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덱스 - 지성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색인의 역사 Philos 시리즈 24
데니스 덩컨 지음, 배동근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얘기를 하면 별나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나는 두꺼운 백과사전의 '색인' 읽는 것을 좋아하고, 모르는 한자를 찾을 때면 지금도 앱보다는 옥편을 뒤적거리기를 더 선호한다. 그렇다보니 색인에 역사가 있다고 해서 나름 흥미와 기대를 갖고 책을 펼쳤다.  







이 책은 13세기 유럽의 수도원과 대학으로부터 21세기 실리콘밸리 기업에 이르기까지 색인이 밟아 온 경로를 기록하고, 색인이 독서 생태계의 변화들에 어떤 식으로 대응해 왔는지의 과정과 그런 변화의 지점에서 독자와 독서 자체가 어떤 식으로 변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색인의 종류에는 용어 색인(콘코던스), 주제 색인, 보편 색인, 풍자적 색인이 있다. 용어 색인은 원문에 충성스러운 색인, 주제 색인은 원문과 독자 사이에서 그 충성도를 적절히 배분하는 색인이다. 두 색인 모두 중세의 동일한 시점에 대두되었는데, 주제 색인이 영향력을 키웠다면, 대조적으로 용어 색인은 19세기라 끝날 무렵까지도 전문가들의 도구로만 쓰이다가 오늘날 컴퓨터의 출현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상적인 색인은 책이 어떤 방식으로 읽힐지, 그것이 어떤 식으로 이용될지 미리 예측한다고 썼다.  


색인의 역사를 다뤘지만 중세까지 다룬 내용에는 색인뿐 아니라 일부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어서 아주 흥미롭다. 색인은 2000년 전에 등장했다. 기원전 3세기 무렵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알파벳 24개 자모를 동원해 배열한 것을 시작으로 시리아 북쪽의 고대도시 우가리트에서 발견된 점토판들을 통해 기원전 8세기 중엽에 그곳에서 알파벳 철자에 순서를 매기는 방식이 정착된 사실, 로마인에게 '인덱스'라는 각각의 두루마리에 다는 이름표 등 시대를 거치며 변화를 가졌고, 알파벳 순서를 이용하는 것으로서 한차원 높은 지적 도약을 이뤘다.  


ㅡ 


색인이 독서 도구로 이용된 것은 13세기에 들어서이다. 독서 과정을 능률화하기 위함이었고 책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색인이 필요해질만큼 책을 빨리 읽어야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주로 책은 수도사들이 읽었고, 그들은 느릿하게 책을 읽고 명상했다. 그러다 12세기에 들어서면서 백성들 사이에서 공부하고 복음을 전하며 설교를 하는 탁발 수사의 규모가 커졌다. 탁발 수사들에게 대중과의 의사 소통과 설득의 중요성이 새롭게 대두되면서 빠른 시간 안에 텍스트의 분석과 정리가 요구되었다. 정보에 따라 세분화하거나 종합해 효율적으로 관리를 해야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도구로서 색인의 성공 여부는 독자들이 적절한 시간 안에 필요한 구절을 찾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색인으로 인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닌 사용하는 것으로 용도를 퇴색해버렸다는 평가도 있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검색 엔진을 사용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법하다(책의 마지막 장에서 다룬다). 지금도 검색만 하면 어지간한 정보는 모두 알 수 있다는 이유로 독서의 유의미성에 대해 논하는 것은 독서를 얼마나 편협하고 협소한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18세기에 들어서면 풍자적 색인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색인은 경멸의 대상이자 경멸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다. 



21세기의 소설이나 희곡에 색인이 없다. 왜 소설 색인은 얼마 가지 못하고 사라졌을까? 소설에 관한 색인 부분을 읽다보면 소설 색인이 왜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는지를 알 것 같다(기능을 못했다는 건 독자 입장인 나의 판단). 소설의 사건과 감정, 그리고 인물은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점이 많고, 소설 내에서도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든다('인간'을 다루다 보니 그럴밖에). 예를 들어 질투, 분노, 사랑, 우정 등 감정을 색인했을 때 그 한계를 어디에 둘 것이며, 악인 색인을 둔다고 해도 입장과 기준에 따라 선과 악이 달라질 수 있으니 이것 역시 단정하기 어렵다. 더구나 책에서 다룬 예들을 살펴보면 색인 그 이상의 역할울 하고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18세기에 소설 <클러리사>의 색인이 85쪽에 달했다는데, 이 정도면 중단편 소설의 분량이다. 


색인은 근대의 특성을 갖고 있다. 시간을 아껴주고, 멀게 만 느껴졌던 것들을 가까이 잡아당긴다. 19세기 존 펜턴이 만든 색인 협회의 로고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색인은 공부 혹은 독서의 이정표이자 길잡이(책에서는 열쇠라고 표현)가 되어준다. 
 
오늘날 해시태그 역시 색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시대에 SNS 유저들은 검색자인 동시에 분류자라고 할 수 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달라져도 색인은 나침반으로서의 역할을 지속할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점점 더 '검색'은 모든 면에서 필수가 될 테니 말이다.  


ㅡ 


[색인 만들기]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첫문장 또는 마지막 문장 색인. 예를 들면 찰스 디킨즈의 모든 작품의 첫문장(또는 마지막 문장) 색인.  


다른 하나는 편집자인 헨리 몰리에서 힌트를 얻었는데 '분노에 대한 색인'을 만들어 등장인물이 화를 내는 대목마다 목록을 작성하고 위치 표시를 하는 것. 그러면 독자는 소설에서 인간이 주로 어느 상황에 놓였을 때 화를 제일 많이 내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재밌는 색인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다보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많이 찾아본 사람이라면 익히 알겠지만, 웬만한 색인은 이미 거의 다 존재한다. 우리는 더 이상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찾기 위해 도서관을 찾을 필요가 없다. 또한 도서관에서조차 무인 검색대가 마련되어 원하는 자료를 사서의 도움 없이는 곧바로 찾을 수 있다. 시기(시대), 대상, 키워드 등 범위만 정해 검색 엔진을 돌리면 순식간에 많은 자료들이 넘쳐난다. 오히려 지나친 정보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더 큰 일이 되어버렸다. 원하는 주제와 범위만 정해 프로그래밍한다면 어떤 색인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색인은 더 중요한 위치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사장될 뻔한 색인의 화려한 부활을 반겨야 할지, 지나친 정보화 시대를 우려해야 할지 난감한 지경이다.   


ㅡ 
 
[실린 색인 중 재밌는 색인] 


* '꼬치 꼬치 캐묻는 사람 그리고 떠벌' 224
* '시간 낭비[수고하셨습니다ㅡ색인 작성자] / 시간가 지식 14~15, 394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