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0
임레 케르테스 지음, 유진일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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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헝가리 유대인 소년의 시각에서 출발한다. '노란 별'을 달고 다니는 열네 살 소년 죄르지 쾨베시가 일자리를 준다는 말에 속아 반강제적으로 기차에 실려 아우슈비츠, 차이츠, 부헨발트 수용소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1년의 여정을 담았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본문의 분량이 300쪽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에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 기억의 고통이 너무 커서? 그러나 소년 죄르지는 독자에게 고통을 애써 호소하지 않는다. 


유대인의 다름은 본질적인 내면에 있는가, 아니면 겉에 달고 다니는 '노란 별'에 있는가. 그리고 왜 다름으로 인해 험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무의식 중에 자기점검을 불러오는 반복되는 미움과 소외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열네 살 소년을 따라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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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의 구조나 일련의 규칙, 반복되는 일상과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수용소의 분위기, 강제노동과 구타와 배고픔으로 피폐해진 몸과 정신, 구차하고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더 살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그곳의 사람과 소회 들을 담담하게 적어내려간다. 이 소설에 이입하게 되는 이유는 가혹한 수용소의 참상에 대한 고발이 아닌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한 인생과 한 인간으로서의 본질에 대한 고찰, 주인공이 갖는 강한 생명력과 희망이다. 그래서 읽었던 페이지를 되돌아가 두 번 읽게 되더라.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렸던 부분이 있는데, 죄르지가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직후의 장면이다(죄르지는 아우슈비츠에서 삼일 간 머물렀다). 독일군 장교의 군복이 멋있어 보이고, 새벽 사이렌 소리에도 침착함과 냉정함을 잃지 않는 독일군에 대한 호감과 존경심이 생기며, 무엇보다 큰 목욕탕이 있는 것에 기뻐한다. 곧장 건강 검진을 하는 이유가 징병이나 업무 적합도 검사라고 생각하고, 줄무늬 죄수복을 입은 자들을 호기심과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너무 천진해서 슬프다.  


기차에서 내리는 소년에게 황급히 나이를 올려말하라는 유대인 죄수의 충고가 아니었다면, 공부를 하게 해준다는 유혹에 넘어가 자기의 나이를 솔직하게 말했다면, 죄르지는 곧장 가스실로 보내졌을 것이다. 별 거 아닌 것 같은 스쳐지나가는 이의 작은 호의와 한순간의 선택만으로도 삶의 길이 바뀔 수 있음을 새삼 느낀다. 그가 반대편의 선택을 했다면, 어쩌면 이 소설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테고.  


홀로코스트 문학을 이미 많이 읽은 독자라도 한 번은 읽어보기를 권한다. 여타의 책들과 다른 지점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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