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편지 -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개정판 카프카 전집 9
프란츠 카프카 지음, 변난수.권세훈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프카가 사유했던 삶과 문학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 섬 -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럽의 난민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5년 4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그리스 정부 사이에 체결된 협약으로 에게해 위의 섬들 가운데 소아시아에 가장 가까운 섬(레스보스, 코스,  레로스, 사모스, 키오스)은 '핫 스폿hot spot'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그 지위란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 그리스 해안으로 접근하는 수천 명의 난민을 받아들이는 장소다. 이 핫 스픗의 공식 명칭은 '1차 접수 시설'이고 난민들은 이 섬을 통과해서 발칸반도나 북유럽 등지로 가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있다. 


현재 유럽 최대 난민 수용 캠프는 레스보스섬 모리아다. 이곳에서는 난민 보호와 치안을 명목으로 해안 경비대와 프론텍스 파견 정찰함, NATO 소속 선박들이 무자비한 폭력으로 유입되는 난민들을 저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치안이란 누구를 위한 치안인가? 물론 유럽을 보호하기 위한 치안이다. 난민들이 천우신조로 살아남아 육지에 도착한다고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약없는 기다림,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환경, 범죄에 노출된 위험, 부족한 식량과 물자와 전기, 그리고 비리와 부정부패. 희망을 갖고 목숨을 담보로 자국을 탈출했지만 그들에게는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유럽연합과 그리스 정부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것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기 바쁘다. 수용소 사령관은 난민들을 적절하게 재우고 먹이는 데 필요한 자원 공급을 거부하는 그리스 정부에 책임을 넘기고, 그리스 정부는 재정적 지원이 따라주지 않는다면서 유럽연합 쪽을 비난한다. 그리고 유럽연합의 관료들은 그리스 행정부의 무기력과 무관심을 탓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 5년간 10억 유로가 넘는 지원금을 그리스 당국에 송금해 주었으므로 세간의 비난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그 지원금은 어디로 간 걸까? 그리고 그리스는 왜 그들의 입장에서 골칫덩이에 불과한 '핫 스폿' 지정 철회 요청을 하지 않을까? 충분히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1948년 제정된 세계 인권선언문 제14조에는 "박해 앞에서, 모든 사람은 다른나라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그곳으로 망명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전 세계 193개국이 유엔에 가입하면서 이 문헌에 서명했다. 그리고 협약문에는, 체결국은 난민 보호를 보장하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은 국제 협약 이행을 감시해야할 의무가 있음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인종, 종교, 출신국에 따른 차별이 있어서는 안되며 자국의 영토에 들어온 난민을 국가 안위 또는 공공의 안녕을 위한 이유가 아니고는 추방할 수 없음을 밝힌다. 따라서 현재 레스보스 섬의 난민들에게 망명을 신청할 권리조차 주지 않는 것은 인권 침해다.  


무엇보다 심각한 상황은 아이들이다. 공식적인 수용소든 비공식적인 텐트촌에 있든, 난민 아이들은 교육을 비롯한 '어린이 고유의 활동'을 전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동반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들의 경우에는 성폭력 범죄에까지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아동 관련 협약은 동반 보호자 없는 아동들은 어른들과 분리된 곳에서 잠을 자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당연히 지켜지고 있지 않다. 유엔난민기구에서 일하는 파트리스 만수르는 이렇게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을 '낭비'라고 표현했다. 유치원도, 학교도 없고 언어 소통조차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아이들에게 미래가 있을까? 그럼에도 유엔인권이사회는 아동 권리 협약 체결 30주년을 요란스럽게 자축했다고 한다. 누구에게 보내는 축하인가? 난민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아동 학대의 참혹한 실태를 외면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유엔난민기구는 1919년에 베르사유 조약과 국제연맹 헌장의 결실로 창설되어 처음에는 난민지원센타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제네바 국제연맹사무국 부속 기구였다. 1933년에 국제연맹과는 무관한 독자적인 기구를 창설하여 난민고등판무소라고 명명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지구의 5대륙에 병참기지를 두고 있고, 유엔세계식량계획과 항구적인 공조 협약을 맺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이 아주 엄격한 틀로 규정되어 있다면, 난민고등판무관의 독립성은 거의 전적으로 보장된다. 그렇기 때문에 장 지글러는 모리아를 비롯한 핫 스폿 전역에서 자행되는 현장에 난민고등판무관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난민고등판무관은 난민 지위에 관한 1951년 협약을 준수하도록 강제하며, 에게해 핫 스폿을 비롯해서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참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눈 멀고 귀 먹은 관료들과 시급히 맞서 싸우라고 일갈한다. 


