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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에두아르 르베 지음, 정영문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8월
평점 :
일반적인 소설 작품은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사건과 그에 대한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간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정반대다.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늘어놓는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것을 더 선호하는지,
자신에게 어떤 습관이 있는지까지.
처음에는 솔직히 대체 이게 무슨 내용인가 싶었다.
마치 내가 면접관이라도 된 것 같았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아주 사소한 것까지 끊임없이 들려준다.
‘저런 것까지 말한다고?’
요즘 말로 하면 소위 ’TMI’라고 할 만한 이야기들도 많았다.
그런데 자기소개서 같은 글을 계속 읽고 있다 보니
중간중간 ‘응?’하고 다시 읽게 만드는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빼곡히 적어 내려간 자화상 속에서
예상치 못한 골목에서 마주친 묵직한 기록들.
평소 내가 고민하고 있던 것에 대한 질문이 되기도 했고,
애써 부정하고 있던 나를 다그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문장은 읽자마자 ‘와, 이거 명언인데?’
싶어 다시 한번 읽기도 했다.
솔직히 읽으면서도 난감했다.
지금까지 읽어온 작품들과는 너무 다른 느낌이었고,
이 책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문장 하나하나에 계속 집중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에두아르 르베가 자기 삶을 이루는 조각들을 하나씩 나열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처럼 나도 스스로에 대한 것으로
종이를 가득 채울 수 있을까.
‘나는 바나나를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바나나우유도 싫어하지는 않는다.’
라는 식으로.
내가 처음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 순간은
대학교 입시를 준비할 때였다.
처음으로 자기소개서를 쓰게 되었을 때,
나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아하는 건 뭔지, 싫어하는 건 뭔지,
나아가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그런데 작가는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자신을 이루고 있는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부럽기까지 했다.
그러다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스스로를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신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을까.
나를 가장 잘 아는 것도 나인데,
정작 나 자신을 완전히 아는 사람도 나일 수 없다는 것.
나 역시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전혀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이런 아이러니가 삶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매일 나 자신으로 살아가면서도
정작 나 자신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물음표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지만,
오히려 그 질문들이 내가 얻은 가장 큰 답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