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 알베르 카뮈 소설 전집 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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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서문부터 심상치 않다. 카뮈는 서문에서 이미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 밝히고 있다.

 
소설은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자를 상대로 화자의 혼잣말로 진행한다. 마치 연극의 방백처럼 화자는 정작 앞에 있는 상대가 그의 말을 듣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연극적으로 말을 이어간다. 자아도취, 자기 환멸과 합리화, 변명과 설득, 거짓과 허세, 자기애와 자기비하, 감정의 기복이 오락가락하는, 적잖이 과장된 화자의 모습은 소설의 한 장치가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화자 장바티스트 클라망스는 40대 남성 (전직)변호사다. 자신을 재판관 겸 참회자라고 소개하지만, 본명이 아니라고 밝힌 그의 명함에는 이름과 함께 직업이 '배우'라고 인쇄되어 있다.  


대화 상대자와의 첫만남에서 장바티스트는 자신을 '블초소생'이라고 칭하며 한껏 낮추어 겸손의 태도를 보이는데(원서는 어떻게 표현이 되어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앞서 서문에서 쓴 맥락ㅡ먼저 스스로를 낮추어 비판의 정당성을 갖는ㅡ과 같다. 또한 이는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자신을 고발함으로써 심판할 권리를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소설의 처음과 끝이 맞닿아 있다. 작가는 이 정당성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보여준다.  


장바티스트는 술집 주인에 대해 남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의심이 많아졌다고 평가하며 솔직 담백하던 술집 주인의 천성을 사회가 다소 변질시켰다고 말한다. 이렇듯 개인의 천성을 변질시키고, 의심과 경계를 부추기는 데에 있어서 그 기저에는 사회 집단이 있음을 언급한다. 작가는 이러한 사회 현상을 은연 중에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여타 전쟁 상황에 빗대고 있다. 그만큼 현대 사회의 폭력적인 경쟁과 관계에서 오는 불안감을 지적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현대 사회는 경쟁과 효율성으로 조직되어 있고, 이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혹은 효용성이 떨어지면 가차없이 조직에서 제외시키는 현상을 우스갯말로 에둘러 비판한다.  


그는 주로 과부와 고아 등 사회적 약자의 변론을 맡았고, 그 자신의 정의로움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타적이고 양심적인 자신의 생활태도와 미덕에 만족하고 그것으로써 자신을 정의한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예의바르고 너그러운 사람인지를 확인시켜주듯 줄줄 읊는다. 이것이 자신이 상위층임을 드러내는 그만의 방식이다. 선의를 행함으로써 충족되는, 그래서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는 우월감을 만끽한다.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을 '개미 같은 인간들'이라고 표현하는 그의 말이나 재판정을 무대라고 칭하며 법정에서 판사의 판결과는 무관한 자신의 변호 행위에만 치중하며 판사가 아닌 오히려 본인이 그들을 재판했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인간은 여러 관점에서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존재다. 도덕과 부도덕, 현실과 이상, 이기와 배려, 위선과 위악, 자유와 속박, 겸손과 허영 등 때로는 신에게 의탁하고 선을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삶이 더해질수록 죄악이 쌓여가는 아이러니한 현실.   


우정, 공감, 자각과 사유 등 무형의 가치가 사라지고, 타인의 비극을 단순한 구경거리로 치부하며, 획일적인 감정과 일관된 삶의 패턴을 강요(당)하면서 마치 배우인 양 보여주기식 삶과 평판에 기대어 살다가 결국 권태에 이르는 세태.  


카뮈는 어떤 계기에 의한 화자의 전락을 떠나서 산업, 과학기술, 문명의 발달과는 별개로 인간 그 자체로서는 서서히 지속적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장바티스트의 말처럼 '완전한 결백'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떤 사건(혹은 사고)가 발생함에 있어서 원인, 진행, 해결, 대안 및 예방의 과정 중에 대부분의 사람이 완벽하게 결백하기는 어렵다.  


비록 낯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의 죽음에 애도조차 하지 않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카뮈는 측은지심 한쪽 없는 우리들 모두가 '공범'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었을까.  


소설 마지막 문장인 클라망스의 빈정거림이 가슴에 콕 박히는 사람은 나뿐이려나. 




※ 출판사 지원도서

아이구 떨려... 물이 얼마나 차다고요! 그러나 안심하세요! 너무 늦었어요, 이젠. 언제나 너무 늦을 겁니다. 천만다행으로!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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