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미의 기적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33
장 주네 지음, 박형섭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12월
평점 :
작가 장 주네는 자신을 소설의 1인칭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1946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장 주네의 서른한 살, 즉 그가 실제로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1942년)을 현재로 두고 서술한다. 과거 소년 시절에 지냈던 감화원에서부터 중앙 형무소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추억하며 얘기하는데 십오 년 전과 현재를 형식에 구애없이 넘나드는, 마치 회고록같은 소설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에는 메트레 감화원과 아르카몬, 뷜캉, 디베르가 있다.

화자 '나'가 상테 형무소에서 퐁트브로 형무소로 이감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그가 열다섯 살 나이에 메트레 감화원에 있을 때 퐁트브로 형무소는 소년 시절의 꿈을 키워주는 성역과 다름없었다. 그가 꾸는 최후의 꿈은 퐁트브로 형무소, 그곳에 닿아있었다.
소설 도입부, '나'는 죄수들을 이송 및 수감하는 과정을 마치 종교 의식처럼 묘사한다. 사형수 아르카몬을 숭배하며 간수를 하인으로, 감옥 곳곳에 켜진 불빛을 축제로 그린다. 또한 자신이 호송되어 온 쇠창살이 달린 객차를 장엄한 공간으로 받아들인다. 독자는 소설을 읽어갈수록 그가 이러한 심경에 이른 이유와 원인을 알아간다. 특히 9쪽부터 10쪽에 걸친 서술은 독자가 볼 때 앞으로 서술하게 될 '나'를 포함한 '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대목이다.
ㅡ
소설의 역설이 주는 묘미는 상당하다. 많은 형무소들이 과거 수도원이었다는 점은 물론이고, 범죄자라고 일컫는 이들을 표현하는 문구도 그렇고,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열망하는 동시에 아름다움이 갖는 허망함과 회의懷疑를 토로하는 것 또한 그렇다.
이 작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형태의 탐미소설이자 자아의 존재를 확인해나가는 소설이다. 작가가 예찬하는 아름다움과 그가 추구하는 존재에 대한 증명의 과정 역시 조금 남다르다.
화자 장 주네가 숭배하는 삶은 정의와 도덕, 사회적 규범과는 거리가 멀다. 소설의 배경인 퐁트브로 형무소는 바깥 세상과 단절된 '내부' 공간이지만, 그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법과 규범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외부'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상을 규정하는 잣대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차이가 있다. 일례로 화자를 비롯해 그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은 어린 시절부터 감화원에서 형무소에 이르기까지 고립된 남성 집단에서만 생활해왔다. 따라서 그들에게 성(性)을 인식하고, 성에 대한 직.간접 경험치는 동성뿐이다.
제목의 '기적'. 왜 '기적'일까? 세상은 감화원생들이 변화를 통해 신의 기적을 증명하는 존재들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의지할 데 없었던 그들에게 감화원은 그들 세계의 전부였고, 다른 삶을 경험해 보지 못한 소년과 감화원 밖 사람들이 바람하는 기적에 대한 성격은 매우 달랐으며, 기적이 실현할 아름다움 역시 상이했다. 그리고 외부자(감화원 밖 사람들)들이 '옳지 않다'고 하는 것들은 그들이 살아온 환경을 놓고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수치스럽고 천하고 죄스럽고 혐오스러운 과거일 수 있겠으나 화자는 이 경험을 글로 알림으로써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장벽을 뛰어넘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유를 찾고자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다리는 것은 자기 파괴와 죽음뿐일테니.
ㅡ
위에서 언급했듯 작가는 역설적 서술을 통해 인류사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부정과 비리, 왜곡된 정의, 그리고 집단 이기와 폭력에 대해 비판하고, 인류가 과거의 숱한 오류를 거쳐오면서 이룩한 가치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되짚어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읽는 내내 내가 느꼈던 주네의 정서는 '연민'이었다. 사랑했던 청년은 탈주 중에 총살을 당했고, 숭배하던 또 다른 이는 스스로 죽음에 이르기 위해 간수를 죽여 사형 당했다. 온갖 수치와 성폭행을 당하고, 혹은 도망치다 붙잡혀 징벌을 당할 때 '나'가 기댄 것은 시詩였다. 가장 낮은 자들을 향해 그가 보내는 존엄과 연민, 이것이 장 주네가 이 소설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바가 아니었을까.
사실 내가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잘 모르겠다.
누군가의 해설보다는 장 주네, 그가 하는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다.
작가의 말을 직접 듣고 싶어진 소설은 수년만이다.
가능하지 않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지만.
※ 도서지원
그들은 암흑같은 광명 혹은 눈부신 밤이다. - P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