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 페이지터너스
마샤두 지 아시스 지음, 이광윤 옮김 / 빛소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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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을 포함한 중단편 소설 다섯 작품이 실린 마샤두 지 아시스 선집이다. 실린 작품 모두 인상적인데, 다섯 편의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잘 것 없는 우월감, 알맹이 없는 허위와 허세, 의미 없는 미사여구, 사악한 칭찬과 찬사, 위장된 겸손, 이성, 그리고 광기와 폭력.  


<점쟁이>에서 부정을 저지른 두 인물을 통해 두려움은 이성을 멀게 하고, 인간은 제가 바라는대로 상황을 해석함을 볼 수 있다. <회초리>에서의 다미앙은 양심의 가책은 뒤로하고 너무나 손쉽게 권력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권력의 폭력성과 그 안에서 약자끼리 제 살 파먹기를 종용하는 구조를 짚고 있다.  








이 선집에서 압권은 표제작인 중편소설 <정신과 의사>다.

이 소설에서 모순은, 애초에 시망 바카마르치 박사가 목적한 것은 이성과 광기의 경계를 구분짓는 것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인간의 이성을 믿지 않는 듯 보인다. 인간은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경중의 차이일 뿐 대부분은 광기가 있으며 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읽혔다. "인간 이성을 마비시키는 바스티유 감옥" 이라는 표현 역시 역설의 의미를 담은 건 아닐런지. 


또한 시위대를 조직한 이발사 포르피리우 역시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시위를 개인의 정치적 야망으로 이끌어 나갔고, 시위의 당초 목적을 상실하고 말았다. 거기다 권력의 추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약제사 크리스핑 소아리스의 처세는 비열하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우리는 두려움과 공포가 이성을 앞지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정신의학과 과학에 대한 열정을 넘어선 광기, 명예를 탐하는 욕망. 박사의 열정이 오직 의학의 발전과 인류에 대한 봉사이기만 했을까. 더하여 금전적 이득을 취하지만 않는다면 과학의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도 무방한가.  


소설의 결말은 그야말로 블랙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한바탕 소동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정의와 공정과 공평보다는 불의와 불공정과 불공평이, 검소와 나눔과 배려보다는 사치와 탐욕과 이기심이 더 일반적이니, 따라서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이야말로 '정상'이고,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이 비정상이라는, 그래서 도덕성이 우월한 사람이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기막힌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어쩌면 세상 전체가 '카자 베르자 병원'이라고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고.   


이타구아이시市에는 단 한 명의 정신병자도 없다는 진실의 씁쓸함, 그리고 '겸손함'이라는 병명으로 카자 베르자 병원에 스스로 수용되기를 선택하고 끝내 퇴원하지 못한 시망 바카마르치 박사. 어쩌면 우리의 의문은 그가 카자 베르자에 입원할 '자격'이 있는지의 여부일지도 모른다.


<정신과 의사>를 읽다보면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을 시작으로 1799년 나폴레옹 정부 수립까지 숨가쁘게 지나간 프랑스 혁명의 단면을 보는듯 하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몇몇 나라의 독재 정권 시대를 연상케하고.   



사이사이 공포스럽기까지 한 소설들을 다 읽은 후 되짚어봤다. 19세기 중후반, 브라질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현재의 세계 어느 도시든 큰 괴리가 없다. 폭력을 단죄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고, 부정한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는데 개의치 않는다. 정직과 성실의 가치는 시대착오적인 구습으로 치부된다. 얄팍한 술수와 비겁함이 경쟁력으로 포장된다. 우리가, 내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 우리 사회가 '카자 베르자 병원' 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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