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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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부터 1992년까지 쓴 글인데, 1986년에 집중되어 있다.
이 글이 집단의 일상을 포착해 한 시대의 현실, 특히 신도시에서 느껴지는 현대성에 가닿으려는 시도라고 밝힌 작가는 포착한 장면에 끼어들거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가능한 피하려고 했지만, 당초의 예정과는 다르게 자신을 투여했다고 썼다. 







구급차에 실려가는 여인. 열차 안의 사람들. 쇼핑센터 안의 손님과 계산원 들. 대중교통에서의 에티켓과는 무관한 사람. 눈도 마주치지 않고 주문과 계산을 하는 채소 장수와 손님. 백화점 앞의 호객꾼. 노숙자. 타인을 향한 쑥덕거림. 지레짐작과 막무가내의 뒷담화. 자유주의 함께 등장한 단어, 무쓸모 인간. 20년간 유지되었다가 사라진 이민자들을 위한 임시 주거지. 작가의 눈에 들어온 사람과 장소 들. 


전철역의 노래하는 맹인과 개 한 마리의 조작, 그리고 동전을 던진 이들이 갖는 그날 하루의 보시에 대한 기대감. 인격이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모멸감 따위는 감수할 준비를 해야하는 먹고 사는 현장. 자신의 아이만 최고이기를 바라고 그 아이가 자라서 그들이 이루지 못한 계급에 속하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열망. 기계와 숫자로 '판독'되어지는 '나'라는 존재. 거지의 순종을 망치는 노출증 남성. 전철 안에서 타인의 태도와 말을 통한 의도없는 망연한 상상. 병원 응급실에서의 주저. 이입되는 타인의 죽음. 소비를 통해 은연 중에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표출하는 소비자. 쇼핑 카트에 담는 신도시 중산층 주민이라는 자부심. 생계를 위한 피지배자들의 파업을 열등한 존재의 우둔한 행위로 바라보는 시선들. 현실의 몰이해와 모든 척도를 자신에게 두는 일방적 견해와 판단, 뒤따라오는 이를 통한 자기만족과 안도감.   


​아니 에르노는 이 모든 것들에서 그녀 자신을 본다. 


ㅡ 


글 안에는 우리가 평소에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바로 근처에 있는 독자의 이웃 혹은 직장 동료 등 생활권 내에서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이들이다. 장소 역시 전철, 광장, 공원, 쇼핑센터, 미용실, 병원, 우체국 등 아주 익숙하다(개인적으로 나름 신도시라는 곳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참고로 책에서 언급한 도시는 꼭 신도시만의 풍경은 아니다). 


약 30여 년 전의 풍경에 대한 8년간의 기록은 형태를 달리해 여전히 우리의 모습을 띠고 있다. 신체 노출이나 '구걸'은 현실 세계가 아닌 SNS의 화면 안으로 들어가 더 많은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일자리 부족과 생계에 따른 경쟁은 '삶의 질'이라는 명분으로 더욱 치열해졌다. 출산율이 낮아지니 자식의 장래에 거는 기대치는 무한대로 높아져 감당할 수 없는 사교육비를 양산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도 부모도 만족하지 못하다. 아동의 아사는 극빈층에 대한 무관심에서 다른 범죄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타인을 향한 무례가 스스로를 우월하게 만든다는 얄팍하고 질 낮은 자신감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 제가 내뱉는 말들이 곧 자신의 인격임을 전혀 모르는 무지. 벗어나기 요원한 노동의 굴레. 그리고 더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한 여성 폭력.   


이러한 것들에 대해 작가는 타자화를 시도하지만 결국 인간이라면 누구나 크든 적든 공통된 점을 발견할 수밖에 없음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을 투영하게 됨을, 작가는 고백한다. 여러 군데에서 무척 공감했고, 종종 작가의 행동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너무 인간적이시다).



역자는 서문에서 '이화감異化感'이라는 새로운 번역어를 제시한다. 기존 한국어 번역을 존중한다면 '소외감'으로 번역하는 것이 상식적이지만, 따돌림의 감정이 아닌 자기 자신과 타자성으로 분열된 주체의 상태를 담아내기 위해 제시한 단어라고 각주를 달았다. '문화적 이질감'과는 다른 의미일까? 간혹 세대 간, 지역 간 차이에서 내가 종종 느끼는 감정이라... .  






자신들이 내 역사의 일부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심조차 않는 무명의 사람들, 내가 결코 다시 보게 되지 못할 얼굴들, 육체들 안에. 아마도 거리와 상점의 군중에 섞여 든 나 역시 타인의 삶을 지니고 있으리라.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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