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삶을 올곧이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투쟁과 고투에 관한 기록이다. 둘은 모두 하나씩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로자 아줌마는 독일군에게 끌려가 겨우 살아온 유대인이었으며, 모모는 3살 때 버려졌다. 하지만 이들은 행복을 부여잡거나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치지 않는다. 행복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달라붙으려 할 뿐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모른다. 불행은 외부에서 오기도 하고 내부에서 비롯하기도 하는데, 외부에서 오는 불행을 피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내부에서 일어나는 불행은 피할 수 없다. 불행하다는 마음에는 발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행복은 잡을 수 있더라도 움켜쥐지 않는 것이 좋으며, 불행은 벗어나기 보다는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삶은 그저 불어오는 바람과 같고, 우리의 삶은 그 바람에 날리는 낙엽과도 같다. 이런 행복과 불행을 신경쓰다보면 우리의 삶은 거기에 종속되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삶을 올곧이 나의 것으로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그냥 낙엽과 같이 나부끼면 된다. 앞에서 이 소설을 투쟁과 고투의 기록이라 했으나, 정정해야겠다. 모모와 로자 아줌마는 그냥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어떤 기대도 없이, 어떤 목표도 없이 그렇게 삶이라는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일, 이것이 삶이다. 결국 삶은 삶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 죽음의 등질성만이 지난한 삶에 대한 대가일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이 스스로 다가와 이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만이 이 쓸모없는 생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하게 가치있는 일일 것일 테니.
통찰들
1. 존재의 증명
“너를 낳아준 사람이 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너 자신뿐이란다.”(46~47면)
2. 암사자와 인간
로자 아줌마는 동물들의 세계가 인간세계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동물들에게는 자연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라나. 특히 암사자의 세계가 그러하단다. 로자 아줌마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암사자를 칭찬했다. 나는 잠들기 전에 이따금 상상 속에서 초인종 소리를 들었다. 문을 열고 나가보면, 거기에는 새끼들을 돌보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오려는 암사자가 한 마리 있었다. 로자 아줌마는 바로 그것이 암사자들의 특성이라고 했다. 암사자들은 새끼를 위해서라면 절대 물러시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데, 그것이 정글의 법칙이며, 암사자가 새끼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암사자를 신뢰하지 않을 거라고 얘기했다.
나는 거의 매일 밤 나의 암사자를 불러들였다. 암사자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로 뛰어올라 우리들의 얼굴을 핥아주었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그러길 원했고, 또 내가 나이가 가장 많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그런데 수사자들은 평판이 좋지 않았다. 세상 모든 수컷들과 마찬가지로 수사자들은 자기 혼자 먹고살기에도 바쁘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내 암사자가 올 거라고 하면 아이들은 이불 속에서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73~74면).
3. 두려움
“두려워할 거 없어.”
그걸 말이라고 하나. 사실 말이지 ‘두려워할 거 없다’라는 말처럼 얄팍한 속임수도 없다. 하밀 할아버지는 두려움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믿을 만한 동맹군이며 두려움이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서 자기의 오랜 경험을 믿으라고 했다(108면).
4. 생
땅바닥에 누워서 눈을 감고 죽는 연습을 해봤지만, 시멘트 바닥이 너무 차가워 병에 걸릴까봐 겁이 낫다. 나는 마약 같은 너절한 것을 즐기는 녀석들을 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생의 엉덩이를 핥아대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
5. 인간이 아닌 개에게만 안락사가 허용되는 이유
로자 아줌마가 개였다면, 진작에 사람들이 안락사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사람에게보다 개에게 더 친절한 탓에 사람이 고통 없이 죽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126면).
6. 아름다움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275면).
7. 정상(인)이란
“나는 절대로 정상은 안 될 거예요, 선생님. 정상이라는 작자들은 모두 비열한 놈들뿐인걸요.”
“정상인을 말하는 거다.”
“나는 정상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거예요, 선생님…….”(268면)
행복과 불행
1. 안에서 생기는 폭력은 다리가 없다.
은다 아메데 씨가 편지 내용을 불러주는 동안, 왼쪽 경호원은 소파에 앉아서 손톱에 윤을 내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오줌을 누러 나가려는데 그 멍하니 있던 작자가 나를 붙잡아 자기 무릎에 앉혔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더니 모자를 뒤로 젖히고 말했다.
“널 보니 우리 아들 생각이 나는구나. 모모야. 방학이라서 엄마와 함께 니스 해변엘 갔는데, 내일 돌아오지. 녀석의 생일이거든. 생일 선물로 자전거를 사줄까 하는데, 우리 아들녀석하고 놀고 싶으면 우리집에 오도록 해라.”