장 지글러는 더 나아가 1951년 협약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경제 이주민'도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세계적으로 자본주의, 그것도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현재에 국가가 가난해서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해 떠나온 사람들도 난민과 다를바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한 국가의 기근을 다른 나라가 책임져야 할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없다. 그러나 현재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의 가해자는 경제 선진국이며 그 피해는 대체로 가난한 나라가 입는다. 공정하지 못한 게임에 가까운 FTA는 빈부격차를 늘리며 개발도상국의 빈민층을 나락으로 몰고 있다. 먹이사슬처럼 이어진 국가 간 경제가 기근 난민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핫 스폿은 유럽연합의 기구들과 각 회원국이 협조하여 대외 국경 지역에서 망명 신청자들의 일차적인 접수, 신원 확인, 명부 작성, 지문 채취 등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 핫 스폿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영토에서만 운영 중이다. 단 그 외 국가에서 요청하거나 유럽 위원회에서 운영국에 보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핫 스폿을 설치할 수 있다.' 

(유럽 의회)  
 
그러나 장 지글러는 말한다. 


우리 유럽 민족은 반反난민 국가들에게 제공되는 지원금의 즉각적인 중단을 관철시켜야 한다.
우리는 유럽 대륙 어디에서나 보편적 망명권이 엄중하게 존중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핫 스폿을, 어디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건, 즉각적이고 결정적으로 폐쇄할 것을 요구한다.
그곳이 바로 유럽의 치부이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에서 제일 강한 나라 미국은 종교 박해를 피해 나라를 떠난 난민들이 세운 나라다. 우리나라 역시 전쟁의 폐허에서 국제 사회의 지원이 없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2018년 예멘인 500명 넘는 인원이 제주도로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하면서 관심 밖이었던 난민 문제에 대한 화두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 당시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결과를 떠나서 대부분의 정서가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각자 나름의 입장에서 의견을 내놓았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스스로, 왜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지, 난민 문제가 온전히 당면한 문제가 아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아닌지, 난민에 의한 범죄율 증가 등 가짜 뉴스에 휘말리고 있는 건 아닌지, 난민을 수용할 시 우려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객관화시켜서 판단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우리도 난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홍수와 가뭄, 폭설, 폭염 등 이상 기후와 코로나19처럼 전 세계를 잠식하는, 영화에서나 상상할 수 있었던 전염병으로 더이상 세계에서 안전 지대는 없다.  현재 수준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된다면 지구는 7.5년 안에 아주 심각한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는 학계 보고가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누구라도 난민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지금 핫 스폿에 있는 그들의 모습이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인간으로서 마지막까지 지켜야하는 것이 바로 인권, '인간성'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77.
나 자신이이처럼 인간성이 상실된 현장의 직접적인 책임자는 아니지만, 유럽인의 한 사람으로서, 아니 이제까지 침묵한 한 인간으로서, 나 역시 이처럼 참혹한 광경을 가능하게 만드는 데 가담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들의 집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능력을 인정받는 변호사 솔렌은 예상치 못한 판결을 받고, 의뢰인은 법정을 나옴과 동시에 그녀의 눈앞에서 7층 난간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 


그로인한 충격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줄이 끊어지듯 자책감과 무기력증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솔렌에게 정신과 의사는 우울증과 '번아웃 증후군'을 진단하며 약 처방과 봉사활동을 권유한다. 도저히 로펌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은 그녀는 의사의 말대로 자원봉사를 검색해보고 마침 '글쓰기 자원봉사'가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솔렌이 희망했던 직업은 작가. 그러나 법학과 교수였던 부모는 딸이 예술을 직업으로 삼는 것을 탐탁해하지 않았다. 버지니아 울프와 콜레트를 꿈꿨지만 부모의 반대로 결국 법학을 전공해 변호사가 된 솔렌. 구미가 당긴 그녀가 용기를 내 찾아간 곳은 예상과는 너무 달랐고 면접 담당자인 레오나르가 제시한 곳은 여성 전용 쉼터다. 그녀는 내키지 않았지만 기대감에 차있는 레오나르도의 눈빛을 보자니 차마 거절할 용기가 나지 않아 승낙한다. 


'여성 궁전'이라 불리는 여성 전용 쉼터에서 대필 작가 자원봉사 첫날. 낯선 장소가 부담스러워 구석 한쪽에 앉아 있는 솔렌을 반겨주는 이는 없었다. 집에 돌아와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다가 문득 주머니에서 발견한 젤리 반쪽. 쉼터에 거주하는 꼬마가 건네준 젤리 반쪽을 보면서 그 아이에 대해 궁금해졌고 다음주에 하루 더 가보기로 마음을 바꾼다.  


