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의 편지교실
미시마 유키오 지음, 최혜수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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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에 출간한 소설이다. (내가 알기로는.)
작가는 다섯 명의 등장인물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사랑과 일상에 대해 얘기한다. 통속적인 사랑부터 동성 간의 호기심,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대상을 향한 동경, 우정, 사랑과 우정 사이의 단정할 수 없는 감정, 변심한 연인에 대한 배반감과 증오와 복수심, 비루한 일상에 대한 고백, 중년의 외로움과 성적 욕구, 청춘의 불안과 방황, 결혼에 대한 진지함, 가정을 이룬다는 것의 의미, 인생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등이 담겨 있다.  
 
 






45세 기혼 남성 야마 도비오는 20대 젊은 여성과의 육체적 관계를 갈망하는데 자신이 유부남임을 공공연하게 밝히는 것은 물론 접근하는 이유가 단순한 성적 욕구 때문임을 숨기지 않으면서 오히려 자신의 이러한 행동이 뭐가 잘못된 것이냐고 반문한다. 그야말로 능구렁이같은 양반이다. 
젊은이들의 인생 상담에 기꺼이 응하는 고리 마마코의 대담한 반전.
스무 살이라는 나이가 딱 어울리는 발랄하고 천진한 가라 미쓰코는 남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진지함과 신중함을 갖추었다.
미래지향적이며 성실한 삶을 살고 있는 청년 호노오 다케루는 매사 지나치다 싶을 만큼 논리적이고 진지하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입장을 자신의 관점에서만 판단하는 경향이 있고, 현실과 동떨어진 엉뚱한 생각을 하는 공상가 청년 마루 도라이치는 사춘기 소년같다(이름이 하필이면!).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쓴 편지의 내용이 때로는 어처구니가 없거나 우습고 가벼워 보일지라도 발신자의 마음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건 사실이다. 다른 편지들에서는 철딱서니 없어보였던 가라 미쓰코가 호노오 다케루의 청혼 편지에 대한 답장에 결혼과 자신의 삶에 대해 신중한 답장을 보낸다. 만약 편지가 아니었다면 그녀가 그토록 진지하고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뻔뻔함과 찌질함을 오가는 그들의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1990년대의 정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사이가 좋든 나쁘든, 그 대상이 누군든, 당시에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편지만한 것이 없었다(고딩 대딩 때 참 많이 썼더랬다).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은 글이 대신했고, 혹여 오해가 있지 않을까 단어를 고르고 고르며 썼던 편지는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2025년, 21세기를 지나고 있는 지금이라면 이런 편지글이 가당키나 하겠냐만... . 편지글은 고사하고 이메일조차 쓰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메시지도 조사와 모음을 다 떼어놓고 자음만으로 대화하는 세상(물론 한국의 경우다)에서 이런 구구절절한 마음을 표현하는 건 이제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참 아쉬운 일이다.  


​어긋난 사랑의 작대기와 (독자가 읽기에) 유쾌하고 소소한 반전들.
미시마 유키오가 이런 감성의 소설을 썼다는 것도 의외고, 이 유쾌함 뒤에 오는 씁쓸함과 스산함이 있는 건, 또 미시마 유키오답기도 하고.  


그동안 작가의 소설이 무겁게 느껴져 부담스러웠던 독자라면 적어도 그에 대한 부분은 내려놓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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