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들 환상하는 여자들 2
브랜다 로사노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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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직접적 서술자인 기자 조엔과 그녀의 인터뷰이인 펠리시아나를 화자로 삼아 그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서술한다. 두 사람의 서술을 따라가다보면 오랜 시간 반복되어 온 여성(gender) 서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정폭력, 성 소수자 학대와 혐오, 여성 차별 및 강간과 살해, 데이트 폭력 등 등장인물들이 살아오면서 크고 작게 겪어온 일들이다. 그럼에도 그들 곁에는 그들을 존중하고 격려해주는 이들이 있었다. 펠리시아나는 치유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코스메 할아머지의 칭찬이었다. 할아버지는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사랑하고 존중했고, 팔로마는 항상 조언자를 자처했다. 조에 역시 엄마의 격려로 포기 하지 않고 성과를 이뤘고, 레안드라 또한 아버지의 신뢰와 기다림에 부응했다. 존경하는 혹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의 인정과 존중은 얼마나 든든하고 의지가 되는가.  


펠리시아나 아버지는 딸에게 버섯과 약초가 자라는 곳을 보여주면서 바로 이곳에 책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읽고 쓰는 법을 모른다. 펠리시아나는 자신은 미래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고, 점쟁이가 아니라고, 언어를 통해 현재를 본다고 말한다.  펠리시아나는 자신의 언어의 치유자라고 하지만 정작 그녀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


그렇다면 소설에서 끊임없이 반복하는 '언어'와 '책'은 무엇을 의미할까. 상대의 입장과 마음을 보고 듣고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진정성 있는 노력,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최소한 배려가 담긴 솔직한 말. 사심없는 축복과 조언과 위무가 '언어'라면, '책'은 그들이 개척한 역사의 흔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술자는 한 여자를 제대로 알려면 먼저 스스로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태어나고 성장한 나라가 다르고, 관습이나 정서도 다른 펠리시아나와 조에, 그리고 그들 자매의 삶의 궤적은 유사하다. 그들의 서사는 곧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여성(gender)의 역사를 대변한다.



소설에서 '마녀'는 생물학적 여성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성(sex)으로 규정받지 못해 '마녀'라는 이름으로조차 불리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집안 최초의 여자 치유자로서 고정관념과 혐오의 틀을 하나둘 깨며 앞으로 나아간 펠리시아나처럼, 지금도 그릇된 관습과 세상이 그어놓은 한계와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 계층의 편에서 공정사회의 길로 가기 위해, 폭력과 살해의 위험에서 살아남고 존중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서로에게 '언어'와 '펜pen' 되는 이 세상 모든 '마녀들'의 발걸음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사족
조에의 아버지, 참 좋은 사람이고 좋은 아버지다. 소설 말미에 레안드라가 학교에 불을 지른 이유와 굳이 그 시각에 방화를 저지른 이유가 밝혀지는데, 이에 대한 합의점을 도출하고 앞장서 나서준 아버지를 보면서 부녀가 참 멋있더라는(방화가 멋있다는 건 아니고). 아버지가 사십대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때 그들 가족의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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