그들에게 다가가고자 마음을 먹은 솔렌은 휴게실 정중앙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다가온 한 여성이 영수증을 내밀며 마트 계산원이 잘못 계산한 2유로를 환불해 달라는 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부탁한다. 고작 2유로를 돌려받기 위해 편지를 써달라고 하다니... . 그제서야 솔렌은 자신이 사회의 한 단면만을 보아왔으며 편협된 사고를 갖고 있다는 새살을 깨닫는다. 영수증을 내민 여자의 편지를 대필하면서 솔렌은 자기 자신을 향한 알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목요일 아침, 얼마 전 결별한 연인 제레미가 솔렌이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온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을 들었고 마침내 다른 여성과 결혼해 두 살가량의 아이까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옛 연인을 보게 된다. 그의 옆에 있어야 할 사람도, 천사처럼 예쁜 아이의 엄마도 왜 내가 아니란 말인가. 솔렌은 쓰라린 상처를 잊기 위해 일에 집중하려고 하지만 아들에게 편지를 써달라는 여인의 사연까지 보태져 울음을 떠뜨리면서 제레미와의 지난날을 하소연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녀가 앉아있는 자리로 하나둘 모여드는 여자들. 누군가는 따뜻하고 달콤한 차를 가져다주고, 누군가는 가슴을 내어준다. 그리고 그녀들이 솔렌에게 내린 처방전은 줌바 댄스 강연이다. 


솔렌은 줌바 댄스 강연이 끝나고 안내 데스크 직원 살마의 권유로 작은 식당에서 여성 궁전 직원들과 식사를 하면서 살마의 이야기를 듣는다. 다시 일주일 후 쉼터의 모든 사람들과 적대 관계에 있는 생티아가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는 솔렌에게 횡포를 부리고 그 과정에서 노트북이 부숴져 솔렌은 어쩔 수 없이 종이와 연필을 사용하게 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대필을 의뢰하고 그녀는 여성 궁전에 늦게까지 머무르거나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오는 일이 잦아진다. 쓰는 글의 양이 많아지면서 솔렌은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더불어 그들과 차와 이야기를 나누고, 줌바 댄스 강습에 참여하면서 쉼터 여성들에게 익숙해질 뿐만 아니라 함께 한다는 온기와 기쁨의 감각을 느낀다. 


어느날 솔렌은 이리스로부터 연애편지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그녀의 과거와 줌바 댄스 강사 파비오를 향한 마음을 듣는다. 그리고 진심을 끌어올려 써내려간 이리스의 시에서 진정성을 느낀다. 한때 소설을 쓰고 싶었던 솔렌. 상상만으로 매혹적이지만 환상으로만 존재했던 소설쓰기가 가능할까? 솔렌은 가능성이 있는 길만 선택하며 살아왔기에 실패를 경험한 적이 거의 없었다. 기본 문법조차 부족한 이리스가 시를 쓰는 모습에서 솔렌은 자신의 비겁함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다가 벼락처럼 솔렌을 덮친 위기.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솔렌은 다시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연락이 닿지 않는 그녀를 찾아온 레오나르에게 자신이 자원봉사를 하게 된 계기를 시작으로 긴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그의 경청에 홀가분함과 위로를 얻는다.


얼마 전부터 솔렌의 눈에 들어온 노숙인 릴리. 제빵 재능이 있는 열아홉 살 릴리를 위해 솔렌은 펜을 쥐고 행동에 나서기로 한다. 그리고 릴리가 여성 궁전에 정식으로 입소하는 날, 솔렌은 여성궁전을 들러보다가 드디어 자신이 써야할 소설의 주인공을 발견한다. 바로 그녀다. 







소설은 현재 파리와 1925년부터 33년까지, 두 시간적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부유하고 엘리트 집안에서 실패를 모르고 성공만 추구하며 달려온 솔렌. 그 길에는 오로지 변호사로서의 성공을 우선으로 두었기에 꿈도, 사랑도 모두 한쪽으로 밀어놨었다. 성공만 하면 언제든 가질 수 있는 것들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러나 한 번의 실패로 무너져버린 솔렌의 곁에는 한때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도, 명성도 남아있지 않다. 


