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평점 :
이 책은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작가의 삶 전반에 대해, 2부는 정신병동에 입원했던 시기, 3부는 퇴원 이후와 정신질환을 앓던 예술가 및 페미니즘 작가 들에 대한 탐구 그리고 정신질환자로서 살아가는 삶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그중에서 저자가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던 4년여를 구체적으로 서술한 2부가 기억에 남는다.

유년 시절,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은 수잰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책 전체에서 직.간접적으로 언급하는 이 부분이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특히 난치병으로 고통에 빠진 채 자신이 죽어가는 것에 대한 절망적인 엄마의 그 표정이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엄마의 죽음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생긴 트라우마로 인해 거식증이 생긴다. 절대 떠나지 않겠다던 엄마는 결국 이런 방식으로 수잰의 곁에 남은 셈이 됐다.
수잰은 자기 감정의 깊이를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으리라는 것, 자기를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 너무나 멀리 외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자기를 미치게 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수잰은 거의 평생을, 자신을 압도하는 외로움을 무서워했다. 필요한 시기에 보살핌과 사랑이 부재했고, 그걸 받는 방법을 몰랐던 그의 유일한 버팀목은 작가와 그들의 글이었다.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 그리고 평생에 걸쳐 수잰은 뒤라스, 실비아 플라스, 토니 모리슨, 샬럿 퍼킨스 길먼, 조앤 디디온 등의 글들에 의지했다.
ㅡ
'나'라는 존재, 결함, 애착, 훈련, 엄마의 죽음과 그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 상처 파헤치기, 새어머니의 정서적 학대, 숱한 질문과 대답, 악화, 투쟁, 여성 등 그의 삶에 따라다녔던 어휘와 문학 들, 그가 겪어왔던 많은 일들이 가진 의미. 그리고 그 모든 의미를 통틀어 수잰이 확신하는 것은 독서와 글쓰기는 그의 삶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수잰을 바뀌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선택, 살겠다는 그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자살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그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수잰은 단기적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면서도 자살하지 않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리고, 친구와 지인 들을 관찰했다.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늘 인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읽고 쓰며 독서 안에서 항상 가르침을 찾았다. 그는 현대 (정신) 의학에서 인문학을 도려냄으로써상실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정체성'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개인의 정체성은 누가 부여하는 것이며(혹은 사회 시스템이 지정해 놓은 테두리에 임의로 갇히는 것에 대한 의견), 정체성은 선택 가능한가(혹은 타인에 의해 부여된 정체성을 거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읽으면서 나에 대한 정체성을 써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여된 정체성들, 그리고 선택했지만 이제는 거부하고 싶은 정체성들에 대해서도 정리해 보았다. 이런 경험적 쓰기가 생각을 정리하는 데 무척 도움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책을 덮고 든 생각은, 삶에 있어서 무의미한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굳이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내 삶의 흔적으로써 저절로 하나의 의미가 되어가는 것들이 있더라는. 저자가 가졌던 외로움의 깊이. 어쩌면 그도, 나도 외로움조차 인생의 의미로, 흔적으로 남아 있으리라.
※ 도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