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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5년 1월
평점 :
중단편 소설 여덟 작품이 실린 소설집이다.
실린 소설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적인 키워드는 생존, 소통, 상실, 존재의 의미.
각각의 소설들은 외롭고 비통하다. 「영생불사 연구소」처럼 유머 속에서 고달픈 삶의 애환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녀를 만나다」에서 120살 여성을 통해 열악한 노동 환경과 폭력적인 세태에 유쾌하게 일침을 가하지만, 대체로(사실 앞서 언급한 두 작품 역시) 상실의 고통을 담고 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지속될 영생불사의 꿈, 그리고 더하여 생의 길이만큼 늘어날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서글픔.
간절하게 비생물 지성체와 상호소통하고 싶은 화자는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나는 왜 생존하려하는가.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 더 생각해 볼 것은 314가 끊임없이 물어보는 유토피아 지수에 '나'만이 아닌 '너'도 포함되어 있는가. 기계의 사유는 갈수록 일방적으로 흐르는 우리의 모습에 경종을 울린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노화하고 사망하는, 인간이라면 누구가 거치는 과정인 한 생애. 이를 모르는 이는 없지만 우리는 질병과 노화가 두렵고, 죽음은 더 두렵기 마련이다. 제 집에서 죽을 자유조차 박탈 당하는 노화와 질병. 「One More Kiss, Dear」는 이 책의 처음에 실린 「영생불사 연구소」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외롭고 고달픈 영생을 살 것인가, 유한한 삶을 살 것인가. 그리고 우리 사회는 노화를 어떤 시선을 바라보아야 할까.
극으로 치닫는 양극화 현상, 차별과 혐오가 부른 죽음을 이야기하는 120살 할머니의 삶은 투쟁, 그 자체다. 특히 이 소설은 변희수 하사를 애도하며 그녀가 바랐던 세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뭉클해진다.
가정폭력의 참혹한 결과. 가정 파탄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 이래도 가정폭력이 그저 '가정사'일뿐인가.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많은 식물들이 단일화 되어가거나 유전자 조작 재배종으로 대체되어가는 것에 대한 일침. 더하여 유전자 조작에 의한 단일종으로 구성된 집단이 식물을 넘어서 인간에게도 적용될 섬뜩한 미래 사회. 동물의 장기를 대체하는 연구가 계속되고 있고, 유전자 복제는 물론이며 우열 유전자를 가려낸 임신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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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비극적인 작품은 「여행의 끝」이다. 전염병으로 유일한 친구를 해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병病'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설정이 지나치게 극단적일 수 있겠으나 지금의 세태를 떠올려보면 생명체가 생명체를 함부로 죽이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이른 현 세태는 그야말로 '병'에 걸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마지막 소설에서 작가가 희망을 배치한 이유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그 자체로서 희망이 될 수 있기를.
※ 도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