그러다 정신과 의사의 처방으로 우연히 자원봉사를 나가게 된 '여성 궁전'. 그곳에는 가정폭력과 여성 학대, 전쟁 등으로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여성들이 있었다. 


솔렌에게 전단지를 읽어달라고 하고 영국 여왕에게 사인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써달라며 떼를 쓰는 크베타나는 참혹한 전쟁을 겪었고, 손뜨개질로 좌판을 하는 비비안은 중산층 계급의 유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남편의 가정폭력은 살인적이었다. 고향 기니에서 네 살 때 할례를 당해 딸에게는 같은 폭력이 가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온 빈타는 아들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산다. 내면에 쌓인 결핍과 분노로 인해 사사건건 시비와 다툼을 일으키는 생티아, 전쟁을 피해 아프카니스탄을 떠난 살마, 가족으로부터 존재를 거부당한 트랜스젠더 이리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잠들지 말아야했고 걸어야했던 15년간의 노숙 생활로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없게 된 라 르네.  


전쟁에서 가장 취약한 대상은 어린아이와 여성이다. 법을 이기는 오래된 악습의 피해자도 여성이다. 강간 등의 성폭력으로 임신한 여성을 향하는 것은 고통 분담과 위로가 아닌 손가락질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다시 설 수 있는 힘을 앗아가는 건 빈곤이다. 가난이야말로 그들이 새롭게 시작할 힘을 앗아간다. 


유복했던 어린시절부터 변호사가 된 이후까지 가난과 직접적으로 대면해 본적 없는 솔렌은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여성에게 가해지는 참혹함을 보게 되지만, 더불어 그들의 진정한 연대를 만나고, 그곳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삶에서 살아있음이 무엇인지를 배운다. 그리고 솔렌은 용기를 내어 청소년 노숙자인 릴리에게 손을 내민다. 이제 행동할 때다.


19세기 후반, 스무 살에 구세군 사관 생도가 되어 일생을 여성과 취약 계층을 위해 살다간 블랑슈가 있다. 그녀는 구세군 사역에 일생을 바치기로 작정하면서 약혼까지 파혼한다. 그런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알뱅은 그녀의 사역 인생에 가장 충실한 조력자이자 동반자가 되어준다. 1926년에 문을 연 여성 궁전을 세우기까지, 블랑슈가 세상과 싸운 과정은 전투를 치르는 전사와 흡사하다. 그녀가 여성을 향해 가졌던 소명의식은 현재 여성 궁전을 지키는 사람들과 솔렌의 펜 끝에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것이다. 


전쟁 난민에서 여성 궁전의 직원이 되어 누구보다 입소자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살마처럼 세상에는 작은 기적들이 맞물려 선순환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솔렌이 레오나르와 여성 궁전의 사람들을 만나 변화했듯 우리는 더 넓은 연대와 공감을 이룰 수 있는 변화를 꿈꿔야 할 것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 - 현실 편 : 철학 / 과학 / 예술 / 종교 / 신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2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권에 이어서 2권은 현실 너머의 세계 즉 진리 탐구ㅡ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ㅡ에 대해 이야기 한다. 분야를 아우르는 세 가지 견해인 절대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불변하는 것을 일컫는다. 절대주의(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단일한 진리가 있다는 견해), 상대주의(상반되는 두 가지 태도로 구분된다. 하나는 어떤 것도 진리가 아니라며 모든 진리를 거부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고정된 하나의 진리가 없을 뿐 다양한 진리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입장), 불가지론(인간의 감각이나 관념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본질은 결코 알 수 없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견해), 실용주의(관념의 의미는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에서 발생한다는 견해)를 들 수 있다.  







 

[철학] 
철학은 고대철학 ㅡ 중세철학 ㅡ 근대철학 ㅡ 현대철학으로 이어진다. 
고대철학은 자연철학에서 시작해 상대주의와 회의주의를 비판하고 진리의 절대성을 주장한 소크라테스,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불변하는 진리의 세계로서의 '이데아' 제시한 플라톤, 현상 이면의 근원을 탐구하는 학문인 형이상학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중세철학은 교부철학, 스콜라철학의 이론이 있는데 교부철학은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유사하고, 스콜라철학은 교부철학의 뒤를 잇는 그리스도교의 사상으로써 그리스도교 철학을 증명하고 세밀화했다.  
 
