.
남편이 쉽게 개선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마주할 때면 답답하기도 했고,
결국에는 ‘원래 저런 성격이니까’라고 생각하며 이해하고 넘어간 적도 많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때 내가 왜 불편했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단순히 ‘남편이 이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어떤 일을 누가 먼저 알아차리는지, 누가 기억하고 계획하는지,
누가 자연스럽게 책임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니
그동안 막연하게 느꼈던 불편함의 정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우리 집의 가사분담은 공평한가?’라는 질문에서 끝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가사노동뿐만 아니라 그 뒤에 존재하는 인지노동까지 바라보며,
각자의 상황과 바람에 맞게 어떻게 분담해 나갈 것인지 고민하게 했다.

무엇을 얼마나 했는지를 단순히 숫자로 나누는 것보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노동까지 서로 인식하고 조율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내게 알려준 가장 중요한 것이자,
가사분담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막연하게만 느꼈던 불편함을 비로소 구체적인 언어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불편했는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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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에두아르 르베 지음, 정영문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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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소설 작품은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사건과 그에 대한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간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정반대다.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늘어놓는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것을 더 선호하는지,
자신에게 어떤 습관이 있는지까지.

처음에는 솔직히 대체 이게 무슨 내용인가 싶었다.

마치 내가 면접관이라도 된 것 같았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아주 사소한 것까지 끊임없이 들려준다.

‘저런 것까지 말한다고?’
요즘 말로 하면 소위 ’TMI’라고 할 만한 이야기들도 많았다.

그런데 자기소개서 같은 글을 계속 읽고 있다 보니
중간중간 ‘응?’하고 다시 읽게 만드는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빼곡히 적어 내려간 자화상 속에서
예상치 못한 골목에서 마주친 묵직한 기록들.

평소 내가 고민하고 있던 것에 대한 질문이 되기도 했고,
애써 부정하고 있던 나를 다그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문장은 읽자마자 ‘와, 이거 명언인데?’
싶어 다시 한번 읽기도 했다.

솔직히 읽으면서도 난감했다.

지금까지 읽어온 작품들과는 너무 다른 느낌이었고,
이 책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문장 하나하나에 계속 집중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에두아르 르베가 자기 삶을 이루는 조각들을 하나씩 나열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처럼 나도 스스로에 대한 것으로
종이를 가득 채울 수 있을까.

‘나는 바나나를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바나나우유도 싫어하지는 않는다.’
라는 식으로.

내가 처음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 순간은
대학교 입시를 준비할 때였다.

처음으로 자기소개서를 쓰게 되었을 때,
나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아하는 건 뭔지, 싫어하는 건 뭔지,
나아가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그런데 작가는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자신을 이루고 있는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부럽기까지 했다.

그러다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스스로를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신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을까.

나를 가장 잘 아는 것도 나인데,
정작 나 자신을 완전히 아는 사람도 나일 수 없다는 것.

나 역시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전혀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이런 아이러니가 삶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매일 나 자신으로 살아가면서도
정작 나 자신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물음표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지만,
오히려 그 질문들이 내가 얻은 가장 큰 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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