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패배자 - 한 권으로 읽는 인간 패배의 역사, 20주년 기념 개정판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는 약 서른여 명의 인물들을 다루는데, 그들이 '패배자'가 된 요인을, 그들 개인적 성향이나 환경,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들을 서술하며 하나하나 짚는다. 신화, 종교, 예술, 정치(혁명), 과학(기술), 문학 등 여러 분야의 인물들을 통해 본 패배와 실패. 경쟁자, 인민, 대중, 시대, 운명, 사랑 등에 패배한 사람도 있고, 겸손하지 못해 혹은 고집스럽거나 신념이 강해서 혹은 어리석음 때문에 스스로 제 발목을 잡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안타깝게도 너무나 이른 나이에 절정을 맞고 젊은 나이에 요절함으로써 죽음에 패배한 이들도 있다. 그리고 반복되는 패배에도 굴하지 않는 자들과 죽은 뒤에야 비로소 인정받은 자들도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밀고 나가 승리를 원했지만 결국 자신의 꿈을 접거나 혹은 비극적으로 혹은 억울하게 무릎을 꿇어야했던 이들. 물론 책에서 언급하는 인물들의 패배는 각기 다른 형태를 띠고 있고, 그 원인도 저마다 다르다.  


20년만에 출간한 개정판을 읽으면서 지금, 2025년이기에 새삼 눈여겨 읽게 된 세 사람이 있다. 고르바초프와 앨 고어(보다는 조지 부시)와 크누트 함순. 고르바초프가 제국의 붕괴를 촉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소련 주민들을 포함해서 전 세계인들의 끔찍한 유혈 사태를 피할 수 있었던 당시와는 다른 현재 러시아 지도자.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현재 미국 대통령을 통해 본,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에 던지는 민주주의의 공정성에 대한 가치와 세계정신, 그리고 그에 대한 이해. 또한 종전 이후 히틀러와 나치를 예찬했던 스스로에 대해 말을 교묘하게 왜곡하며 자기합리화로 변명하는 함순과 현재 한국의 보수(라고 해야하나?) 세력들.  




 



승자와 패배자의 서사는 대단한 업적을 이룬 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지구는 좌절의 별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종種'으로서 인간은 무수한 진화를 거친 승자이지만, 개인으로서 인간은 대체로 실패와 좌절에 가깝다. 승자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학력이 높아지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도 높아지며, 이는 인간을 무한경쟁 시장으로 이끈다.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는 여전히 존재하건만 사회가, 정치가 입만 열만 나오는 말은 기회균등이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실패를 반복하는 데에 있어 이 책임이 마치 온전히 개인의 능력 부족이라는 듯 말하며 열등감, 자책감, 자괴감을 부추긴다. 그런가하면 본인도 알지 못하는 재능을 사장당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주변 환경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자신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알아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   


저자가 말하는 좋은 패배자란 느긋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패배하고 느긋하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돈 키호테가 되기도 어렵고. 이 책의 인물들 전부가 실패를 현명하게 극복한 건 아니다. 그들의 삶을 따라가면서 패배 이후의 삶은 결국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지나온 이들의 삶을 읽는 것이 때로는 어떤 지침서나 철학서보다 와닿는다. 그럼에도 때로는 소설보다 더 비극적인 현실이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다. 


오랜만에 읽은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가는 세상 이야기, 즐거웠다. 




※ 도서지원_위대한 패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