근대철학은, 실재론은 합리론으로, 유명론은 경험론으로 이어졌다. 두 견해는 진리에 어떻게 도달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을 탐구하는 분야를 인식론이라고 한다. 합리론은 데카르트가 대표적이며 합리주의 혹은 이성주의라고도 한다.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입장으로써 특히 진리세 도달하는 방법으로 인간의 이성을 제시하는데, 그 배경에는 혼란스러운 시대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절대적이고 확실한 진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등이 있다. 경험론은 자연 세계에서의 감각적인 경험만이 지식의 원천이 된다. 현재 우리는 경험론이 승리한 세계에서 살기 때문에 이 이론을 당연시 여긴다. 그러나 경험론의 진리 탐구 방법에는 신이 개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근대 초기에는 혁명적인 일이었고, 근대 이성중심주의와 근대 과학을 탄생시킨 주요한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학자 베이컨은 귀납법을 제시하고 연역법 비판을 비판했다. 베이컨의 경험주의는 자연과학이 발전하는 철학적 토대를 마련했다. 
 
관념론은 눈 앞에 드러난 세계를 '현상', 현상 너머의 진짜 세계를 '물자체'라고 불렀다. 물자체의 세계는 결코 알 수 없다. 개인은 주관적으로 현상 세계를 구상하지만 우리의 사고 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에 우리는 동일한 세계를 본다. 쉽게 말하자면 본다는 것은 외부의 사물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머릿속에서 해석된 그 무엇인가를 보는 것이다. 합리론과 경험론을 합한 칸트의 관념론은 서양 철학의 주류를 형성하며 심화되었고, 헤겔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근대 철학의 마지막 주자는 니체다. 그는 망치를 든 철학자로 불리며 그리도교 전통에 기반한 윤리관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좋음과 선, 나쁨과 악은 다르다는 것을 엄밀하게 구분했다. 니체 사상의 주요 개념은 영원회귀다. 영원회귀는 지금 자신의 삶을 무한히 반복한다는 것으로 극단적 허무주의를 나타낸다. 그러나 이는 허무를 딛고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변화시켜야함을 말한다. 가장 가치있고 의미있게 창조한 순간이 무한히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스스로 창조하는 주인이 되라는 것. 
 
현대 철학을 대표하는 학자로는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사르트르 등이 있다. 하이데거는 존재('있음' 그 자체에 대한 것)에 대한 탐구,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전기 철학에서는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으로 구분하면서 언어를 형식적, 논리적으로 정밀화했고, 후기 철학에서는 '언어는 정의되지 않는다'고 정의한다. 현대 철학의 사조인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사르트르는 인간은 단일한 본질을 갖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존재자 즉 실존이다. 인간은 실존의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과학] 
고대 과학의 자연철학자들이 논의한 기본 요소(아르케)는 물, 불, 원자 등이고 천문학에서 이룬 성과로는 천동설이다. 중세 과학은 과학의 암흑기였고, 근대 과학에 와서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지만 과학적이라기보다는 미학적 측면에서 접근한 경향이 크다. 갈릴레이는 과학적 관찰과 수학적 근거를 병행, 케플러는 케플러의 법칙을 통해 지동설을 수학적으로 보충하고 기하학, 해석기하학을 거쳐 데카르트의 대수학까지 표현했다. 뉴턴은 중력을 보편적인 힘인 만유인력으로 정의,  중력이 달과 다른 천체에까지 작용한다는 것을 수학으로 설명했으며, 아인슈타인은 특수하게 등속으로 움직이는 빛에 대한 이론인 특수 상대성이론,  일반적인 가속에 대한 이론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중력을 받는 물체의 속도에 대한 탐구해 일반 상대성이론을 내놓는다. 

 
근대 물리학은 우주의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가졌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근대 물리학 집단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의 양자역학 결과값은 확률로만 예측될 뿐, 확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양자역학의 세계는 우주의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비결정론적 세계다. 근대 물리학이 절대주의라면 현대 물리학은 상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원리는 위치와 속도가 동시에 측정되지 않음이 미시 세계의 질서임을 수학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에르빈 슈뢰딩거는 고양이 실험(슈뢰딩거의 고양이)을 통해 양자역학의 결론에 문제가 있음을 증명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이 실험은 양자역학을 더 실험하게 한 계기가 되었고 과학자들은 이중슬릿 실험을 통해 양자역학의 예측이 부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과학철학은 과학의 역사에서 과학적 합리성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며 과학 기술에 대한 인류의 막연한 낙관을 경계했고, 과학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엄밀한 방법론으로 향하는 데 기여했다. 




[예술] 
예술적 진리는 절대주의 ㅡ 고전주의 / 상대주의 ㅡ 낭만주의 / 회의주의를 거쳐 현대미술에 도달했다. 
 
