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생트의 정원 문지 스펙트럼
앙리 보스코 지음, 정영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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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책을 펼치면 소설 시작부터 문장에 마음을 뺏긴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_스완네 집쪽으로>를 떠올리게 하는 문장은 그 이상으로 섬세하고 아름답다. 보리솔과 그 주변 경관의 소박하지만 수채화 같이 투명하고 평온한 시골 풍경을 아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조용하고 평화로운 작은 마을 아멜리에르에 대한 설명과 묘사 역시 당장에라도 가보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아름답게 묘사한다. 
 







소설은 신화 혹은 동화같은 이야기이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미스터리적인 측면도 있다. 사이사이 뜬금없이 등장하는 메제미랑드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과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련의 초자연적인 상황을 추적하는 그를 통해 껍데기만 남은 것같은 소녀 펠리시엔의 숨겨진 비밀, 그리고 그녀와 무관해보이지 않는 화자 메장의 꿈이 암시하는 바에 대해 환상적으로 서술한다.  


이 소설에서 시종일관 느껴지는 것은 땅과 자연의 생명력이다. 그리고 이 자연 속에서 고독으로 침잠하는 양치기 아르나비엘은 성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앎의 지혜와 오랜 경험과 깊은 숙고에 따른 심오한 감정으로 동물을 대하는 양치기들이 터득한 삶의 깨달음, 그리고 내면과의 대화를 음미하는 고독을 영유하며 겸손한 그들을 향한 순수한 존경, 동시에 현재는 이런 지혜의 전승자 명맥의 수가 적어지는 것에 표하는 작가의 안타까움이 메장을 통해 고스란이 드러난다.  


보리솔의 게르통 부부 역시 양치기와 같은 선상에 있다.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그들의 정원은 마치 낙원처럼 그려진다. 그런데 그들의 땅에 없는 것이 바로 '물'이다. 산간 지역인 보리솔은 이상하게 샘이 말라서 늘 물이 부족하다. 이러한 곳에 맡겨진 소녀가 펠리시엔이다. 집시 여인이 버리다시피 떠맡겨놓은 소녀는 마치 영혼이 없는 것처럼 무력하다. 보리솔의 '샘'과 소녀의 '영혼'은 무엇을 상징할까.  


소설의 결말만 놓고 보면 우리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건 사랑과 이타심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게르통 부부, 메장, 시도니, 그들 모두 펠리시엔을 아끼고 사랑했다. 그런데 왜 소녀의 영혼은 그들 사랑에 부응하지 않은 걸까? 그렇다면 아무 반응도 없는 소녀를 그들은 왜 사랑한 걸까? 메장이 생각하기에 그들의 관심과 걱정이 소녀에게 가닿지 않은 것이리라 짐작한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소녀의 진짜 이름을 몰랐기 때문이리라.  



소설은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환상적 측면이 더욱 두드러진다. 
작가는 탐욕스러운 마법사의 저주에 걸린 채 보리솔에 맡겨진 순간부터 펠리시엔이 원래 이름을 되찾는 과정에 동참했던 그들을 통해 우리가 사랑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로서 살아가야만함을 말하고자 했던 것 같다. 


책을 덮으면서 다시 살아날 보리솔이 눈앞에 그려진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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