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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분량이 꽤 되는 책을 한 권 읽고나면 나른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130쪽에 불과한 이 책을 읽고 기분좋은 나른함을 느낀다.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작가는 우리에게 왜 독서를 하는지, 그리고 독서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물으면서 글을 시작한다. 학업과 복종에 의한 의무적인 독서에 즐거움과 기쁨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에서 읽혀지기를 거부당한 책은 책장에 꽂혀 장식되어 있는, 가구와 다를 바 없다. 독서의 빈부격차. 한쪽에서는 지나치다 싶게 읽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혀 읽지 않는다. 읽는다 하더라도 읽는 것에 급급해 자신을 돌아볼 새도 없이 다음 책을 들추기에 바빠 체화할 여유가 없다. 책을 덮고 잠깐, 책의 뿌리에 가닿는 독서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 책을 읽을 시간도, 글을 쓸 시간도, 사랑을 할 시간도 없이 늘 바쁘고, 그래서 피로를 달고 산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경력과 실력을 쌓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쌓아야할까? 목표는 있지만 목적이 없는 삶은 고단하다. 고단한 삶에 사랑을, 시를 위한 기다림은 없다. 살고자 이토록 애를 쓰는데, 정작 삶이 없다.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한다지만 입시 앞에서 부모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 다그치고 아이는 납득이 되지 않는 폭력적인 학습량에 지쳐간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 가는 길이 정작 지금의 행복에서 멀게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미래를 담보한 오늘을, 하루하루 빗금을 쳐가며 버텨낸다.
몸과 지식은 성장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와 혜안은 성장하지 못한 채 시간을 채워서 어른이 되어버렸다. 준비없이 어른이 되어 다음 세대 역시 준비없이 어른이 되도록 방치한다. 어른의 부재.
시인은 학교와 감옥과 공장과 병원이 같다고 말한다. 반드시 규칙을 지켜야 하고 상급자의 명령에 복종하며 일방적 지시에 따라야 한다. 이러한 수직적 관계에서 공감이 형성되기란 어렵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가 비단 이곳뿐일까. 현대인에게 있어 손익을 따지지 않는 순수한 관계란 거의 없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감정소모를 불러온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를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자신 역시 이해와 공감을 받지 못한다. 상실과 결핍의 경험이 없는 위선은 위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이러한 결핍을 자각하고, 이입하고, 공감해야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
독서와 글쓰기에서 시작한 글은 혼란하고 고된 삶에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인지를 담담하게 써내려갔다(오히려 읽고 있는 내가 더 격해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어쩌면 살면서 가장 어려울지 모르는, 중용을 바탕으로 하는 소박함이다. 진실한 내면과 마주하고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삶의 방식은 사실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이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뿌리없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시인이 쓴 문장처럼 우리, 사랑하듯 책도 읽어보고 침묵 속으로 침잠해 보자. 그리고 자신을 좀... 해방시켜 주자.
그야말로 '어른'과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대화하듯 책을 읽었다. 가장 먼저 배워야할 것은 나 자신이라 것. 그래서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깊게 들어왔다. 모든 이들의 삶이 다행스럽기를, 그래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바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