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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의 방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90
제임스 볼드윈 지음, 김지현(아밀)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6월
평점 :
소설은 동성애가 범죄이자 지독한 혐오의 대상이었던 시절, 미국인 청년 데이비드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기까지의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십대 때부터 자신의 정 성체성에 당황하면서 그 성향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이를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해 부정하고 혼란스러워한 데이비드는 도피하듯 떠나 온 파리에서 이탈리아 청년 조반니를 우연히 알게 되고, 그와 동거를 시작한다.
1956년에 출판된 이 소설에 등장한 인물들(대부분 남성)에 대한 묘사는 조금 모호하다. 자크의 동성애 성향은 소설 중반에 이르러서야 명확하게 드러나고, 조반니를 '꽃뱀'으로 취급하는 기욤은 당연히(?) 남성이라고 생각했는데 후반부에 그를 향해 '할망구'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 역시 이중적 의미를 두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는데, 이처럼 작가는 소설 속 인물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명확하게 구분 짓지 않는 것으로 읽힌다.
인물들 간 갈등의 원인은 대체로 데이비드의 혼란과 서로에게 원하는 바가 다르다는 데에 있다.
데이비드는 조반니와 사귀면서도 끊임없이 스스로의 성 체성을 거부하고 있었고, 조반니는 데이비드가 자기와 만나면서도 그가 동성애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조반니는 데이비드가 자신을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 주리라 기대하지만, 데이비드는 조반니의 현실적인 희망과 열망에 부흥할 처지가 못 된다. 조반니의 짐작과는 달리 데이비드는 경제적인 능력이 거의 없다(아버지가 보내 준 돈으로 생활하고, 그마저도 아버지가 송금을 끊어 자크에게 돈을 빌리는 처지다). 심지어 일도 하지 않아서 조반니가 바텐더로 일하는 급여가 그들 수입의 전부다. 그럼에도 조반니는 데이비드에게 큰 기대를 건다.
무엇보다 여행을 떠났던 연인 헬라가 돌아오자 데이비드는 곧바로 조반니를 떠난다. 데이비드가 헬라를 사랑하느냐, 글쎄, 사랑하려고 노력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데이비드에게 있어서 헬라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거부하고 남성성을 확인시켜 줄 수단에 가깝다(소설에서 페미니스트로 보여지는 헬라의 변화 역시 의미있게 다가온다). 어쩌면 데이비드는 조반니를 만나는 순간, 꾹꾹 눌러왔던 성 정체성이 발현됐음을 깨달았기에 그 두려움에 서둘러 도망치듯 헬라에게 향했을 터다.
조반니와 헤어진 이후 어느날 거리에서 지나가는 해군 군인이 자신을 경멸하는 시선으로 쳐다봤다고 생각하는 데이비드는 자신의 어떤 모습을 보고 그가 그런 시선을 던졌는지 당황해한다. 그러다가 문득 그 군인이 자신에게서 본 것은 질투심과 욕망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데이비드 역시 자신을 향한 자크의 눈에서 그 감정을 종종 보았고, 그때마다 자신이 취한 행동이 군인과 다르지 않았음을 떠올린다. 즉 자크가 자신을 바라본 시선으로, 데이비드가 그 군인을 무의식적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데이비드가 타고난 성 정체성에서 도망가려고 할수록 그는 타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계속 확인하게 된다.
소설 후반부, 데이비드에게 남겨진 것은 죄책감과 두려움, 고독뿐이다.
조반니와 헬라. 그가 사랑했던 두 사람에게 상처와 고통만 남겨준 셈이 됐다. 조반니가 죽어가는 그 시각, 마침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이비드의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소설에서 '조반니의 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조반니의 방은 데이비드가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자신을 거리낌없이 드러낼 수 있는 장소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성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그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떠나지 않으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감옥'에 갇히는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러한 양가적 감정에, 동시에 발을 디디고 있는 데이비드는 애초에 조반니와의 만남에 있어서 시작부터 끝을 예견해 놓고 있었음에도 심정적으로 떠나지도 남지도 못한다. '조반니의 방'은 데이비드에게 있어서 해방이자 동시에 감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데이비드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에게 성 정체성을 애써 숨기려하지 말고 본능이 이끄는대로 조반니를 사랑해도 된다고 말했던 자크의 조언을 받아들였다면 데이비드와 조반니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조반니의 방'에서 나오고 싶었던 사람은 사실 데이비드보다 조반니가 아니었을지.
이때까지 읽어왔던 퀴어 소설들보다는 좀더 현실적으로 접근한 소설이다. 위에서 썼듯 독자는 데이비드의 혼란을 통해 성소수자들의 고민을 조금이나마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을 독자도 한 번쯤 생각해본다면 '이해와 존중'의 필요성에 좀더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도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