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히 많은 밤이 뛰어올라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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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우수한 성적으로 실패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스물세 살 쇼타는 높은 취업 관문에 좌절하고 가족, 친구들과 단절한 채 현재는 도쿄의 고층 빌딩 유리창 닦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 가을, 여지없이 면접관의 냉담한 반응에 낙담해 자살을 생각한 그는 고층 빌딩을 둘러보던 중 가느다란 로프에 매달려 유리창 닦는 일을 하는 사람을 발견한 후 충동적으로 입사를 결정해 1년이 넘도록 이 일을 하고 있다. 어느날, 고급 맨션에서 작업을 하던 쇼타는 그 건물 3706호에 사는 노부인으로부터 초대를 받고, 그녀는 쇼타에게 청소하는 건물의 내부 사진을 찍어와 달라는 부탁을 한다. 정말로 도쿄 빌딩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노부인에게 받은 선금으로 장비를 구입하고 업무 당일의 파트너에게 들키지 않도록 카메라를 가슴께에 장착한 쇼타는 남모르게 촬영하는 데에 성공한다. 집으로 돌아와 촬영한 결과물을 확인하고, 자신이 무척 위험한 장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새끼 손가락 정도 굵기의 와이어, 견고한 고층 빌딩에 비하면 너무나도 부실한 금속제 곤돌라, 심지어 바람이라도 불게 되면 쉽게 흔들려 아무것도 작업자들을 보호해 줄 수 없는 여건, 더욱 놀라운 건 어느새 쇼타 자신이 그런 환경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과거 자신이 설계했던 미래였다면 지금쯤 양복 차림으로 책상에 앉아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고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그런 사람들을 창 밖에서 지켜보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는 어느 쪽이 더 좋은지 알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드는 쇼타는 문득 고층 빌딩 유리창 닦이 일을 하면서 한 번도 일을 마친 후 작업 현장을 되돌아본 적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자신이 하루에 이렇게 많은 유리창을 닦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그런데 쇼타는 유리창을 닦고 있을 때면 고층 빌딩에서 일을 하다 추락사 한 선배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는 쇼타에게 살아있을 때 실제로 했던 말들이나 평소 자기의 생각, 일상의 잡담들을 쉼없이 늘어놓는다. 쇼타는 이러한 현상을 노부인에게 털어놓는데, 그녀는 자신도 같은 경험이 있다며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사진을 보며 피사체를 분석하고 유추한다. 노부인과 쇼타는 사진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다과나 식사를 나누면서 사적인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상대의 외로움과 현실에서의 좌절을 서로공유하며 위로한다.


어느날 쇼타는 함께 작업을 하는 동료에게 도촬 사실을 들키고, 그 동료 역시 재미삼아 촬영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후 촬영을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3706호를 방문해 자기의 의사를 전달한 쇼타는 그동안 찍은 사진으로 실내에 거리를 만든 노부인에게 조명을 만들어 준다. 그렇게 노부인과 헤어진 쇼타는 두 달만에 그녀가 살고 있는 맨션의 유리창 청소를 하게 되고 청문 밖에서 3706호가 비어있음을 확인한다. 노부인은 어디로 간 것일까?







실패와 좌절로 인해 현실을 외면한 채 살아있기 때문에 살고 있는 청년 쇼타 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노부인. 두 사람은 거래로 시작된 만남을 갖게 되면서 대화를 하게 되고 스스럼 없는 대화는 상대방의 입장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선사한다.


쇼타는 고층 건물 유리창 닦이 일을 하면서 처음에는 자신의 예정된 미래가 유리벽 안쪽에 있는 삶의 모습이었던 것과 유리벽 밖에서 위태롭게 줄에 매달려있는 자신의 현재 처지를 비교하며 자괴감을 넘어 무력함을 느낀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건물 안쪽에 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런데 노부인의 부탁을 받고 사진을 현상하면서 느낀 것은 자신이 동경했던 유리벽 안쪽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자기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발견한다.


