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 학살과 파괴, 새로운 질서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대전 2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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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권력과 국경선이 새롭게 재편되고 자본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가 세계에 적용된, 인류의 전환점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은 전쟁사이면서 동시에 첨예한 정치적 논리가 개입된 정치사다.

이 책은 단순히 전쟁의 과정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풍부한 사진과 지도를 자료로 첨부하면서 전쟁 내내 흐름을 구체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리고 전쟁의 이면에 감춰진 각국의 이권과 지도자가 가진 개인의 이익들까지 들여다보면서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벌어지는 그 이상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은 소련이 러시아 인접국에 대한 공산주의 지배의 확립은 냉전에 따른 결과로 나온 것이지 냉전을 일으킨 원인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승전국이었음에도 스탈린은 전쟁 이후 인접한 핀란드와 오스트리아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묵인했다. 소련의 정책이 단호했음은 사실이지만 공산주의와는 관계가 없었다는 것과 이를 영국.미국과 지중해 패권을 놓고도 적극적인 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나치와 일본의 압제에 놓여있었던 민족들을 해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되었다고는 하지만 민간인 사망과 대량 학살, 엄청난 규모의 도시 파괴, 물적 손실, 난민 발생 등을 놓고 보면 히틀러의 파시즘을 막았다는 것 외에는 그의 가치에 상응하는 어떠한 대의가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영국은 1차대전 때부터 '정의실현'을 명분으로 싸웠지만, 그 과정은 그야말로 강대국의 밥그릇 싸움에 불과하다. 이 전쟁을 통해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무기를 팔고, 힘없는 나라들을 복속해 신탁통치를 시작했으며 그로인한 영향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또한 강대국의 편리와 잇속에 맞춰 약소국가들의 국경선을 정함으로써 생긴 갈등은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그들이 테이블 앞에 앉아 자신의 정치적 위치와 명분으로 입씨름을 하고, 광적인 한 개인의 욕망을 쏟아내고자 전선에서 군인들을 몰아붙인 그 시각에, 수많은 전장의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구상할 권리조차 상실된 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어나갔다. 그 죽음 앞에 정의가 존재하는가.

저자는 드레스덴의 폭격이 전쟁동안 행해진 다른 공격들과 다를 바 없었고 많은 경우들과 비교해서 덜 심했다고 전하면서 독일의 저항이 2월에도 만만치 않았음을 상기시키며 드레스덴의 폭격과 학살에 가까운 이 작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독일의 패색은 짙었고 폭격당시 드레스덴의 직접적인 저항도 없었으며 군인도 아닌 피난민,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저자의 말대로 4년 동안 무차별 폭격은 여론과 정치인들로부터 많은 성원을 받은 영국의 업적이었다. 하지만 드레스덴 폭격을 민간인 사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단초로 보는 것이 아닌, 전쟁 내내 있어왔던 폭격과 다를 바 없다는 시각은 아쉽다.

종전 후, 네 승전 강대국의 국제 재판소가 뉘른베르크에 세워졌고, 괴링을 필두로 21명의 지도자급 독일인들이 전범으로 기소되었으며 일본에서는 고작 일곱 명의 지도자만 교수되었다. 승리한 강대국들은 불변하는 정의의 원칙이 지켜졌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럴까? 저자는 기소된 범죄 증에 많은 범죄가 포로나 인질에 대한 대량 학살, 또는 유대인 학살과 같은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실제하는 범죄였다는 말과 함께 이 대목에서 그렇다면 반평화 범죄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침량전쟁을 준비하고 일으키는 것만이 범죄인가? 전쟁 중 민간인 학살과 드레스덴 폭격이나 히로시마 원자 폭탄 투하 등은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저자는 전쟁이 수반한 모든 학살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은 훌륭한 전쟁이었다고 평가했는데, 전쟁 앞에 '훌륭한'이라는 단어가 제 의미를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나간 역사에 대한 후회는 소용이 없다. 다만 역사의 기록이 승리자의 기록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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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리스
라이 커티스 지음, 이수영 옮김 / 시공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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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겪는 불의의 사고에 대한 회고록에는 무엇이 담겨있을지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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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더 저널리스트 1~3 세트 - 전3권 - 어니스트 헤밍웨이 + 조지 오웰 + 카를 마르크스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외 지음, 김영진 엮음 / 한빛비즈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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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야말로 저널리스트의 향연, 그들의 날카로운 펜끝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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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 인간공학에 대하여
페터 슬로터다이크 지음, 문순표 옮김 / 오월의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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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시오랑, 카프카, 니케, 릴케를 철학과 함께 만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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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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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플로리다주 니클 아카데미의 비밀 묘지에서 불에 탄 유해들이 발견되었다. 금이 가거나 구멍이 뚫린 두개골, 대형 산탄이 잔뜩 박힌 갈비뼈 등 묘지 부트 힐에서 발견된 유해들은 의심스럽고 수상쩍은 기운을 내뿜었다. 죽어서야 세상에 목소리를 낸 그들이 이야기가 드러난다.