엄마도 아빠도 자전거도 엇이 지낸 지 벌써 몇 년째인데, 이제 와서 이 작자가 나를 못 견디게 만들다니. 여러분은 내 말을 이해랄 것이다. 좋다. ‘인샬라(신의 뜻대로)’. 하지만 이건 진심이 아니다. 단지 내가 훌륭한 회교도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뿐이다. 하여튼 그 사건이 내 감정을 건드렸고, 나는 너무 열이 올랐다. 그런 감정은 내 속에서 치밀어오른 것이었고, 그래서 더운 위험했다. 발길로 엉덩이를 차인다든가 하는 밖으로부터의 폭력은 도망가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안에서 생기는 폭력은 피할 길이 없다. 그럴 때면 나는 무작정 뛰쳐나가 그대로 사라져버리고만 싶어진다. 마치 내 속에 다른 녀석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울부짖고 땅바닥에 뒹굴고 벽에 머리를 찧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그 녀석이 다리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니까. 아무도 마음속에 다리 따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까 기분이 좀 나아진다. 그 녀석이 조금은 밖으로 나가버린 기분이다. 여러분은 내 말을 이해하는지?(62~63면)
2. 마약과 행복: 행복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기위해선 마약을 멀리해야 한다.
나는 마약에 대해서는 침을 뱉어주고 싶을 정도로 경멸한다. 마약 주사를 맞은 녀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하긴 오죽이나 간절했으면 주사를 맞았을까만은 그 따위 생각을 가진 녀석은 정말 바보 천치다. 나는 절대로 꼬임에 넘어가지 않는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몇 차례 마리화나를 피운 적은 있지만, 그래도 열 살이란 나이는 아직 어른들로부터 이것저것 배워야 할 나이다. 아무튼 나는 그런 식으로 행복해지기보다는 그냥 이대로 사는 게 더 좋다. 행복이란 놈은 요물이며 고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놈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어차피 녀석은 내 편이 아니니까 난 신경도 안 쓴다. 나는 아직 정치를 잘 모르지만, 그것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득이 되는 것이라고 들었다. 행복을 찾는답시고 천치 짓을 하는 녀석들을 막을 법은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주절거리는 것뿐이다. 어쩌면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고. 하지만 나는 행복해지자고 주사를 맞는 짓 따위는 안 할 거다. 빌어먹을, 나는 이제 행복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 그러다가 또 발작을 일으키면 큰일이니까. 그런데 하밀 하아버지는 내가 표현할 수 없는 것, 바로 그것을 찾아야 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 바로 거기에 그것이 있다고 말했다(99~100면).
3. 행복이란 손 닿는 곳에 있을 때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뜻밖에 좋은 일이 생겼다. 오페라에 있는 백화점에 심부름을 갔는데, 그곳에는 부모들을 따라온 아이들이 공짜로 구경할 수 있는 서커스 모형 진열장이 있었다. 그곳에 간 건 이미 열 번도 더 됐지만 그날은 너무 이른 시각이어서인지 아직 커튼이 쳐져 있었다. 나는 잘 모르는 한 흑인 청소부와 잡담을 나누었다. 그는 흑인들이 많이 사는 오베르빌리에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는 담배를 한 대씩 나눠 피웠다. 나는 잠시 서서 그가 거리를 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일은 아주 멋진 일이었으니까. 그런 후 나는 백화점으로 들어가서 신나게 구경했다. 서커스 진열장의 가장자리에서는 실제보다도 훨씬 더 큰 별들이 눈짓을 하는 것처럼 깜빡이고 있었다. 서커스는 진열장의 한가운데에서 펼쳐졌다. 어릿광대들은 물론이고, 달에 날아갔다 내려오며 행인들을 향해 손짓을 하는 우주비행사도 있었고, 능숙한 솜씨로 공중을 날아다니는 곡예사도 있었다. 흰색 발레복을 입은 무용수들이 말 잔등에 올라탄 채 묘기를 부렸고, 근육이 울퉁불퉁한 힘센 장사들이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것들을 들어올렸다. 물론 그것들은 사람이 아니고 다 기계장치였다. 춤추는 낙타도 있었고, 마술사도 있었다. 마술사의 모자에서는 토끼들이 줄줄이 나왔는데, 그것들은 트랙을 한 바퀴 돌고는 다시 모자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구경거리는 끝이 없었다. 나는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광대들은 원래 그렇듯 울긋불긋한 옷차림이었다. 푸른 색, 흰색, 그리고 무지개색 옷을 입고 코에는 반짝이는 빨간 전구를 달고 있었다. 무대 뒤편에도 역시 웃기기 위한 장치로 구경꾼들을 만들어서 늘어놓았는데, 그것들은 끊임없이 박수를 쳐대고 있었다. 우주비행사는 달에 착륙할 때마다 일어서서 인사를 했고, 그때마다 기계장치는 그가 여유 있게 인사를 하도록 기다려주었다. 