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아 I-II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1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존 인물인 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삶을 모티브로 한 두 편의 연작 소설이다.  


후원을 받아 독일의 미술학교로 유학 온 라스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 작가라고 자화자찬하지만 스승 한스 구데의 평가를 받는 것에 불안함을 느낀다. 미술학교에서 평가가 있는 날, 하숙방에서 쉽사리 나서지 못하는 라스의 모습에서 출발하는 소설은 시종일관 갈등과 혼란의 연속이다. 이는 그림뿐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여인 헬레네를 대하는 태도 역시 비슷하다. 집착의 대상인 동시에 확신과 불안의 사이에서 고뇌와 혼란을 반복한다.  






 
소설에서는 상징성을 띠는 소재들이 꽤 많이 등장한다. 
희고 검은 천, 보라색 코듀로이 양복, 종교, 말카스텐, 문門, 눈目, 빛, 그리고 헬레네. 라스와 그의 누이 올리네의 심리를 드러내는 이 장치들은 내용과 인물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 많은 부분을 차치한다.  


문구 자체에 이미 모순을 띤 희고 검은 천은 불안과 혼란에 직면했을 때와 이를 피하고 싶을 때 라스의 눈앞에 나타나고, 코듀로이 양복은 라스의 삶이 바뀌는 전환점이자 벗어나고 싶어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족쇄같은 존재다. 자신이 가난한 이방인 즉 비주류이자 아웃사이더를 상징하는 퀘이커교인임을 끊임없이 되뇌이는 라스는 모든 문들이 두려움의 대상이다. 주류의 공간인 말카스텐의 문턱도, 헬레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하숙집 대문도, 세상에 나아가기 위해 내딛어야하는 자신의 하숙방 방문도, 그에게는 그 어떤 산보다 높았을 것이다. 그래서 라스가 정신병원에서 행하는 자위 행위와 올리네가 마지막까지 참으려고 애썼던 배설은 그들이 억눌러야만했던 욕구를 대변한다.  



소설이  Ⅰ- Ⅱ 로 넘어가는 사이에 언뜻 보기에는 불필요해 보이는 비드메의 이야기가 짧게 서술된다. 
소설 속 작가 비드메는 욘 포세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로 읽힌다. 다른 한편으로는 비드메와 라스는 같은 연장선에 있다. 주류 종교 및 사회와 단절되었다가 다시 유대를 잇고 싶어하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헬레네와 마리아의 유사성이다. 마리아는 비드메에게 비스킷과 차를 대접하고 옷을 말려준 사람, 즉 곤경에 처하고 단절된 비드메에게 손을 내민 사람인데, 헬레네 역시 독일에서 라스에게 손을 내밀어준 유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마리아가 머무는 곳은 목사관으로서 그녀 자신의 소유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는데, 헬레네가 어머니와 삼촌의 영향력 아래에서 억압받는다고 여기는 라스는, 어쩌면 그녀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병원에서 라스의 유일한 바람이 헬레네를 데리고 고향 마을로 돌아가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고.   




그렇다면 작가는 라스의 삶에서 무엇을 보았고, 치매 노인 올리네의 삶 끝에서 그가 하고자했던 말은 무엇일까.
인간의 삶은 정도의 차이일뿐 늘 불안을 안고 살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혼란을 반복한다. 삶은 평온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죽음으로써 인생을 마무리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비로소 온전한 평안을 얻게 될 것이다.  



나는 헬레네를 데리고 고향으로 데려가고 싶다는 바람을 말하는 라스가 너무나도 애처로와 나도 모르게 울컥했고, 수치스러움을 느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힘겹게 하루를 보내고 모든 것을 쏟아낸 올리네를 애도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