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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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네즈-말메디 교차로에서 사망한 시신에서는 이마, 관자놀이, 뒤통수 등 여러 곳에서 총상이 발견되었고,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있는 시신도 있었다. 확인 사살을 했다는 흔적이었다. 전쟁 범죄 재판을 위한 증거를 수집했고,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냉전시대 초기에 다하우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자들은 모두 감형되어 1950년대에 석방되었다.  
 


수감된 기간이 고작 10여년에 불과하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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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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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 거기서 뭘 봤니?" 

 

아내는 아프고 빠듯한 살림에 도우미를 고용하기에는 여의치 않다. 일을 하면서 두 딸을 건사하기 어려운 남자는 결국 그나마 손이 덜 가는 큰 아이를 남겨두고, 작은 딸을 당분간 시골 처가에 보내기로 한다. 아이는 아빠에게 가기 싫다고, 언니를 보내라고 떼도 부리고 사정도 하지만 결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 아이, 유나는 앞으로 자신의 행복에 걸림돌이 되는, 불행의 원인이 되는 요소는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그 대상에 예외는 없다. 연인이든, 가족이든. 심지어 자식조차.
 









행복이란 결함도, 결핍도 없는 완전성이라고 믿는 한 연쇄살인범을 통해 우리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행복에 대해 되돌아본다. 
 


어린시절, 엄마의 발병으로 몇 년 간 시골에 보내져 외조부모와 함께 산 유나는 손녀의 학업에 열정적이고 숨막히도록 엄격한 할머니와 이를 방관한 할아버지 밑에서 부모가 자신을 버렸듯(유나의 입장에서) 할머니로부터 버림받을까 두려워 순종하며 지낸다. 그러나 자신이 시골로 보내진 원인이 언니에게 있다고 단정한 유나는 재인에게 끊임없이 원망과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 중 유나의 결핍에 공감하고 동조하는 이는 유나의 엄마 뿐이다. 이는 독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살인범의 범죄 형태가 극악스러운 것은 차치하고, 엄마가 아프고 살림살이가 녹록치 않다는 속사정을 어린 유나가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사실을 전제하더라도 유나의 심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일단 주말마다 시골에 있는 작은 딸을 찾아가 집에서 쓰던 방과 똑같이 인테리어를 해주는 아빠, 떼어놓을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겨 쉼없이 자책하고 작은 딸을 불쌍해 하며 편애하던 엄마를 떠올려보면 그녀가 저지른 범죄의 원인을 어린 시절의 정서적 결핍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자기 대신 동생이 시골로 보내졌다는 죄책감을 내내 느끼고, 엄마의 한탄을 감내하며, 아빠의 영세한 사업의 실상을 알고 착한 딸 컴플렉스에 시달렸던 재인에게 동정심이 쏠리게 된다.  
 



■  ■  




소설은 3인칭 화법으로 진행하지만 지유, 은호, 재인의 관찰자 시점으로써 독자는 그들과 함께 그들의 시선을 통해 유나를 관찰하고 그녀의 속내를 짐작한다. 유나의 극단적이고 주도면밀한 폭력적 성향의 기저는 무엇일까? 소설을 다 읽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위에 썼듯 일단 그녀의 어린 시절은 이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생각 중에 오래 전 작가가 언급했던 '절대 악'이라는 단어와 함께  <종의 기원>의 주인공 유진이 떠올랐고, 이어서 든 생각은 과대하게 포장된 '자아'였다. 유나는 스스로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지만 여기에는 자신만이 옳고 정당하다는 그릇된 자아감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결핍(유나의 경우에는 결핍이라고 하기에도 어렵지만)과 어린시절의 트라우마가 있다고 모든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재인의 깨우침처럼 각각 여덜 살, 일곱 살에서 멈춘 그들의 성장이 유감스럽다. 어쩌면 어린 시절이 아닌 성인이 된 후에 단절한 가족 관계, 자식에 대한 어긋난 편애 등이 유나의 범죄를 방조한 셈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면 최악의 양육환경에서 성장한 지유의 미래는 어떨까? 은호는 지유에게서 복종 밑에 도사린 저항감을 읽는다. 이 점이 유나와 지유의 다른 점이다. 유나가 스스로를 향해 완전한 존재라고 세뇌시킨 자아에 물음표를 던지지 않았다면, 지유는 엄마에 대한 절대적 복종에 물음표를 던진다. 지유의 이 저항이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 그래서 적어도 현실에 있는 수많은 지유가 고통에서 벗어나 부모와는 다른 길을 걷기를 바람한다.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인간의 욕망은 제한되지 않으니 독자는 이미 제목에서 행복에 대한 역설을 읽는다. 왜곡된 자아는 위험하다. 그 위험에 빨간불을 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본인 뿐이다.





#완전한행복 #완행리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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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숨 쉬는 법 - 철학자 김진영의 아도르노 강의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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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사랑이라는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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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아도르노 아포리즘의 밑바닥에는 서러움이 있다고 본다. 가장 귀중한 것, 혹은 보존해야 했었던 것들을 박탈당하고 그 자리가 상처로 변해버렸다는 것인데, 이 상처를 들여다보는 고통이나 슬픔이 서러움과 상통한다. 
 

세대 관계는 사랑으로 생명을 만들어내는 아름답고 귀한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에서는 큰 상처로 자리하고 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자식 세대는 부모 세대의 삶을 부정하고, 부모 세대는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제공하겠다는 이유로 세대 간 반목은 심화된다. 더욱이 치열해지는 경쟁, 부모의 대리 만족과 희생주의와 그에 대한 보상, 이 반복된 행위르가 사랑이라는 착각, 그리고 그뒤에 숨은 폭력이 확장되면서 존속 살해 등 극단적 방식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역시사지가 된 후에야 찾아온 화해. 아도르노는 이 화해를 아름답게 보지 않는다. 축복받은 화해가 아닌 저주의 화해. 치유를 동반하지 않은 화해라는 이름을 빌린 패배의 정서. 그렇다면 여기서 승리자는 누구인가?
 



166.
객관적 권력은 우리를 끊임없이 망각시키죠. 아름다운 방식으로 망각시켜요. 이 선정주의를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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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재미있는 게 니체는 가상을 위대한 긍정으로 본 반면 아도르노는 슬픔으로 봤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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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들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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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왔다는 듯한 이켄나의 죽음과 사라진 보자. 집을 비워둔 아버지는 자책하고, 어머니는 두 형제의 불화를 알리며 돌아오라고 사정했건만 차일피일 미룬 아버지를 원망했다. 마침내 돌아온 보자.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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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던 한 가족이 풍비박산 되는 건 정말 한순간이다. 그들의 고통을 알겠다는 말도 차마 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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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벌지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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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
히틀러는 "마지막까지 싸우는 자가 전쟁에서 승리한다"라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위대한 격언을 철석같이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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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덴에서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는 동안 독일군은 더 많은 사단을 노르빈트 작전에 투입했다. 1월 5일부터 지속된 전투는 미국의 우세였지만 피해도 만만치 않았으나 25일 즈음부터 독일군의 공격은 눈에 띄게 약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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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장은 1월부터 벌어졌던 벌지 전투의 상황을 전반적으로 정리해주고 있다. 읽다보니 벨기에와 6.25전쟁 직후의 우리나라 상황과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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