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2세 열린책들 세계문학 287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박우수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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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불링브루크의 추방에서 시작해 리처드2세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 이 희곡은 사실상 1399년 여름부터 1400년 2월까지, 약 6개월 동안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작품에서는 아주 빠른 속도로 전개한다. 희곡에는 고트의 존과 리처드2세의 관계와 그들의 과거에 대한 전혀 설명이 없어서 지금의 독자는 배경 지식을 조금 알면 훨씬 더 맛있게 읽힐 것이다.




 
 



작품에서 셰익스피어는 리처드2세를 성급하고 방종하며, 허영과 사치, 욕망과 자기과시가 커 폭정을 일삼고 영국을 파국으로 이끌 사람으로 묘사한다. 심지어 극의 말미에서는 왕궁의 정원사조차 리처드왕과 그의 총신들을 낮잡아 무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면 반정을 일으키고 새로운 왕으로 추대되는 불링브루크에 대해서는 사뭇 다른 평가를 내린다.  


더구나 작가는 작품 속에서 리처드2세의 죽음을 두고 신하의 지나친 충성심에서 우러나온 사고에 불과한, 마치 헨리4세는 리처드왕의 죽음과 전혀 무관하다는듯 그리면서 그의 포용력이 넘치는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킨다. 셰익스피어가 글을 썼을 당시 참고한 사료 역시 승자의 기록임을 감안해도 작품 전반에 걸친 셰익스피어의 감정은 리처드2세보다는 헨리 4세에게 훨씬 더 호의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봐도 리처드2세가 훌륭한 왕이었다고 말하기에는 어렵다. 그렇다고해서 반정을 일으켜(그것도 사적인 사건을 계기로) 왕이 된 인물을 일방적으로 정의의 사도로 그려서는 안 될 일이겠으나 다만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실제 공연을 목적으로 둔 희곡이라는 점에서 인물의 극대화는 충분히 납득이 된다. 결국 역사에 대한 어떠한 판단을 할 때 정확한 근거와 앞뒤의 맥락을 짚어낼 힘이 필요한 건 후대인 우리가 갖춰야할 소양일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차치하고 극의 재미를 찾아보자면, 
불링브루크(헨리4세)는 리처드왕을 런던 탑으로 보내고 다음 수요일에 대관식을 거행하겠으니 준비하라고 지시한다. 희곡에서는 헨리4세가 리처드2세를 유폐시킬 장소로 일단 런던 탑으로 결정을 하다가 나중에 폼프릿 성으로 바꾸는데, 런던 탑을 현재의 규모로 확장한 사람이 리처드2세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실제로 폰트프랙트 성에서 사망한 리처드2세가 처음에는 런던 탑으로 보내질 계획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굳이 연극에 이 대목을 넣은 데에는 셰익스피어의 짓궂은 장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작품 속 왕비는 상당히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데 사실 리처드2세가 왕권을 잃었을 당시 그녀가 고작 열 살 남짓이었음을 감안하면 셰익스피어의 그려낸 <리처드2세>는 역사적 틀만 가져왔고, 인물에 대한 묘사는 허구적 요소가 꽤 많음을 짐작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여타 작품들처럼 이 희곡 역시 은유와 직유, 그리고 언어유희를  본문 곳곳에서 그려냄으로써 문학이 왜 언어 예술이라고 불리는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리처드 2세>와 <헨리 4세>가 비슷한 시기에 쓰였고, 셰익스피어가 헨리 4세에 훨씬 우호적이라는 점을 짐작해볼 때 두 작품을 나란히 읽으면 더욱 다이내믹한 독서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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