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시대의 종말
비비언 고닉 지음, 홍한별 옮김 / 엘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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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에세이다. 
원서 초판 출간이 30년 전임을 감안해도 거의 괴리감없이 읽힌다. 


19세기부터 20세기에 나온 문학작품과 작가들 속으로 깊이 들어가 삶과 사랑, 자아와 정체성, 결혼과 가정, 수동과 저항, 인간 관계에 대해 섬세하게 짚어낸다.







 
자아와 현실의 간극이 너무 컸던 클러버 애덤스. 통찰에 이르지 못한 채 그저 각성에 머물고 만 케이트 쇼팽. 작가로서 자기의 삶을 정당화하기 위해 분투했던 진 리스.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에게 사랑을 초월한 자아를 확립하기를 바랐던 윌라 캐더. 자기성찰을 하지 않았기에 신념적으로 대척점에 있었던 연인 하이데거에게 저항할 수 없었던 한나 아렌트. 평범한 가정생활의 살인적인 본질을 포착하고 상황과 인물에 거리를 두지 않는 극단성을 보여주는 크리스티나 스테드. 대부분의 남녀들이 갈망만 할 뿐 수동적 존재로 남아 있음을 지적하는 그레이스 페일리.  


사랑과 희망을 믿고 싶은 갈망이 있는, 그런 면에서 감상적인 레이먼드 카버의 글. 평범한 남자에게 닥쳐오는 삶에 대해 쓴 리처드 포드. 삶의 조건을 투명하게 묘사하면서도 거의 자의식적으로 그것을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듯보이는 안드레이 더뷰스.


헨리 제임스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몇 편의 소설을 읽었을 때 저자가 쓴 부분에 대해 비슷하게 느꼈던 지점이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나아가고 , 세상으로부터 뒷걸음질 치고, 세상을 욕망하고, 세상을 두려워하는 (p86)' 양가적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는 당시 여성 인물들을 남성 작가가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았었다. 더하여 동성 친족 간의 과도한 친밀감이 무자비하다는 작가의 생각에 공감한다.   


책의 마지막에 위치한 「연애소설의 종말」은 앞선 글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오래 전, 에마 보바리, 안나 카레니나는 남편을 떠나 도망쳤을 때 정말로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나 현대의 사랑은 위험을 무릎쓰고 무언가를 걸어야할만큼의 그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인생에 있어서 필수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사랑을 함으로써 달라질 거라는 기대는 여전하다. 그러나 오늘날, 사랑이 자신을 구원해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임을 말한다. 사랑해서 한 결혼이 물리적.정서적으로 만족을 느끼지 못하면 슬픔, 분노, 혼란을 느끼며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결혼이 구원이 되지 못할 때, 지옥이 된다. 


과거 소설은 사랑이라는 소재를 통해 독자를 심연으로 깊이 끌어들였다. 사랑 하나만으로도 여러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독자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었다. 사랑이 전부였던 시대의 소설가는 사랑을 이용해 진정한 통찰의 빛을 끝까지 탐구했다. 비비언 고닉은 오늘날에는 이런 책이 쓰일 수 없다고 쓴다. 오늘날 소설의 중심에 낭만적 사랑을 놓고 인물들이 사랑을 추구하다 무언가 거대한 것에 도달한다고 하면, 독자를 설득할 수 있는가에 의문을 둔다. 이제는 사랑을 은유로 사용하는 것은 발견의 행위가 아니라 향수에서 비롯된 행위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저자의 글에서 '왜 세상이 예전같지 않냐는 질문보다는 왜 삶이 이토록 공허한지(p182)'에 관해 사유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모든 책을 출간하는 즉시 읽을 수는 없지만 언제가 됐든 꼭 읽는 에세이스트가 있다. 리베카 솔닛, 올리비아 랭, 비비언 고닉이다. 
근래에 읽은 책 중 밑줄을 가장 많이 그었고, 따로 발췌할 필요 없이 전체적으로 작가의 통찰에 이입해서 읽었다. 
당연히, 노골적으로, 추천한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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