호텔 주방에서 일하는 할머니 해리엇의 손에서 성장한 엘우드는 어린시절 인종분리 정책의 현장 한가운데에 있었다. 인종분리를 중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백인이 다니는 학교에 다닐 수 없었으며 호텔에서 허드렛 일을 하는 사람들은 흑인일 뿐만 아니라 흑인이 손님으로 오는 일은 더욱이 없었다. 마틴 루서 킹의 연설 음반을 수없이 들으며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던 엘우드는 열네 살이 되자 방과 후에 이탈리아인 마르코니 씨의 담배 가게에서 일하면서 <라이프> 잡지를 통해 흑인인권 운동 시위를 벌이는 사진을 보고 흥분하고 때마침 진학한 링컨고등학교에서 흑인인권운동에 적극적인 힐 선생님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힐 선생님의 주선으로 맬빈 그리그스 기술대학에서 가을 학기동안 강의를 무료를 들을 수 있게 된 엘우드는 대학으로 향하던 중 도난차량을 얻어 타고, 경찰에 붙잡혀 공범으로 몰려 감화원 니클에 보내진다.


니클 안에서도 인종분리는 여전했다. 백인 소년들은 언덕 아래에, 흑인 소년들은 언덕 위에 각각 분리되어 있었다. 처음 입교생은 유충으로 행실에 따라 네 단계로 나뉘어진다. 유충부터 시작해서 탐험가, 개척자를 거쳐 최고 단계 에이스에 이르면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단계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올바른' 행동으로 점수를 얻으면 된다. 여기서 올바른 행동이란 선생의 말을 잘 듣고, 게으름을 피우거나 꾀병을 부지지 않고 맡은 일을 해내며,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니클에서 받을 수 있는 점수는 그저 노동, 품행, 고분고분한 태도에 달려있을 뿐이었고, 또한 '공부'의 수준도 단순 연산을 배우는 정도였다. 사실 니클에 붙잡혀 온 아이 중 제대로 초등교육을 받은 아이조차 거의 없었으니 놀라울 일도 아니었고, 대학 강의를 청강하기 위해 달리던 길 위에서 붙잡혀 오고, 창고에서 버려진 고전문학을 읽는 엘우드가 더 예외적인 경우였다.


자기만 잘 하면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엘우드는 상급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하급생 소년 코리를 발견하고 말리기 위해 끼어들었다가 얻어맞는다. 그런데 하필 백인 관리인이 현장을 목격하고 엘우드는 화이트하우스라는 곳으로 끌려가 죽기 직전까지 매질을 당한다. 백인 관리인에게 있어 이 사건에 대한 내막은 중요하지 않았다. 감히 소란을 피운 흑인 소년을 얌전하게 만드는 것 뿐. 엘우드는 니클에 붙잡혀 오기 전 늘 들었던 마틴 루터 킹의 연설과 힐 선생님의 말을 잊지 않았다. 문제를 발견했을 때 회피하지 말고 앞으로 나서는 것. 그러나 엘우드가 신뢰했던 정의는 니클에서의 정의와 달랐다.


어느날 가깝게 지내는 터너의 소개로 엘우드는 비교적 편안한 보직인 지역봉사로 자리를 옮길 수 있게 된다. 덕분에 엘우드는 백인 직원 하퍼가 외근을 나갈 때마다 니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비록 잠시 뿐이지만 다시 '자유세계'를 느껴본 엘우드는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 반드시 빠른 시일 내에 집과 학교로 돌아가리라 다짐한다. 니클에서 전통적 행사로 자리하고 있는 복싱 대회. 결승은 백인 대표와 흑인 대표가 맞붙는 최고의 이벤트다. 올해에는 승부를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양측 대표가 팽팽했는데, 백인 관리인 스펜서는 흑인 대표인 그리프에게 지는 경기를 하라고 지시한다. 그 지시를 어길 경우에는 어떠한 대가가 따를지 뻔했다. 경기 당일, 결국 판정승으로 그리프가 승리하고, 흑인 소년들은 그에게 '흑인의 자존심'이라는 영예를 부여했으나 공포에 질린 얼굴로 그리프가 끌려간 곳은 다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아는 '저 뒤'였다. 그 이후 두 번 다시 그리프는 돌아오지 않았다.