작은 주택가 골목에서 살고 싶었지만 안전을 위해 자식이 마련해준 고층 빌딩에 살면서 섬에 고립된 듯 살고 있는 노부인은 소통이 전혀없는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에 과연 사람이 살고 있는지 알고 싶다며 쇼타에게 촬영을 부탁한다. 넓은 실내 공간을 채울 수 없어 상자를 세우고, 홀로 된 삶을 확인시켜주는 거울을 가려놓은 노부인은 도시인의 외로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쇼타는 곤돌라에서 촬영을 할 때면 죽은 선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의 삶에 관심을 보이자, 보이지 않는 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선배의 목소리가 자신의 내면에서 나왔던 울림은 아니었을까. 쇼타는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던 학생이었다. 다양한 삶의 경험없이 오로지 한 가지 길이 정답인 것처럼 살아온 그에게 실패란 곧 패배와 절망이었을 것이다. 쇼타에게 죽지못해 혹은 죽어도 그만인 고층 빌딩 유리창 청소 일이 노부인을 만남으로써 삶에 있어 한 겹의 경험으로 전환된 것은 아닐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추억을 나눈다는 것, 관계의 힘이다. 이러한 관계가 자신을, 그리고 상대를 소중한 사람으로 만든다. 노부인을 알고 청소를 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그녀가 사는 맨션을 찾는 쇼타에게 노부인은 더이상 유리벽 안에 있는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더불어 자신의 존재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단 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세상에 발을 딛지 못하고 허공에서 부유하던 청년이 새롭게 삶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세상의 잣대에 맞춰 사는 것이 꼭 성공한 삶이 아님을, 그래서 누군가가 규정해 놓은 삶의 의미가 아닌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기를, 그리고 언제든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세상에 바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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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단편전집, 개정판 카프카 전집 1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주동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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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성, 다의성, 다층적 구조로 대변하는 실존주의 대표적 작가 프란츠 카프카. 독일어 사전에 '카프카적(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가 내재되어 있다는 의미)'이라는 단어가 공식적으로 등재되어 있을만큼 그의 문학세계는 난해하고 독특하다. 민족과 가정 내에서 정체성에 시달리며 그로인해 인간의 존재와 자아, 그리고 소외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했다는 사실은 작품 안에서도 충분히 전해진다. 이 책은 기존에 출간된 카프카 단편집 중 가장 많은 수의 작품을 수록하지 않았을까 싶다.


먼저 일평생 그를 고뇌에 빠트렸던 자아와 정체성, 그리고 인간 소외와 고립을 드러낸 작품을들 살펴보면 <자하르트와 자무엘> <학술원에의 보고> <어느 단식 광대> <법에 대한 의문> <어느 개의 연구> <시골의 결혼 준비> <어느 투쟁의 기록> <요제피네, 여가수 또는 서씨족> 등을 들 수 있다.


<리바르트와 자무엘>에서는 두 남성에게 자신의 자아를 양분해 투영시킨다. 자무엘은 작가로서, 리하르트는 보험회사 법률고문으로서 서로의 바라보며 진단하듯 서술되고 소설의 마지막에는 구원에 대한 바람으로 마무리 된다. <요제피네, 여가수 또는 서씨족> 에서 요제피네의 휘파람은 카프카에게 있어 '글쓰기'와 같은 맥락, 즉 문학에 대해 작가 자신이 갖는 절대성, 그리고 예술과 문학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단식 광대>는 1921~1922년 집필한 소설인데, 관객들에게 자신의 단식기술을 공연하는 광대는 40일 동안 단식을 한 후 흥행사가 단식광대에게 약간의 음식을 먹으라고 권유하고 단식을 끝내는 행사를 개최한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자 단식 광대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단식 광대는 동물우리로 밀려나게 된다. 어느 누구도 광대의 단식 일수를 세고 있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단식을 계속하고 감독관이 왜 단식을 아직까지 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카프카는 살제로 아무런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의 후두결핵을 앓았는데 소설에서 존재감이 사라져가는 광대를 통해 자신의 작가로서 예술가적 존재에 대해 언급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는 피아노를 꼭 쳐야겠다는 화자와 무관심한 청중이 등장하는 <어느 투쟁의 기록>에서 글을 쓰고자하는 그의 열망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보험회사 법률고문으로 일하면서 느꼈던 사회 집단에서 물질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인간이 갖는 소외와 고립, 그리고 자본주의가 갖는 부조리에 대한 내용도 <법에 대한 의문> <양동이를 탄 사나이> <일상의 혼란> <낡은 쪽지> <법 앞에서> 등을 통해 충분히 살펴볼 수 있고, <어느 개의 연구>에서는 인간의 광범위한 지식이 실질적으로 갖는 한계를 비틀고 있다. <학술원에서의 보고>는 유대인 사회에서도, 유럽인 사회에서도 온전하게 소속되지 못한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산문시 같은 <밤에>의 전문을 통해서도 느껴지는데, 이러한 맥락은 <튀기>에서 더 두드러진다. 이렇듯 카프카의 정체성과 사회적 틀을 깨고자하는 노력과 한계를 반복했던 고뇌를 무수히 많은 짧은 단편 속에서 느낄 수 있다.


