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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세고 촛불 불기 ㅣ 바통 8
김화진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6월
평점 :
기념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날이 언제인가?
저마다 가장 가슴에 박힌 기념일 하나쯤은 있을 터다. 그날이 기쁜 날일 수도 있고, 고통이나 애도의 날일 수도 있고. 여덟 개의 이야기가 실린 소설집은 저마다 특별한 '그날'을 담고 있다.

(축제의 친구들)
생각하는 게 귀찮고, 사는 건 지루하고,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모든 게 뚜렷하지 않은 청춘의 시절. 누군가 좋아해주는, 익숙하고 습관적이지 않은 삶을 살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그런 삶을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과학기술로 안드로이드 보디를 갖게 된 인간은 노화와 질병에서 해방됐다. 단, 안드로이드 보디를 구매할 수 없는 사람은 죽는다. 죽는 사람은 두 부류다. 돈이 없거나 신념이 있거나.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죽음에 관한 책들과 그에 대한 철학적 견해. 나는 문득 궁금하다. 우리는 왜 이토록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걸까. 죽음이 두려워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는 김윤호의 모순. 그는 구차한 삶과 아무도 모르는 죽음 중 무엇을 선택할까.
(월드 발레 데이)
형편이 넉넉넉하지 않은 집에서 무용에 재능 있는 아이는 엄마의 등골을 빼먹으며 성장했다. 아이가 더 높이 날아갈수록 엄마는 점점 가난해졌다. 이를 모르지 않는 아이는 아주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고생하는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그만두라는 말이 나올까 두려워 긴장을 놓지 않았고 곤두서 있다. 자신을 잃어가면서,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성공을 향해 달린 삶. 정상에 섰음에도 밟을 땅이 없는 삶. 이게 소설 속 '나'가 죽은 이유고, 실재의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위드걸스)
실패로 인해 적당히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불행한 사람이 될까봐 원인을 찾아 문제해결을 하기보다는 견디는 것을 택하는 것. 견디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으려나. 구원에 기대지 않고 어제로 되돌아가지 않으며 살아남겠다는 인혜의 결의가 장하면서도 안타깝다. 유리 천장과 보이지 않는 경계에 또다시 좌절하는 일이 없기를, 인혜도, 선주도, 그 누구도.
(껍질?)
분명 바빠서 무언가를 많이 했고, 하루가 끝나면 무척 고단한데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기분은 어떘지 물으면 할 말이 없다. 거의 비슷한 대답들. 사람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그날의 기분도 다 달랐을텐데... . 참 이상한 일이다. 언제부턴가 일기에 쓰는 나의 감정은 거기서 거기.
(바다의 기분)
폐업한 가게 업주가 「맛없는 음식을 팔아서 죄송합니다, 실력을 키워서 되돌아오겠습니다」라고 쓴 폐업 안내 종이 위에 '저는 맛있게 먹었어요'라고 쓰는 마음씀이 좋다. "그냥 그런갑다"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 좋네, 좋아. 역시, 나는 윤성희 작가의 글이 참 좋다.
(비트와 모모)
박완서 선생의 「대범한 밥상」이 생각났다. 모모가 돌아와 주기를, 그래서 식탁에 마주앉아 비트와 식사하기를.
(0302♡)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받는 방법을 찾는다면, 먼저 사랑을 줍시다.
각각의 소설 속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마음이 간다.
로롯의 생체 인식이 아니면 아무도 생존을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단절,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출세지향주의 세태, 자존감은 고사하고 움츠러들대로 움츠러들어 자신에게 처해진 불의와 차별조차 당연하게 여기는 패배주의, 사랑과 관심에 굶주린 우리들.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슬픔이다. 소설 밖에서 그들을 따라가자니 그냥 슬펐다. 그러다 낙관적인 삼촌의 마음이 되고 싶었고, 그 마음으로 위로해주고 싶었다.
※ 도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