고대 미술은 그리스 미술을 대표하고, 이집트는 미술이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반영하는 수단이었다. 헬레니즘은 알렉산드로스가 건절한 대제국에 의해 동서양이 교류함으로써 혼합과 융합을 거친 새롭고 독창적인 예술 양식으로 라오콘,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가 대표적이다. 로마 미술은 그리스 미술을 국제적 성격을 띤 보편의 미술로 확장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중세 미술은 전쟁이 반복되는 혼란기와 그리스도교의 탄생과 확장으로 그리스.로마 미술이 자취를 감춘다. 초기 미술은 문맹자들에게 신의 섭리와 교리를 전달하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이었으나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과 역사성을 담지하고 있어 당시 예술가들의 가치 체계를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로마네스크는 교회의 승리를 상징하는 건축과 미술 양식(이탈리아 피사의 대서당)으로 지상에 만든 신의 공간이라는 종교적 측면과 건축 공법이 발달하지 못했던 건축적 측면으로 두껍고 육중한 모습을 가진다. 고딕 양식은 건축술의 발전과 함께 등장했다. 중세 예술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불변하는 진리로서의 신에 대한 예술이지만 절대주의 예술로서 평가할 수는 없다. 아름다움의 형식에서는 퇴보한 느낌이 강하다. 
 
르네상스 미술 초기에는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인체를 묘사, 정확성에 치중(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했고, 전성기에는 조화와 균형이라는 미의 이념이 이상적으로 구현(레오나르도의 모나리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예술 자체의 가치를 회복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이 있다. 
 
초기 근대 미술은 신고전주의, 낭만주의로 나뉜다. 신고전주의는 고대 그리스.로마 미술로 돌아가자는 것으로 영국에서 시작되어 프랑스(국가가 주도해 의도적으로 확산)에서 절정을 이룬다. 대표작으로 마라의 죽음, 호라티우스의 맹세, 소크라테스의 죽음, 그랑 오달리스크, 샘, 터키 욕탕 등이 있다. 낭만주의는 신고전주의의 절대적인 측면에 대한 반발로 탄생, 창작자의 주관적 표현을 강조, 자유로운 공상과 환상의 세계를 그림의 대상으로 삼는다. 화가의 강렬한 내면을 외부 세계에 투영한다는 측면에서 바로크.로코코와는 다르다. 대표작으로 메두사호의 뗏목, 사르다나 팔루스의 죽음,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등이 있다. 
 
후기 근대 미술은 사실주의, 인상주의로 구분된다. 사실주의는 사실적 그림(= 리얼리즘), 그릴 대상을 선정하는 데서의 '사실'을 추구(예, 노동자의 남루한 삶, 노동의 고됨 듬)한다. 화가 쿠르베가 사실주의에서 독보적인 존재로서 그의 그림은 정치적일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표현 방식으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대변한다. 그래서 공산주의를 확산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사실주의는 예술에서 배제되었던 일상을 예술의 소재로 등장시키고, 예술의 의미를 새롭게 고민했자는 미술사적 의의를 갖는다. 인상주의는일상의 삶과 자연을 그려냈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을 가감없이 그려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사실주의와는 차이가 있다. 인상주의 전기 작가로는 모네, 마네, 드가, 로댕이 있고, 후기 작가로는 고흐, 고갱, 세잔 등이다. 특히 세잔은 근대를 마무리하고 현대 미술을 탄생시킨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물 그 자체의 본질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현대 미술은 입체주의와 추상미술을 들 수 있다. 입체주의(큐비즘)는 파리에서 일어난 미술 혁신 운동으로써 피카소가 대표적이고, 추상미술은 입체주의가 특정 대상을 그린다면 추상미술은 아예 그림의 대상을 그림에서 제거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칸딘스키가 해당한다. 오늘날의 미술은 주체를 흔드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화가의 행위 자체를 예술로 규정(잭슨 폴록), 주체를 아예 없애는 것(막스 에른스트의 데칼코마니), 주체를 집단화 방식이 있다. 
 
 
 
[종교] 
종교는 절대적 유일신교(구약/3대 종교), 상대적 다신교(힌두교, 불교, 티베트불교/베다)로 구분할 수 있다. 
 