카프카는 결국 아버지라는 벽을 극복했다고 볼 수 없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아버지 앞에서 늘 한없이 작았던 그의 소설에는 유독 아버지 혹은 아버지를 상징하는 듯한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선고> <시골 의사> <다리> <돌연한 출발> <황제의 칙명> <열한 명의 아들> <굴> 등은 아버지를 비롯헤 카프카에게 있어 장벽이 되었던 여러 틀과 그에 대한 해방, 그리고 죽음을 쓰고 있다.


특히 <열한 명의 아들>은 카프카가 아버지가 되어 아들인 자기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보인다. 소설 속 아들들은 각각 진지하고 영리하며 훌륭한 체격의 소유자이고, 미남이다. 또한 사교적이고 착하며 악속을 잘 지키고 사려 깊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형태의 위트까지 갖추고 있으며 우하하다. 그런데 열 번째 아들은 불성실하고, 열 한번째 아들은 연약하다. 이는 아홉째 아들까지는 카프카가 짐작하는 아버지가 바라는 이상적인 아들 상이고, 열번째부터 특히 막내 아들은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느껴진다. 마지막에서 "아버지, 제가 모시고 살게요"라는 대사는 앞선 작품 '선고' 에서 주인공이 죽기 전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외치는 장면과 상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든 독신주의자, 블룸펠트>에서는 '공'이 등장하는데, 블룸펠트는 '공'을 원하는 이는 소녀들이지만 그는 소년에게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공을 차지하는 사람은 소녀들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가부장적인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 여동생을 연상시키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 또한 아버지(그리고 가업이라는 굴레)로부터 해방하고 싶은 작가의 내면이 느껴졌다. 더불어 반려견, 즉 동반자를 들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두 번이나 파혼했던 그의 마음이 아니었을까라는 짐작을 해봤다. 그리고 <다리>에서 느껴지는 아버지와의 관계 혹은 의미를 확대하면 억압받았던 유대인들을 상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연한 출발>은 보험원 일상에서의 해방, <선고> <독수리> <튀기> <굴>은 결국 죽음을 통해서만 해방을 이룰 수 있다는 작가의 비극적 사관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변신>은 1915년 작품으로 카프카를 대표하는 소설 중 하나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느날 아침 느닷없이 해충(갑충)이 된 그레고르 잠자. 그가 벌레가 됐다는 사실에 가족들은 놀라고 걱정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집안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그는 돈을 벌 수 없는 처지가 되자 가족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결국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힌 후 가족들에게 방치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 소설은 위에서 언급했던 유대계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 소외과 고립, 아버지와 관계 등 작가의 내면이 모두 투영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레고르는 유능한 세일즈맨이고 조건이 좋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비교적 넓은 집에서 하녀를 두고 살지만, 빚만 갚으면 회사를 그만두겠다며 불평을 한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느닷없이 벌레가 된 그는 처음에는 당황하는 듯 하나 곧 적응해 익숙해지고 오히려 불만은 커녕 인간으로서의 삶보다 더 즐거워하기까지 한다. 고레고르의 세일즈맨으로서의 삶을 짚어보면 그는 늘 바쁘고 걱정을 달고 산다. 오로지 빚을 갚는 데에만 열중한 그레고르가 동생의 연주를 듣고 감명을 받는 때는 벌레가 되어서이며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면밀한 관찰 역시 사람의 모습일 때는 하지 못했다. 또한 가족의 생계를 혼자 감당해야 했던 그가 동생이 가져다준 음식을 먹으며 보살핌을 받는 경험 역시 마찬가지다. 그레고르가 현실을 인식한 계기는 하숙생들이 등장하면서 부터인데, 가족들은 수입을 마련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하숙생을 들이게 되고, 그레고르는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 각성한다. 가족들은 이제 혐오스러운 벌레에 불과한 그레고르를 거추장스러워한다. 그는 편안했던 벌레의 생활을 청산하고 예전처럼 순응하며 살아야 할까?

이에 대한 갈등은 소설 속에서 그레고르가 문지방을 넘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이 문지방이라는 경계가 갖는 의미는 단편 <마당문 두드리는 소리>에서도 잘 나타난다. 문지방 안쪽의 내면 세계와 문지방 바깥의 외부 세계를 분리해 그 안에서 갈등하는 인물을 통해 작가의 내적 고뇌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레고르에게 사과를 던진 사람은 아버지였지만, 그를 방치하면서 버리자고 주장하는 이는 여동생이다. 어쩌면 카프카는 자신을 이해해 주었던 여동생이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한 그레고르 자신의 갈등을 끝내주기를 바랐던 건 아닐까?

