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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미술관 - 다정한 철학자가 들려주는 그림과 인생 이야기
이진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평점 :
이 책은 「다시 바라볼 것들」 「크게 바라볼 것들」 「함께 바라볼 것들」 등 세 개의 파트로 나눠 열한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몸에 대한 글과 그림을 시작으로 그림을 통해 반사 반영 수렴이라는 인생의 과정, 자본주의적 무한경쟁 시스템 하에서 계급화.계층화를 거쳐 권력으로 자리잡은 미美와 젊음, 하찮은 일들의 소중함, 비록 크게 드러나지도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언정 하찮음이 쌓여 이룬 일상이 주는 위대함 등 이외에도 뻔히 안다고 여기면서도 이 틀에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비난도 비판도 아닌 공감과 이해의 말들로 짚어간다.
보이는 몸이 아닌 기능하는 몸, 몸을 쓰는 것으로서 찾는 삶의 희열.
위의 두 화두는, 한때는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듯 했지만, 근래에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가장 뜨거운 화제가 아닐까싶다. 우리의 몸은 기능하는 몸인가? 몸을 쓰면서 삶의 희열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가. 우스갯말로 '패션 근육'이라는 용어가 있다. 그야말로 '보이는 몸'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날씬해지기 위해 내장은 손상되고 근력은 퇴화하는 몸. 근육을 만들겠다고 헬스장은 열심히 다니지만 정작 가까운 거리도 걷지 않은 아이러니. 남에게 과시하는 용도를 제외하면 그 몸은 대체 어디에 쓰일까.
지독할 정도로 여성에게 씌어진 부정적 언어들. 마녀, 마귀, 귀신 등 굳이 성별을 언급하지 않아도 이 단어들을 연상하면 따라오는 건 여성형이다. 소복입은 귀신을 생각할 때 남성을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지금도 성폭력 사건에서 주홍글씨를 안고 사는 이들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천사도 여성형(혹은 아이)이 더 많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겠지만, 천사는 그야말로 한없이 착(해야)하고 신의 말을 잘 듣는 존재들이다.
뭐든 짧은 것에 길들여지는 요즘 세태, 백 년에 가까운 생을 살면서 우리는 오히려 점점 쉽고 빠른 것만 찾는다. AI가 등장할 무렵만해도 단순 노동은 기계가, 창의의 독특함을 요하는 분야는 인간의 몫으로 남으리라 장담했다. 그러나 현재, 이러한 예상은 정반대로 향해 가고 있다. 자기가 해석한 정보까지 데이타로 받아들이는 AI의 오류를 변별하지 못하고(못한다기보다는 변별하기를 귀찮아하는 것에 더 가까운), 십대와 이십대를 오로지 성적에 쏟아부은 게 무색할 정도로 데이터를 입력하는 단순 업무자로 살아가게 될 처지에 놓였음에도 더 쉽고 빠르게만 외치는 인간의 미래에 서사라고 할 만한 게 남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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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이 미술을 매개로 한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서문에서 밝힌다. 그러나 그보다는 부제, '다정한 철학자가 들려주는 그림과 인생 이야기'에 더 가까운 글들이다. 여성을 이야기하지만 여성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살면서 체험하고 느끼고 공감해온 우리 모두에 대해 쓴 글이다.
저자는 앞과 뒤, 겉과 속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간과하는 '면'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어쩌면 이 책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들이 보이지 않는 혹은 보려하지 않는 '면'과 '공간'에 다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긴 서사의 지루함을 견디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과 계층적 틀을 허문 타자의 슬픔과 하찮음을 측은지심으로 들여다보며, 동시에 우리가 추구하고 도달하려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우리가 우려하는 많은 것들의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덧글.
성폭력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만들어버린 메두사 신화와 미국 화가 주디 타카흐스가 2018년 메두사를 그려 발표한 작품에 <Me(dusa) too> 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대목은 무척 흥미롭고 의미심장하다. 또한 루치아노 가르바티의 조각상 <페르세우스의 머리를 든 메두사>는 같은 맥락에서 신선하다. 특히 전혀 기뻐하지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는 조각상 메두사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 도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