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은 여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4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민음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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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었다! 


일단 평범한 연애관을 가진 나는 세 사람의 연애관을 납득하기가 어려운데, 그들의 관계를 일대일 연인에서 인간 관계로, 실존의 문제로 확장시키면 얘기는 달라진다.




  



 
프랑수아즈는 피에르와 자신을 '하나'라고 확신하고, 피에르는 프랑수아즈를 연인, 그 이상의 존재로 여긴다. 피에르에 대한 프랑수아즈의 신뢰는 각별하다. 그녀는 피에르가 자신에게 고통을 줄 리 없고, 두 사람 사이에서 서로 오해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다. 힘든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겠으나, 서로에 대한 이해로 극복할 것이라 철썩같이 믿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가 그들을 완벽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철옹성같은 관계에 끼어든 그자비에르. 사실 그녀가 끼어들었다기보다 싫다는 소녀를 어르고 달래며 억지로 파리로 불러올린 사람은 다름아닌 프랑수아즈다.  


그자비에르는 프랑수아즈가 만나온 사람들 중 가장 독특한 인물이다. 그자비에르는 딱히 관심이 있는 것도 없고,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계를 위해 타협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으며,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다면 안 살면 그만이라고 여긴다. 강렬한 느낌을 받는 것이야말로 인생이라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사는 삶은 인생이 아니라고 잘라말하는 소녀의 허세를 흥미롭게 받아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아마 이쯤에서 프랑수아즈가 그자비에르를 고향으로 돌려보냈다면 앞으로 일어날 사달은 벌어지지 않았을 터다(사실, 읽는 내내 프랑수아즈는 무엇 때문에 이 아이를 고집스럽게 데리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자비에르가 나타날 즈음, 피에르는 공연을 성공시켜야하다고 스스로를 압박하는 상황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아마 그래서 즉흥적이고 본능적이며 아름다움을 탐하고 이기적으로 관심과 사랑을 요구하는 그자비에르에게 빠져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프랑수아즈는 이런 두 사람을 보면서 태연한 척하며 피에르에게 그가 원한다면 그자비에르와 사랑에 빠져도 된다고 말한다. 애써 자신은 질투하고 있지 않으며, 이런 감정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또한 연연애하지 않으며 자유롭다고, 스스로를 다스린다. 그런데 그자비에르는 한 발 더 나아가 프랑수아즈와 삶의 방식과 인간 관계를 지적하며 자유가 없다고 비판하는데, 점점 선을 넘으며 프랑수아즈를 도발한다. 이걸 흥미롭다고해야 궁금하다고 해야 하나... . 프랑수아즈는 이렇게 감정이 기복이 심하고 흥분하면 되는대로 말을 내뱉는 그자비에르를 보면서 오히려 그녀의 열정에 도취되어 연륜이 쌓일수록 열정이 사그라드는 자신에게 스스로 굴욕감을 느낀다.  


이제 피에르는 프랑수아즈에게 관심이 없다. 신경이 온통 그자비에르에게 쏠려 있다. 피에르를 붙잡으려면 그자비에르를 받아들이고 피에르와 같이 그녀의 기분을 맞춰줘야한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그자비에르가 프랑수아즈 삶의 한 조각이었다면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여기서 가관은 피에르다. 한동안은 그자비에르에 대한 감정에 선을 긋는 척이라도 하더니 결국에는 프랑수아즈 앞에서 온갖 말을 늘어놓더니 그자비에르와 자신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하면서 프랑수아즈를 존중한답시고 피에르와 그자비에르는 그들 멋대로 그녀에게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하라고 강요한다.

 
ㅡ 


프랑수아즈가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일까?
즉흥적인 격렬한 감정에 가치를 두지 않으며 이에 휘둘리지 않는 사랑도 여전히 사랑일까. 상대를 내 영역 안에 가두고 지배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라고 말들 하지만, 누구도 연애할 때 양다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또한 유부남과 불륜 관계인 엘리자베트의 사랑을 제 잣대로 단정짓는 프랑수아즈 역시 자신의 사랑을 타자화하지 못한다.  


그자비에르는 노력보다는 타고난 재능과 영감이 우선한다고 말하면서 획일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기성 세대를 경멸하지만, 경멸하는 기성 세대의 후원을 받아 거의 무위도식하며 살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자비에르는 작가와 예술가는 자유로운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피에르와 프랑수아즈처럼 시간에 얽매야 살 줄 몰랐다면서 보들레르와 랭보를 제외하면 결국 예술가도 공무원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규칙적으로 일을 하고, 수면 시간을 고려하고, 매일 제 때 끼니를 챙기고, 시간을 내서 산책을 하는 것. 어쩌면 이 소설을 쓸 때 보부아르가 고민했던 딜레마가 이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프랑수아즈가 본인의 얼굴을 절대 보지 않는다는 그자비에르의 말에 생각에 잠긴 프랑수아즈는 스스로를 탐색한 적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무채색처럼 군중 속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 생각하면서 자신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그자비에르를 본다. 이처럼 여러 부분에서 그자비에르는 프랑수아즈를 각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2권으로 가면 현존과 실존에 대해 본격적으로 서술하고, 다른 한편으로 제르베르와 프랑수아즈의 관계가 피에르와 그자비에르의 관계와 대비된다.  


다음 얘기는 2권에서!  




※ 리딩투데이를 통한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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