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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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상업용 콘텐츠 감수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이 소설은 분명 허구이며 등장인물과 그들의 경험은 창작의 산물이라고 쓰면서도 전 세계 상업용 콘텐츠 감수자들의 근무 환경을 다방면에서 조사했음을 밝히며 소설의 내용이 현실과 유사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썼다. 






 
일단 등장인물들의 근무 환경을 보자. 
미디어 플랫폼 헥사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휴식 시간은 하루에 두 번, 그것도 화장실만 다녀와도 그 시간이 끝날 정도로 짧다. 하루에 500개 이상의 '위반 게시물'을 처리하지 못하면 호되게 곤욕을 치르고, 책상 앞을 잠시라도 떠날 때면 타이머가 작동한다. 그리고 게시물의 삭제 여부 결정의 정확도가 90퍼센트 이하가 계속되면 해고 조치를 당한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케일리는 헥사에 근무하기 전에 콜센터에서 고객 서비스 대응 업무를 맡았었는데, 근무 환경만 보면 유사점이 있다. 콜센터 업무 시간 및 강도에 비해 급여는 적었고, 업무 시작과 동시에 타이머가 작동했으며, 전화 대응 목표치와 8.5점이라는 고객 만족도 평균치를 달성해야 했다. 그 와중에 고객의 과한 요구와 온갖 욕설 및 억지까지 감당해야 했다. 여기에 응대를 잘못해 고객의 빈정이 상하가리도 하면 고객 만족도 점수는 추락한다. 결정적인 차이와 심각성은 따로 있다. 


그들이 감수하는 영상물의 내용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글로 쓰여 있는 것을 읽는 것만으로도 거부감이 드는데, 이것을 영상으로 하루에 수백 개씩 봐야한다면 정서적으로 견디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헥사 영상 감수 직원들은 업무상 PTSD를 겪고 있다. 불면증, 악몽, 각인, 착각, 우울증, 강박, 불안에 시달리고 이를 잠재우기 위해 과음 및 흡연은 더 증가한다. 또한 타자를 혐오하는 것에 무감각해져가고, 세상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진다. 그보다 더한 심각성은 유해 게실물을 판별해야할 감수자들이 온라인에서 떠도는 거짓 영상과 가짜 뉴스를 믿으며 성격도 극단적으로 바뀌어 간다.  



소설의 마지막 반전은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전한다. 
케일리가 털어놓는 이야기를 우려의 마음으로 읽고 있는 독자들이 생각해 볼 것은 그들의 고된 노동과 착취뿐 아니라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삭제 게시물 수위에 준하는 동영상이 불법적으로 돌아다니고 있으며, 성인은 물론 청소년들까지 너무 손쉽게 시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해 동영상을 단시간 시청하더라도 그 영향이 크다고 주의를 준다. 하물며 업무상 수백개씩 영상을 시청할 수밖에 없는 감수자들의 고충은 그들 업무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가 없으면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무엇보다 이들이 근무하는 곳은 미디어 플랫폼 '기업'이다. 이들의 피해가 그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소설을 읽고나면, 정신없이 화면을 밀어내는 손가락을 보면서 케일리가 소설의 마지막에 그녀 자신에게 던진 질문을 우리 역시 스스로에게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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