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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유혹하는 예술가 - 시대를 앞선 발상으로 아르누보 예술을 이끈 선구자의 생애와 작품
로잘린드 오르미스턴 지음, 김경애 옮김 / 씨네21북스 / 2021년 10월
평점 :
체코 출신의 알폰스 무하는 오늘날 아르누보의 창시자이자 순수미술과 상업주의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체코 미술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역사화 연작 <슬라브 서사시>를 비롯해 상업 광고 포스터와 장식(상업) 예술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활동한 예술가다. 1860년 체코 서부 보헤미안의 작은 마을 이반치체에서 태어나 20여년간 파리에서 작품 활동을 한 후 프라하에서숨을 거둔 무하의 삶은 그야말로 '무하 스타일'로 대변한다. 그리고 어린시절 고향 모라비아의 통제권을 장악하려는 투쟁을 목격하면서 정서적으로 모라비아 전통문화와 슬라브 애국주의, 종교 활동에 몰두하게 된다. 이러한 성향은 후일 <슬라스 서사시>를 그리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

기어다니면서부터 목에 연필을 걸고 다녔다는 무하는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보이는 것은 캔버스요, 손에 잡히는 것이 그림 도구였으며, 할머니가 그의 선천적 재능을 지지했다고 하니 그는 화가가 될 운명이었던가 보다. 학교 수업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해 학교를 떠난 무하가 아버지의 도움으로 간신히 사무직 공무원으로 일하게 되었으나 열아홉 살에 지방법원을 그만두고, 우스티 나트 오를리치에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푼돈을 받았는데, 무하는 그 시기에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비록 한때일지언정 살면서 그러한 경험이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무하를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운명을 믿었던 무하는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공부할 기회가 생겼고, 후원 덕분에 불족함 없이 미술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다. 스물아홉 살 되는 해, 후원자는 배움에만 치중하고 있는 무하를 자극하기 위해 후원을 중단했고, 이로인해 그는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돈 걱정 없는 학생에서 가난한 예술가로 추락한 처지가 되었다. 삽화 의뢰로 기본적인 생활비를 해결한 무하는 친구들의 도움과 마담 샬롯과의 만남으로 인맥을 확장해갔고, 이는 그에게 새로운 시작점이 되었다.
1891년 3월, 아르맹 콜랭 출판사를 통해 무하의 삽화가 본격적으로 파리에 등장한다. 학계와 대중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으면서 로리외가 인쇄한 달력의 석판화 시리즈를 그리는데, 12개 별자리 삽화는 르네상스에 초점을 두고 풍부한 우화적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이 발간된 후 각계 및 일반 대중에게 널리 보급되는데, 이로써 무하는 삽화가로 탄탄한 입지를 다지게 됨과 동시에 '무하 스타일'을 각인시킨다. 이후 포스터 삽화를 시작으로 다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한 무하의 명성은 점점 높아졌고 '무하 스타일'은 그 자체로 브랜드명이 됐다.

1890년대는 색 재현의 발전으로 소비자 대상 출판물이 크게 증가했고, 아르누보 스타일에 대한 대중의 관심 덕분에 예술가들이 만든 석판 인쇄물이 대중적인 출판물 자주 등장했다. 다색 석판인쇄 분야가 발전하면서 포스터 재생산은 광고 등 대중매체의 주요 형태가 되었고, 이로인해 예술가에 대한 대중 인식의 폭을 넓힐수 있었다. 이 즈음에 무하가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무하의 감각과 시대가 잘 맞아떨어진 것도 어떤 면에서는 운도 따랐다는 생각이 든다.
포스터를 비롯한 무하의 작품들을 보면 단순히 아름답다거나 화려하게 그려낸 것이 아니라 작품의 성격이나 용도에 따라, 인물에 대한 상징적인 것들, 그리고 그의 재치와 위트, 센스가 그림 안에서 드러난다. 예를 들어 1896년 <동백꽃 여인> 포스터의 경우 여주인공의 연약함, 슬픔, 아픔을 인물 뿐만이 아니라 포스터 상단에 가시로 뒤엉킨 두 개의 심장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이 포스터는 배우 사라 베르나르가 무척 아끼는 작품 중 하나라고 한다). 무하의 포스터를 보면 예술을 상업성에 제대로 접목시켰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무하가 추구하는 상징주의와 신비주의 등이 그의 그림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공연 포스터는 말할 것도 없고 샴페인, 제과, 식품, 담배 등 상품 홍보 및 포장용 그림, 달력, 엽서 등 다양한 소모품들이 예술로서의 가치를 안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진한 빨간색, 금색, 갈색을 주로 사용하는 그의 그림은 화려함과 고풍스러움을 모두 보여주는데, 언뜻 그의 화려함은 클림트를 연상시키곤하지만 클림트의 그림보다는 명암이 짙고 친근함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사라 베르나르의 50세 생일에 그린 기념 포스터가 그렇다.

저자는 무하가 운명을 믿었다고 했는데, 그의 생애를 따라가다보니 그가 믿은 건 자기 자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해냈고,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았다. 공산정권의 억압에서도 무하의 작품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이 투쟁했다는 사실과 현재에도 체코 곳곳에 '무하 스타일'이 존재하고 있음은 이런저런 논란과 관계없이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방증한다.
이 책 최고의 장점은 알폰스 무하의 작품과 작품 세계,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 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무하의 전성기가 시작되는 1893년부터 1903년까지 한 작품 한 작품, 마치 도슨트의 해설을 들으며 그림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알폰스 무하를 애정하는 독자라면 더할나위 없는 책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지극히 사적인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