'해충'은 좁은 의미로는 현실과 단절하고픈 작가 본인의 자아이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전쟁과 시대적 상황에 시달리는 사회의 낮은 계층 사람들, 혹은 당시 유럽 사회에서 기생충이라고 불렸던 유대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노력으로 중간 계급의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동부 유대인으로서 온전한 유대인으로도 유럽인으로도 살지 못했고, 끝내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해 약한 몸으로 낮에는 일하고 늦은 밤까지 글을 써야 했던 사람. 파혼을 거듭하면서도 결국 독신으로 생을 마감했고 오로지 글쓰기에 대한 열망으로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음에도 모두 불태워 달라고 유연을 남겼던 사람. 그의 깊은 고독과 내면을 어찌 다 이애할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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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1차 세계대전 - 유럽의 종말과 새로운 세계의 탄생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대전 1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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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의 주민들은 남슬라브족으로 세르비아인이나 크로아티아인이었는데, 많은 이들이 세르비아와의 합병 대신 합스부르크가(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 데 대해 분개했다. 민족주의 청년들은 암살 음모를 꾸미고 1914년 6월 28일, 육군 검열을 하기 위해 사라예보에서 행진을 하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를 암살했다. 이 사건은 앞으로 벌어질 제1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됐다.


당시 국제 정세는, 독일과 영국은 우호적인 관계였고 독일의 실업가들은 경제만으로도 유럽의 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전쟁을 원치 않았다. 더구나 영국과 프랑스의 사람들은 독일보다는 러시아를 더 염려했다. 전반적인 상황은 독일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즉 의도적으로 전쟁을 도발하겠다고 결정할만한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강대국이지만 쇠퇴를 시작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이를 도전으로 받아들였고, 이전부터 세르비아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겼었던 제국의 통치자들은 이를 빌미로 삼았다. 거기에 독일이 러시아가 개입할 경우 오스트리아의 뒷배가 되주겠다고 약속했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 정부가 사라예보 사건에 관련있다는 증거를 찾으려 했으나 실패하자, 오스트리아는 굴욕을 주겠다는 의도로 세르비아와 관계를 단절하고 전쟁을 선포했지만 어디까지나 외교적 술책이었다. 여기에 러시아가 현실적인 안보와 교역, 생존의 문제를 들고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강력한 위협으로 대응했다. 실제로 전쟁의 의사는 없었음에도 자국의 위신 지키기와 오해로 동원까지 들먹이며 서로에게 위협만했던 러시아와 독일. 결국 동원과 전쟁을 하나로 묶어 실행하는 독일이 동원을 진행한 러시아에게 최후통첩을 보냈고, 이를 러시아가 거부하자 8월 1일, 독일은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틀 뒤에는 프랑스에까지 전쟁을 선포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전쟁이 시작됐다.


독일은 프랑스로 가기 위해 벨기에 정부에 통과를 요구했고, 벨기에가 이를 거부하자 영국도 끌어들여졌다. 영국은 '약소국 벨기'의 중립과 독립이라는 명분과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전쟁'이라는 이상으로 참전했다. 영국은 독일에 전쟁을 선포한 유일한 연합국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혼란을 야기시킨 장본인인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독일에 떠밀려서 마지못해 8월6일이 되어서야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한다. 그러나 세르비아를 침공하고 두 달 여만에 밀려났고, 오히려 세르비아가 남부 헝가리에 쳐들어왔다. 영국과 프랑스 역시 마지못해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관계를 끊었다.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만장일치로 전쟁에 찬성했고, 백만 단위의 병력을 동원했으며, 그들 모두가 이 전쟁이 침략이 아닌 자신의 존재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규모 군대의 식량 보급은 중요하지만 쉽지 않다. 현지에서 해결하기에도, 본국에서 보급을 받기에도 어렵다. 승리를 구축하기 위해 조직된 대규모 군대가 그 거대한 규모로 인해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게 된 것이다. 이후로 전쟁은 교착상태로 4년간 이어진다.


신속하게 속도전으로 끝날 거라 예상했던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끝나지 않을 것처럼 계속 이어졌다. 대체로의 국가들이 아무 준비도 없이 시작했고 물자 부족을 겪고 있으며 총포와 포탄은 무한정 필요했다. 이러한 이유로 산업과 경제 시스템에 변화가 왔고, 복지와 생활 유지와 매점매석, 부정 축재, 난민 발생 등 사회적 문제가 야기했다. 이와같은 혼란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대한 대체적인 열정은 여전히 존재했다. 전쟁 전에 있었던 파업, 여성참정권 집회 운동, 민족 분쟁 등이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각 국가는 자국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아무도 전쟁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았고 독일인들은 이기기 위해, 연합국은 지지 않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 전쟁의 분명한 목표가 없었다. 이 전쟁의 시작으로 국제관계의 양상이 바뀌었는데,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진정한 적이 되었다.