절대적 유일신교 중 유대교는 유대인 민족종교. 유일신 야훼를 믿고 구세주로서 메시아 사상을 따르고 타나크(구약-토라, 네비임, 케투팀)가 근간이다. 그리스도교는 메시아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약속인 유대교와는 다르게 예수(신과 동급)를 메시아로 믿는다. 그리스도교 믿음의 근간은 예수의 삶과 그 제자들의 행적에 대한 27권의 문서들을 묶은 신약이다. 이슬람교는 단일 종교로서 신도가 가장 많다(세계 인구의 약 1/4). 구약을 믿고, 무함마드(마호메트)를 하느님의 사도(신과 동급은 아닌 선지자)로 인정한다. 무함마드가 유일신 알라의 계시를 받아 작성한 경전이 코란이다. 이슬람교에서는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에 따라 상징물을 거부하기 때문에 기하학적 무늬가 반복되는 아라베스크 양식이 발달했다. 무함마드가 메디나에 도착한 622년 9월 20을 '헤지라'라고 부르고, 이 해가 이슬람 달력의 원년이 된다. 
 
상대적 다신교에는 힌두교, 불교, 티베트불교가 있다. 인도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아시아 전역에 영향을 미쳤다. 가장 근원적인 뿌리인 '베다'는 구전으로 전해오던 내용을 3,500년 전에 산스크리트어로 종합한 문서다. 상히타, 브라흐마나, 아라니아카, 우파니샤드(베단타 : 우주의 원리에 대한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는 철학서로서 베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의 네 부분으로 구분하며, 베다는 동양 종교의 근간을 이루었다. 힌두교는 인도의 종교라는 뜻으로, '힌두'의 뜻 자체가 '인도'와 어원이 같다. 신도 수만 고려했을 때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에 이어 세 번째로 크다. 힌두교의 신은 브라흐마(창조), 비슈누(유지), 시바(파괴)가 가장 중요한 세 신이다. 불교는 기원전 6세기 무렵여 고타마 싯다르타에 의해 시작했고 베다 철학의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불교는 고정적이고 불변하는 자아는 없으며, '나'라는 존재는 다만 정신적 요소와 물질적 요소들이 임시로 뭉처져있는 무더기, 즉 무아이다. 티베트불교는 불교의 분파 중 밀교적 형태를 가진 금강승이 티베트로 전파했는데 티베트에 불교를 전파한 사람은 인도의 출가 수도승 파드마삼바바. 그가 쓴 108개의 경전이 '티베트 사자의 서'다. 




[신비] 
혼자서 깨닫고 이해해야만 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체험이 신비다. 
 
죽음의 순간, 즉 임사체험 (NDE Near Death Experience)은 의학적 기준으로 죽음에 이르렀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 이후 특수한 체험을 기억하는 현상을 말한다. 연구 결과를 통해 임사체험 과정에서 몇 가지 공통된 패턴이 발견되는데 문화, 인종, 지역, 종교와는 무관하게 보편의 구조를 갖는다. 임사체험에 대한 반론에는 뇌이상설(호르몬설-엔도르핀 과다분비에 의한 환각), 산소결핍설(심장박동 정지로 뇌 안의 산소 부족에 의한 환각)이 있으며 여기에는 물심이원론과 물심일원론이 있다. 
 
죽음 이후에는 네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무無(죽음이 시간에서 완전한 끝이라는 관점. 유물론적 세계관을 전제), 영생(죽음 이후에도 삶이 계속된다. 절대적 유일신교가 가지고 있는 사후관으로써 물심이원론의 관점이 전제), 윤회(죽음 이후에 시간이 되돌아온다는 견해. 상대적 다신교의 입장. 물심이원론, 유물론의 입장에서 윤회를 설명), 영원회귀(니체 : 시간과 공간 변화 없이 정확하게 동일한 삶의 영원한 반복)가 있다. 영원회귀의 개념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먼 미래의 보이지 않는 약속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임을 밝히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돌아보기 위함이다. 
 
삶에는 통시적(인생) 의미, 공시적(의식) 의미가 있다. 인생은 인생 전체에 대해 앞서 이해할 때 비로소 부분으로서의 현재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현재라는 삶의 부분들을 한 조각씩 이해하게 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생 전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해석학적 순환이고, 삶은 외부로부터 오는 감각과 내면으로부터 오는 관념이 내면 세계를 구성하는 재료가 된다는 것이다. 의식은 내면 세계를 갖는 능력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지금 '내'가, '나'를 기준점으로, 세계를 재구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의식의 주관성은 세계의 구심점으로서 세계를 인지하고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종교나 철학을 넘어선, 나와 타인은 눈앞의 공간과 물리적 실체를 다르게 구성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 중에서 진짜 외부에 있는 것은 없으며, 머릿속에 있다. 칸트는 눈앞의 세계는 진짜 세계가 아니라, 내가 구성해낸 주관적인 세계로서의 현상 세계이며 우리는 현상 세계에 살고, 진짜 세계인 물자체에는 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결국 모두 자신의 마음 안에 산다. 
 
