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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것이 봄날 - 제1회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짧은 시 공모전 수상 작품집
성백광 외 지음, 김우현 그림, 나태주 해설 / 문학세계사 / 2024년 4월
평점 :
한국시인협회가 대한노인회와 함께 주최한 짧은 시 공모전에 입상 및 선정된 시 100편 모음집이다.
이 시집에 대해 처음 알았을 때 "응?"하며 인터넷 서점의 미리보기를 열었다. 첫 번째에 실려있는 대상을 수상한 4행의 짧은 시와 삽화를 보자마자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세 번째에 실린 <로맨스 그레이>를 읽으면서는 입이 꾹 다물어지고 눈이 뜨거워졌다. 유독 흥이 많고 예술적 기질이 남달랐던 욱이 씨가 아직 은섬 씨 곁에 있었다면 두 사람이 함께 복지관에서 춤을 추는 날이 있었을까, 라는 별 의미없는 궁금증이 일었다. 네 번째 시 <당신을 못 떠나는 이유>를 쓰신 김왕노 님이야말로 진정한 로맨티스트가 아닐런지. 그러다가 아흔세 살 김순중 님의 <중꺽마>에서 '써글...'에 빵 터져 한참을 웃었다. 세상에... 그 몇 분 사이에 나 혼자 미소 짓다가, 울컥했다가, 깔깔대며 오락가락했다. 시에서 이것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으랴.

시집에는 이제 노년에 접어든 60대부터 90대에 이르기까지 노년의 일상들을 만날 수 있다.
캠퍼스 커플에서 시작한 부부가 복지관 커플이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를 함께 견뎌왔을까. 치매를 완화하기 위한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아리송한 어느 할아버지의 한줄짜리 시는 웃프다. 자식에게 받은 용돈을 손자에게 건네는 조부모의 사랑, 같이 살아도 각방 살이에 고독한 노후, 신체활동에서 느껴지는 노구의 서글픈 현실, 이제는 좀 게으르게 살아도 된다고 나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안, 자식들은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고 이제는 할머니라고 불리는 나이에도 돌아가신 어머니의 손맛이 그립기만하다. 호랑이같던 아버지의 마지막 거처는 요양원, 오는 이 가는 이 없는 섬같은 외로움, 어머니보다 자기가 먼저 죽을까 걱정하는 딸의 나이는 일흔 살. 베스트프렌드가 따로 있으랴, 살아서 곁에 있는 이가 절친이다.
지극히 현실적이라서 더 와닿고, 아직 내가 경험하지 못한 감정이라 낭만적이기까지 한 시詩들이다. 노인의 굽은 등이 아름답다는 양명희 님의 시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해 노화를 멈추지 않는 이상, 순리대로 산다면 나 역시 언젠가는 노인이 될테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대가 달라졌다고해서 그들이 살았던 삶의 궤적과 나의 미래가 크게 다르다 생각치 않는다. 때로는 서러울 날이 있을테고, 고독하기도 할 것이고, 책임을 내려놓을 수 있어 홀가분하다 느낄지도 모르고, 늙어간다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이나 억울함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시들은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사는 거 힘들지. 그러나 살만 해! 라고 말해준다.
연륜은 무시할 수 없다.
이 촌철살인은 어쩜 좋아.
그리고 삽화가 너무 따뜻해.
※ 협찬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