전쟁이 발발하고 무기들이 개발된다. 독가스를 만들어냈고 항공기 수준도 정찰기에서 전투기로, 생산량도 늘어났다. 특히 독일의 유보트(잠수함)은 전함의 보조적인 역할에서 강력한 공격성을 갖추게 되었다. 영국의 루시타니아호를 침몰시킨 것이, 미국이 연합국 편으로 참전하게 하는 최고의 프로파간다가 된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전쟁이 그 자체로 전쟁 목적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었다.

전쟁은 대규모 산업이 되었다. 총포와 포탄의 생산량은 상상 못할 정도였고, 해양 전투가 수상에서 잠수로 전환되면서 잠수함 건조 체제로 바뀌었다. 영국은 1916년 5월에 병역을 의무화하면서 산업 현장의 노동력에 구멍이 생기자 물가와 환율의 안정이 깨졌다. 정부의 화폐 발행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식량 가격은 상승했다. 독일은 굶주림을 피해 군대에 복무했고, 농민들은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가축을 시장에 내다팔면서 물자가 부족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제외하면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정부에 협조했고, 노동자들은 임금이 올라 조용했다.


전쟁은 어느쪽에게도 낙관적이지 않았다. 각국의 정부도 국내적인 위협을 느끼지 않았고, 위협을 느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독일의 통제에 묶여 있어 독자적인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정치가들은 약속했던 결정적인 승리를 얻지 못할 경우 자신들의 지위가 위태로워질 것만을 염려했다. 1916년, 독일과 연합국에서 각각 강화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독일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의해, 연합국은 전쟁 승리를 염원하는 영국에 의해 진척이 어려웠다. 그들은 각자 강한 자신감을 내보이며 승리를 확신했다. 독일과 연합국(사실상 영국)은 안보를 강화해 또다른 전쟁이 없게 하자는 동일한 목적으로 싸웠다. 그런데 오로지 승리만이 확실한 안보를 보장한다고 여겼고, 또 다른 전쟁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제거하기 위해, 그들은 계속해서 전쟁을 수행했다.

1917년을 기점으로 이전 유럽의 역사는 종료되었다. 이제부터는 세계사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 중심에는 윌슨과 레닌이 있었다.


1월 31일 독일은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즉각적으로 개시한다고 발표했고, 2월 2일 윌슨 대통령은 독일과의 관계를 단절했다. 응답하듯 독일 잠수함들이 바로 미국 선박들을 침몰시키면서 4월 6일 미국은 독일에 전쟁을 선포했다. 자국의 안보가 위험에 처한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미국은 오로지 도덕적인 입장으로 전쟁에 임할 수 밖에 없었다. 구리, 면화, 밀 등 대서양 건너로 대량 공급되었고, 공장들은 영국과 프랑스의 주문량을 소화하기 위해 연장 가동을 했다. 경제가 활황을 맞았고, 미국은 번영을 지속하고 부유한 미국인들을 더욱 부유해지도록 하기 위해 전쟁에 참전했다. 미국에게는 육군도, 군수 공장도, 전자도, 항공기도 없었지만, 연합국에 엄청난 규모의 신용 공제를 해줄 수 있었다.


여름이 되자 강화 논의가 재등장했지만 서로가 전리품이 없는 강화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을 입이 아닌 몸으로 감수해야하는 아래 계층 사람들은 승리가 꼭 필요한지에 대한 물음표를 찍기 시작했다. 혹독한 겨울과 경제적 상황은 불만을 야기시켰다. 파업과 수병들의 시위 등 독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쟁을 통해 돈을 벌고 있는 상류층 사람들은 전쟁이 계속 되기를 원했고, 보통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기를 바랐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왕조가 종말을 맞았다. 소비에트라 이름 붙은 노동자 군인 대표자 회의로 실권이 넘어갔다. 이 기구에 의해 자유주의 정치인들로 구성된 임시 정부가 세워졌다. 그런데 4월 16일, 망명 중이던 레닌이 돌아왔다. 뒤이어 그의 동지이자 뛰어난 웅변가인 트로츠키 역시 미국에서 귀국했다. 그들은 참전을 반대했다.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인해 정부가 볼셰비키의 수중에 들어갔다. 의장이 된 레닌은 사회주의 건설을 선언했으며 전쟁의 휴전을 제안하며 소비에트 의회에서 평화령을 낭독했다. 이에 독일은 휴전에 합의할 의향이 있었던 반면 오히려 서유럽은 당황스러워했다. 최고전쟁위원회가 11월 29일에 열렸고 영국은 최종적으로 볼셰비키의 제안에 분명하게 거절했다. 연합국이 전면 휴전 제안을 거절하자 볼셰비키들은 단독 강화 협상을 진행했다. 12월 15일 러시아와 독일 사이에 휴전이 조인되었고, 브레스트 리토프스크에서 강화 협상이 이루어졌다. 이제 러시아는 전쟁에서 떨어져나갔다. 독일과 영국을 포함한 유럽은 볼셰비키가 몰고 올 파장까지 걱정해야할 지경이 되었다.