 
■  ■  ■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돈이 절대적인 삶의 가치가 될 것 같지만, 정작 우리가 살면서 길을 잃고 헤매거나 벼랑 끝에 서게 될 때 기대게 되는 것은 현실 세계를 넘어 손에 잡히지 않는 진리들이다. 실체를 확인할 수 없으나 종교, 철학, 과학, 예술은 인간의 삶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늘 존재하고 있다. 학문적으로 막연할 수 있는 부분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마치 복습하는 기분이 들어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읽었다. 
 

경험해 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는 호기심과 설레임을 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두려움이 동반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대상에 늘 의지하게 되는 건 아닐까싶다. 새삼 인간이 사후 세계와 종교에 집착하는 근원은 어디있을까를 생각해보면서 문득 아시아 어느 지역(기억으로는 히말라야 고산 지대) 주민들이 사람이 죽으면 산꼭대기에 올라가 시신을 새들이 먹게 한다는 것과 접했던 당시에 끔찍했다기보다 자연의 순리에 맞는 사후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현실 너머의 세상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니체의 말처럼 일단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야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 - 상처받기 쉬운 당신을 위한, 정여울의 마음 상담소
정여울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심리 치유와 인문학이 만난 에세이.

'당신의 슬픔은 지극히 정상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프롤로그에서 작가 자신의 '내면 아이'를 보듬었던 경험을 드러내면서 트라우마와 대면해야 하는 이유와 극복의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까닭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럼으로써 자기 안의 결핍과 화해하고 개성화의 길로 가야만 한다고 말한다.  


작가가 '내면의 아이'를 마주하고 치유의 과정을 거쳤던 것처럼 나도 꽤 오래 전 심리학을 공부하며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나의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친 경험이 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작가는 심리학 이론을 들어 설명하거나 가르치지 않는다.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고스란히 내놓으며 자신의 치유과정을 공유한다. 그중에서 강조하는 부분은 '내면아이 입양하기'다. 어린시절 받았던 상처는 내면화되어 트라우마가 되고 어른이 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꼭 자기 안에 있는 내면의 아이와 마주하고 보듬는 과정을 통해야만 과거에 갇히지 않은 지금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진정한 정체성을 가진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한 개성화 과정을 거친다.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의식적으로 끌어내 나 자신이 되기 위한 노력의 연료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그것이 '희열'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희열은 글쓰기라고 한다. 그런데 학창시절 동안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안되는 우리나라에서 정작 자신이 무엇에 희열을 느끼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청소년 아이들의 많은 수가 취미는 게임과 웹툰 보기, 그나마 초등시절에 간간이 있었던 예체능 취미는 고학년이 될수록 찾아보기가 어렵다. 입시에, 취업 시험에 허덕이다보면 무엇에 '희열'을 느낄겨를도 없고, 현실적인 경제 문제에 부딪히다 보면 나의 개성을 누르며 살게 된다. 그러나 자신을 감싸고 있는 사회적 에고의 틀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희열'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희열'까지는 어떻게 가야할까? 작가는 타인과의 접속, 즉 공감과 연대를 언급한다.  


220.
우리가 더 많은 타인의 이야기와 접속할수록, 우리가 더 깊은 타인의 상처와 대화할수록, 삶은 더 풍요로운 빛깔과 향기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며 마침내 두 번째 트라우마에는 결코 쓰러지지 않을 용기를 걸러줄 것이다.


소통과 마음 나누기가 단절되고 실수를 실패로, 실패를 패배로 단정하며 건강한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법은 배우지 못한 세대는 부정적 에너지로 인해 스스로를 고립시키거나 폭력적인 방식으로 삶을 파괴한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들을 인지하고 상처받았던 내면을 치유하고 스스로의 마음 챙김을 가져야 한다. 








가장 마음에 쑥 들어왔던 한 문장. 

293.

소박한 일상의 감각을 되찾는 것. 


쌀 씻을 때 손에 감기는 쌀알들, 밥 짓는 내음,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향기로운 커피향과 입 안에 머금는 따스한 맛처럼 일상의 소박한 감각을 되찾는 것이야말로 우리 안의 분노와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첫걸음이 된다고 말한다. 작가의 말처럼 무심코 지나치며 당연하게 여겨왔던 그렇고 그런 일상의 작은 몸짓의 가치를 알 때, 매일의 색깔과 가능성은 달라질 것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