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 91년 5월투쟁과 김은국의 《순교자》로 본 정치.죽음.진실
강정인 지음 / 책세상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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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정치. 죽음. 진실 -1991년 5월 투쟁을 중심으로.

2장   신없는 세계에서의 진리/진실 - 김은국의 <순교자>분석을 중심으로

3장   미국의 반전 영화는 과연 '반전'적인가?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1장에서는 정치에 있어서 죽음이 어떠한 역할을 했으며, 왜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지를 말한다. 2장에서는 소설 '순교자'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종교와

현실의 진리/진실, 그리고 정치적 관계등을 이야기한다. 3장에서는 미국에서 제작된 반전

영화들이 과연 인류애를 동반한 진정한 반전 영화인지를 살펴본다.


[정리]


1장

한국에서 군부 독재가 저지른 가장 커다란 죄악은 인간 생명의 경시와 부정, 곧 죽음이다.

이는 타살은 몰론이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한 강요된 '자살'을 포함한다.

p50

한 개인이 정치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할 떄, 그는 '공동체가 과연 자신의 목숨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민주적 정부의 지도자들은, 그

정부가 특정 계급이나 집단이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통치하는 정부가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스스로 통치에 관여하는 정부이며, 따라서 구성원들이 목숨 바쳐 지킬 가치가 있는 구성원들 자신의 정부라고 역설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므로 이 정치 지도자들의 연설은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보편적 이상을 천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몰 병사들의 사기를  앙양하고자 한 것으로,

단순한 응변술 이상의 의미를 띠고 있었다.

과거든 현대든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지는, 협의로든 광의로든, 사실상 엘리트에게 독점돼 있다.

이 엘리트들은 통상적 일상생활의 제약과 조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별도의 활동이 아니

더라도 정치에 참여하기가 수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는 일상적 삶과 정치적 삶이 선거와 같은 상징적, 의례적 행위에 참여할 때를 제외하고는 분리되어 있다. 이에.

P57

보통의 사람들이 엘리트 계급을 설득하는데 실패했을 때,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참됨을 타인은 몰론 자신에게도 납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위해 기꺼이 죽는 것이다. (...) 우리는 종종 단순한 삶을 위해 참된 삶을 포기하기도 하지만, 참된 삶을 위해 단순한 삶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기도 하는 것이다. (...) 그런데 참된 삶을 위해서 죽는다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참된 삶의 필요조건이 단순한 삶이 없어진 마당에 참된 삶을 추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닌가? 이러한 딜레마를 타개하는 방법중 하는 타인(또는 공동체)의 참된 삶(또는 생존)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이다. (...) 인간의 참된 삶이 개체로서의 삶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안전 및 복지와 연결된 것임을 직시한다. (...) 적어도 참된 삶은 '나의 삶의 위해머에

내맡기더라도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는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는'정치적 죽음'은 정치권력이 죽음에 직접적으로 개입되었다는 점, '사회적 죽음'은 산재

사고로 노동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경우를 말한다.

P70

사회적 죽음은 통상 사회 구조 자체의 근본적 모순을 드러내지만, 그 사회 구조가 전반적으로 용인되는 상황에서는, 별도의 정치적 대책을 강구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정치하 과정을 밟지 못한채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기체를 통해 우발적인 '불행한 사태' 또는 당장 개선이 어려운 '불가피한 사태'러 치부되고 일간지 회면을 짧게 장식한 채 사사회되어버리는 것이다.

P71

강경대 사건이 궁극적으로 불법 폭력 시이에서 비롯된 것이며 일부 전경의 감정적인 과잉 진압에 의해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임을 강조함으로써 강경대의 죽음을 탈정치화하려 했다. 공권력에 의한 시위 참가자의 타살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 많은 국민들이 공권력 자체를 일상적 삶을 근본적으로 위혐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P72

명색이 '민주 국가'인 나라에서 국민들이 정치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일상적 방법의 하나인 시위 참가가 죽음을 불사해야 하는 모험이 된다면, 이는 민주 국가에서의 일상적 삶이 위협 받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는 거짓과 불의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누적되어 왔다. '정의로운 삶'이 '참된 삶'이라는 진리/진실을 죽음으롴써 증명하고자 했던 이들과 그 가족들이 감당해야 했던 부조리한 현실은 아직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청산'의 핵심은 그 많은 죽음을

둘서싼 진실을 밝히고 그에 상응하는 정의를 실현하는데 있다.


2장

p171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가 함쳐지는 오직 그떄에야 비로소 질리/진실과 정치의 갈등은 어느 일방을 희생시키지 않고 화해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3장

흥행에 성공한 미국의 반정영화들은 대부분 적대국가에게 가해진 말할 수 없는 인적, 물적 피해는 물론이고 무차별 서민 살상과 강간 같은 범죄 행위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약소국인

그들이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에도 불구하고 왜 목숨을 걸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불사했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하지도, 묻지도 않는다.

p192

미국의 반전 영화는 전쟁 동기의 타당성이 아닌 수행 방식의 타당성에 의거해 저쟁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전쟁 방식을 제한하는 움직임도 상대방의 피해는 고려하지 않고

'우리의 피해'만을 고려한 결과로, 집단 이기주의를 드러낼 뿐이다.

p193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민의 대다수가 반정 여론에 동조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베트남 정쟁이 자신들의 '고귀한 아들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었지, 제국주의적 전쟁이자 베트남 

인민 다수의 의사에 반하는 전쟁이고, 화학무기나 대대적인 공습을 통해서 베트남의 생태계와

생활 기반을 회복 불능 수준으로 파괴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미국의 반전 여론은 모든 생명의 고귀함과 인류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의 생명의 고귀함에 있을 뿐이다. 만약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이 모든 생명의 존엄함과 인류애에 기반한 것이라면 이라크 전쟁을 열렬히 지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사의 흐름을 객과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우호국이라는 명분 아래 강대국의 시야에 갇힌 상황만을 파악한다면 우리는 그저 상국을 모시는 속국이 될 뿐이다.

역사 속에 주체적인 국가가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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