니클을 벗어나는 방법은 네 가지였다. 복역 기간을 채우거나 법원이 개입하는 것이지만 후자는 거의 마법과도 같은 경우다. 아니면 학생이 죽거나 도망치거나. 사고자인 경우도 물론 있지만 그보다는 맞아 죽거나 갑자기 사라지는 아이도 있다. 징벌 방에 갇혀 심장마비로 죽었을 때에도 검시관은 자연사로 판정했고 이들 죽음에 대한 조사는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탈출을 시도한 아이들은 대부분 붙잡혀서 아이스크림 공장을 한 번 맛본 뒤 품행 교정을 위해 2주 정도 어두운 독방에 갇혔다. 그 어떤 것도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을 아는 엘우드는 마지막 방법을 시도해 보기로 한다. 니클을 없애는 것.


엘우드는 잔혹한 매질과 살인적인 폭력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움을 그만두었다. 조심스레 행동하면서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끝까지 살아남아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니클에서 벗어나고자 열패감 따위는 보이지 않는 맨 밑바닥에 묻어둔 채 그냥 현실에 안주하며 멍해져서 그 현실을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침대로 여기고 잠드는 법을 터득한 검둥이로 살았다. 엘우드는 니클에 감사가 나온다는 소식에 니클을 없앨 준비를 한다. 만류하는 터너와 쥭음을 무릎쓰고 계획 강행하는 엘우드. 예상치 못한 변수와 터너의 손에 넘어간 쪽지. 탈출, 그리고 가슴 아픈 반전.



■  ■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조합해 허구의 옷을 입은 소설 <니클의 아이들>은 1960년대 짐 크로우 법에 의한 인종분리 정책으로 시작된 인종차별과 폭력을 통해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다시 들여다 본다.


엘우드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열다섯 살 소년이다. 마틴 루터 킹의 연설 음반을 닳도록 들을 만큼 흑인인권에 관심이 많았고 고전과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독서력을 갖춘, 그야말로 전도유망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감화원 니클로 보내진 이유는 단 하나, 흑인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얻어 탄 자동차가 하필이면 절도차량이었다는 사실은 엘우드의 불행이었지만, 이후에 벌어지는 법적 절차와 사건들은 인종차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백인이 권력자인 사회에서 흑인은 간이 식당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평화를 깨는 존재이고, 백인에게 길을 비켜주지 않는 것은 '오만불손한 접촉'죄에 해당한다. 누가 누구에게 불가촉천민의 굴레를 씌울 자격이 있단 말인가.


니클 내부에서 벌어지는 부정부패와 차별, 억압과 폭력은 상상을 불허한다. 흑인 기숙사에 들어가야 할 물품과 아이들이 먹어야할 식재료와 의약품를 빼돌려 착복하고, 아동 노동력 착취는 말할 것도 없으며 강간, 폭행, 살인 등 이루 다 셀 수 없는 악행들이 난무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권 말살 현장 안에서조차 인종차별이 존재한다. 악질 교도관들은 아이들을 괴롭히고, 힘이 센 아이들은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며, 백인 소년들은 흑인 소년들을 린치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는 늘 흑인 아이들이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1960년대 인종차별 현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옮겨왔다. 로자 파크스에서 시작된 버스 보이콧 운동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 발췌 등과 더불어 인종분리 정책 폐지 이후에도 끊임없이 자행되어 왔던 인종차별과 억압에 대한 진실을 대면하게 된다. 독자는 엘우드와 터너를 통해서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할 길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볼 수 있다. 두 소년의 연대가 우정 그 이상인 이유는 암울한 현실에 구원이 되어주는 존재였고, 기반한 감정이 무엇이었든 살아야 할, 그것도 제대로 살아야할 이유가 되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지금, 팬데믹 세상에서 우리의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려나.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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