1918년 3월, 독일은 연합국의 봉쇄로 식량과 산업 원자재가 심각하게 부족했고, 미국군이 점점 더 많이 프랑스로 오고 있었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삐걱대고 있었다. 시간은 독일인들 편에 있지 않았다. 독일의 루덴도르프는 강화를 통한 종전은 정치적 파멸을 불러올 수 있었기에 전쟁에서 승리해야 했다. 독일에게는 전차도, 보병을 수송할 기계화된 수단도 없었다. 그렇다고 병력에서 수적인 우위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독일은 5월 내내 병력을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6월 3일까지 마른 강에 도달했지만 프랑스 방어선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더하여 스페인 인플루엔자 전염병이 육군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강타해 많은 사람이 죽고 민간인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독일은 전투에서 계속되는 성공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승리를 잡지 못했다. 8월에 영국의 공격으로 시작한 전투는 9월까지 이어졌고, 독일의 방어선이 뚫린 곳은 없었지만 후퇴한 독일군의 사기는 떨어졌고,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음을 깨달았다. 9월, 독일의 루덴도르프가 휴전을 주장했다.


10월 20일 군사적 휴전에 대한 윌슨의 조건이 받아들여졌다. 독일은 윌슨의 조건을 수용함으로써 전쟁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속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폴란드에 영토를 내주어야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여전히 '적'으로 대우받을 것이라는 발상은 더더욱 떠올리지 못했다. 여태까지 가장 적은 짐을 지고 가장 조금 싸웠던 미국이 연합국과 적국 모두에 강화의 조건을 부과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내심 바라는 것이 있었지만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상만 남았을 뿐이었다.

휴전 혹은 종전 선언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투가 계속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미국 내 윌슨의 입지가 무너졌고, 독일 또한 오스만제국, 합스부르크제국 등 동맹국들이 무너지면서 마찬가지 입장에 처해졌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서는 체코슬라바키아와 헝가리가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면서 체코인, 남슬라브인, 폴라드인, 루마니아인들은 연합국에 들어갔다. 독일 내부에서도 혁명이 확산되고 있었다. 독일은 이제 패배가 문제가 아니라 혁명을 막기 위해서 전쟁을 끝내야만 했다. 11월 11일, 휴전 협정이 이루어졌다.


1919년 1월 18일 파리에서 강화회의가 열렸다. 전승국들은 각자 전쟁 동안 쌓인 원한에 대한 보상을 통해 자기 나라의 이익을 챙기기를 바랐다. 안보, 배상, 정의까지 모든 것이 얽혀있었고, 각 국가들은 원하는 형태로 보상을 받고자 했다. 독일은 독일 황제가 제거되고 전투가 종료되면 독일이 평화를 사랑하는 민주적인 국가로 받아들여지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독일은 안보 문제에 있어서 무장해제되었으나 파리강화회의에서 해결한 독일의 국경은 사실상 독일에게 유리했다. 합스부르크제국이 사라진 후 독일계 오스트리아인들은 독일에 편입되기를 원했지만, 프랑스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 금지 조항이 조약에 명문화 되었고, 창설을 앞둔 국제 연맹의 동의가 있어야만 병합이 가능했다. 다만 독일은 한 명의 오스트리아인을 얻었는데, 그가 아돌프 히틀러다.


1919년 6월 18일, 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인류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

일단 전대미문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물질적인 파괴가 있었지만 오히려 전쟁으로 인한 새로운 산업이 탄생하면서 대부분의 나라들이 1923년 부터는 전쟁 전의 생산량을 넘어섰다. 경제적 자원이 너무 많이 촉진되어 과잉생산이 인류의 커다란 문제가 되었다. 유럽의 생활 수준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높았다. 사실상 전쟁에 의해 심각한 타격을 입은 대상은 인간의 마음이었다.