이제 다 봤다 싶을 때면 우스꽝스런 모습의 코끼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창고에서 나와서 트랙을 몇 차례씩 돌았는데, 맨 끝에 나온 코끼리는 이제 막 태어난 것처럼 분홍빛이 도는 아기코끼리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광대들이었다. 그들은 이 세상 무엇과도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기상천외한 머리 모양에다 물음표처럼 생긴 누하며, 모두들 너무 멍청해서 늘 히히거렸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로자 아줌마를 생각했다. 로자 아줌마가 광대였다면 참 우스웠을 텐데, 광대가 아니라서 무척 아쉬었다. 광대들의 바지는 오르락내리락하며 사람들을 웃겼고, 들고 있는 악기에선 진짜 소리 대신 불꽃과 물이 뿜어져나왔다. 광대는 네 명이었다. 그중 대장은 뾰족모자에 부푼 바지를 입은 흰둥이로, 다른 광대들보다도 훨씬 얼굴이 휘었다. 부하 광대들은 그에게 굽신거리며 군대식 경례를 했고, 대장은 그들의 엉덩이를 발로 찼다. 발길로 차는 일만 반복했는데, 그는 발길질을 하라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게 짓궂게 보이기보다는 그저 기계적인 동작으로 보일 뿐이었다. 녹색 점이 박힌 노란색 옷을 입은 광대는 넘어져도 마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주로 줄타기를 하는데, 번번이 실패를 하면서도 웃는 걸 보면 철학자 광대인 모양이었다. 그는 갈색 가발을 쓰고 있었는데, 줄 위에 첫 발을 내딛고 다음 발을 내딛고는 줄 위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벌벌 떨었다. 그때마다 그 가발의 머리칼이 사방으로 뻗쳐 떨리면서 구경꾼들이 배꼽을 잡게 만들었다. 무서움에 떨고 있는 광대처럼 우스운 것도 없었다. 그의 친구 광대 하나는 온통 푸른색으로 차려입고는 작은 기타를 둘러메고 달을 보며 노래 부르며 온갖 주책을 떨었다. 그는 무척 착해 보이는 얼굴 표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주책바가지였다. 마지막 광대는 하나이면서 둘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분신 하나를 매달고 있었는데, 하나가 움직이면 다른 하나도 똑같이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그 둘은 함께 묶여 있었기 때문에, 서로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가 없었다. 그 구경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그들 모두가 실제 인간이 아니라 기계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고통받지 않으며 늙지도 않고 불행에 빠지지도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네 인간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그 세계에서는 낙타에게조차도 호감이 갔다. 녀석은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마치 거드름을 피우는 중년 부인처럼 몸을 좌우로 흔들며 걸어다녔다. 이 서커스의 세계는 인간 현실과는 동떨어진 행복의 세계였다. 철사줄 위에 있는 광대는 절대 떨어질 리가 없었다. 열흘 동안 나는 그저 떨어지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고, 그가 떨어지더라도 하나도 아프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 별세계였다. 나는 너무 행복해서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손 닿는 곳에 있을 때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103~106면).
자연법칙
1. 부속품이 된 인간의 자연법칙
사람들은 모두 자연의 법칙을 지켜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자연 속의 예비 부속품들인 인간부터 지켜야 할 것 같다(181면).
2. 자연 법칙의 거부
“자 나하고 뭘 좀 먹자. 그럼 좀 나아질 거야.”
“아니에요, 고맙지만 난 이제 아무것도 먹지 않아요.”
“뭐라구?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구?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니?”
“나는요, 자연의 법칙 따위에 얽매이지 않아요, 롤라 아줌마[여장남자, 매춘부].”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자연의 법칙 같은 것은 개나 물어가라고 해요.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어요. 구역질나는 그 따위 것은 없어져버렸으면 좋겠어요(304면).
3. 동정심 없는 자연 법칙
나는 그녀의 몸에 향수를 몽땅 뿌려주고, 자연의 법칙을 감추기 우해 온갖 색깔로 그녀의 얼굴을 칠하고 또 칠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뚱이는 어느 곳 하나 성한 데 없이 썩어갔다. 자연의 법칙에는 동정심이란 게 없으니까(30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