유럽에는 사유 재산과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었고, 왕국보다 공화국이 많아졌으며 제국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전승국은 전쟁을 해결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독일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합스부르크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신민들이 민족적 자유를 얻었고, 벨기에가 해방되었으며, 독일의 유럽 지배를 늦추었다. 저자는 제1차 세계대전은 치른 대가는 분명히 과도했지만 오히려 대부분의 전쟁보다 결과가 좋았다고 평한다.


흥미로웠던 몇 가지 사실 중 하나는 전쟁 중 독일의 경제 시스템을 관장해 독일이 전쟁을 수행하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유대계 자본가인 발터 라테나우라는 점이다. 수십 년 후 독일계 아리아인들이 유대민족을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보면, 인간사 참 알 수 없는 일이지싶다.


다른 하나는 터키(오스만 제국)의 합리적이지 못한 참전이었다. 독일 편으로 참전한 터키는 이 전쟁에서 얻을 것이 없었다. 전쟁에 참여해야할만큼 절박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작해야 지난 한 세기 동안 러시아와 영국이 번갈아 윗사람 노릇을 하는데 진절머리가 났다는 게 그 이유였다. 터키는 한겨울에 보급도 없이 수행된 전투에 10만 병력을 코카서스로 보냈고, 그중 7만 명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군인 조프르, 전쟁에서 무능력한 리더를 만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의 새삼 깨달았다. 그런데 이 부분은 물리적인 파괴가 있는 전쟁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듯 싶다.


상처 뿐인 승리.

확실한 명분도 없이 시작했고, 허울 뿐인 승리만 남았으며, 그나마 자치국으로 독립한 나라가 있었지만 희생이 너무 컸던, 도대체 왜 시작했는지 아무도 설명해 줄 수 없는 제1차 세계대전.


정의와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평화를 깨뜨리는 전쟁을 일으키는 아이러니.

평화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영화 속 어벤저스들처럼, 정의를 명분으로 하는 폭력은 정당한가!

그리고 그것은 누구에 의한 명분이며, 누구를 위한 정의와 평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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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소설이다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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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서른아홉 살 유명작가 플로라 콘웨이의 세 살 난 딸 캐리가 2010년 4월 12일에 아파트 안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도중에 실종됐다. 플로라는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고, CCTV를 확인한 결과 경찰은 플로라를 캐리 실종의 용의자로 의심한다.

캐리의 실종 사건은 사회면의 가십 거리가 되었고, 플로라의 집이 있는 랭카스터 빌딩 아래에는 기자들이 장신진을 치고 있었다. 언론의 무차별한 의혹 제기와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악의적인 기사, 네티즌들이 수사대가 되어 유포하는 가설들은 잔인하고 가혹했다. 여러 의혹들이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사실처럼 퍼져나갔다. 캐리의 실종은 저열한 사이비 저널리스트들에게는 오락거리에 불과했고, 메이저 언론사들에게는 상업적인 이익일 뿐이었다. 거기에 플로라의 작품을 출판하는 데에 있어 동반자와도 같은 팡틴은 캐리를 잃은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해야 한다고 부추기며 플로라에게 만년필 한 자루를 선물한다. 던힐 나미키 만년필이었다.

팡틴이 다녀간 다음날, 캐리의 수사를 담당하는 루텔리 형사가 찾아와 팡틴이 찾아간 <더 라이터 숍>이라는 상점의 특색을 말하며 팡틴이 상점으로부터 건네받은 상품 목록을 보여준다. 목록에는 팡틴이 선물한 만년필 ㅡ 버지니아 울프가 실제로 <올랜도>를 집필했을 당시 사용한 펜, 그리고 첨부된 마술 잉크 ㅡ 뿐만 아니라 유명 작가의 각종 물품과 플로라의 딸 캐리가 신던 실내화까지 있었다. 가게 주인 웨이탄 보가트는 사기꾼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 사이 플로라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팡틴이 놓고 간 잉크로 글을 쓰면, 눈앞에 글대로 나타났다가 꿈에서 깨듯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때마침 루텔리 형사가 분석을 의뢰하기 위해 가져갔던 만년필의 잉크에서 피가 검출되었으며 그 피가 캐리의 혈액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플로라에게 전한다.

루텔리 형사의 말에 온몸이 찢기는 듯한 현기증을 느끼던 플로라는 문득, 현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사전에 이미 쓰여져 있다는, 누군가가 자신을 제어하고 있다는, 그리고 자신의 집에 유폐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플로라는 조종당하고 있는 것일까?


□  □  □



알민에게 한눈에 반해 결혼했지만 그녀가 유리하게 이혼을 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조작한 증거물로 인해 가정폭력 가해자가 되어 파경을 맞고 양육권까지 빼앗긴 소설가 로맹 오조르스키. 그는 함께 일하는 편집자 재스퍼와 정진과 의사 라파엘의 조언대로 픽션과 현실의 세계를 구분하고자 현재 집필 중인 소설에 직접 등장하기로 한다. 로맹은 픽션 속 뉴욕으로 뛰어들었고, 또 다른 그는 파리에서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소설 속 플로라를 만나고 온 후 양육권 문제를 담판 짓겠다고 작정한 로맹은 알민을 찾아간다. 조만간 애인과 함께 아들을 데리고 미국의 생태 오두막에 들어가 살겠다는 알민에게 아들 테오를 두고 가라고 설득하지만 소득이 없자 로맹은 문득 플로라를 떠올리며 다시 픽션 속 뉴욕으로 향한다. 그런데 플로라는 로맹을 불러들이기 위해 자살 소동을 부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중이었다. 그녀와 아이에 대한 감정을 공유하는 사이 알민으로부터 전화가 오고 잠에서 깨어나듯 알민을 찾아나선 로맹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보트에 쓰러져 있는 그녀를 발견한다. 이대로 놔두면 알민은 사망한다. 순간 로맹의 머릿속에는 양육권 문제가 스쳐가고 이를 기회삼아 차로 돌아와 보니 플로라가 앉아 있다. 소설 속에 있어야 할 그녀가 어떻게 현실 세계 속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일까? 플로라가 자신에게 알민을 구하라고 재촉하자 갈등하던 로맹은 선택을 그녀에게 던진다. 로맹이 알민을 방치하고 떠나게 놔두면 캐리를 되찾게 될 것이고, 반대로 알민을 구하기 위해 구급차를 부를 경우 캐리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플로라는 어떤 선택을 할까? 플로라에게 이러한 악의적인 선택지를 던져준 로맹에 의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그리고 캐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소설의 마지막에 드러나는 플로라 콘웨이와 그녀가 쓴 소설의 실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설정들이 낯설지 않다. 열아홉 권의 소설을 발표하고 작품마다 성공을 거두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로맹 오조르스키는 기욤 뮈소, 작가 본인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름에서 전달되는 것처럼 로맹은 한 사람에게 두 번 수여하지 않는다는 콩쿠르 상을 가명으로 두 번 수상한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를 연상시킨다. 이렇듯 소설에서는 우리가 오랫동안 만나왔던 작가들과 작품들이 사이사이 등장하기도 하고 연상되기도 한다. 픽션 세계와 현실 세계의 인물이 서로의 공간을 오가며 존재한다는 판타지적 요소는 작가의 기존 작품에서도 보아왔던 장치들이라 익숙하다. 워낙 독특한 구성을 해왔던 작가이니만큼 스냅 사진처럼 엮여진 장치들이 꽤 익숙하다.

이 소설이 정작 흥미로웠던 부분은 등장인물의 정서적인 부분이었다.

로맹과 로맹이 창조해 낸 인물 플로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의 배우자는 양육에 관심이 없고, 어떤 형태로든 아이와 이별하며, 편집자에게 소설을 쓰라고 재촉 당한다. 무엇보다 SNS와 상업적 이익과 자극적인 가십에 집중하는 매체들에게 폭력적으로 시달린다. 그와중에 로맹이 플로라를 찾아가 그녀의 작품을 지독하게 혹평하는데, 결과적으로 플로라가 소설 속에서 쓴 작품도 따지고 보면 로맹 본인이 쓴 글이지 않은가. 결국 자신을 등장인물에게 투영함으로써 스스로 갖는 작가적 한계와 작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고민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감정을 공유한다는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소설 전체에는 작가가 갖는 여러 고민들이 눈에 띈다. 직업상 미디어에 끊임없이 노출되어야 하는 고통, 마감에 맞춰 글을 써야하는 강요와 창작의 고뇌, 그리고 자신의 작품 안에서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어 모든 것을 책임지어야 하는 압박 등 작가가 짊어져야하는 무게가 느껴진다.

픽션 세계에서 여전히 삶을 이어가는 플로라처럼, 그리고 현실과 픽션의 모호한 경계에서 혼란스러워했던 로맹처럼, 우리는 수시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내고 있다. 우리가 운명의 고약한 장난질을 버텨내며 견디는 것이삶을 지속시키기 위함이 아니면 무엇이랴. 삶으로 돌아오려는 선택의 매순간들이 곧 인생이고, 소설이지 않겠는가.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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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로 산다는 것 - 워킹푸어의 시대, 우리가 짓고 싶은 세계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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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각에 늘 긴장하는만큼 기대도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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