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애덤스의 비밀스러운 삶
부스 타킹턴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이자 세계대공황이 일어나기 전, 경기 호황과 풍요가 절정에 이르고 있는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물질만능의 세태를 애덤스 집안 사람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버질 애덤스는 애사심으로 똘똘 뭉쳐진 스스로 잉여 인력이 아니라는 자부심으로 회사와 사주에 충성하고, 애덤스 부인은 집안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모든 원인을 가난으로 돌리고 자식들만큼은 그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며 남편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를 닥달한다. 애덤스 부부는 계급 사다리를 타고 상류층으로 진입하고자 발버둥치는 당시 서민층 중년 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그들의 아들 월터는 가식적인 상류층 사교계를 혐오하고, 어머니나 누나와 달리 아버지를 고용한 사람(과 그의 가족들 및 주변 인물들)을 단 한 번도 친구라고 생각한 적이 없으며 그들을 '냉동 인간'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적대시한다. 하지만 월터 역시 돈 문제에 있어서 다른 가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혐오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와 욕망의 다른 표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인물은 주인공 앨리스 애덤스다. 소설 초반, 스물두 살 앨리스가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는 무례하다.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알고, 만나는 사람을 다 제 입맛대로 움직일 수 있으며, 자신이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머니와 동생을 폄하하고 모욕을 주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또한 아버지는 그저 잘 달래야하는 병자 정도로 치부한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앨리스의 다양한 모습이 드러난다. 남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부족함 없는 집안에서 누릴 것을 다 누린 여자'라는 가면을 쓰고, 뭇남성들로부터 인기가 많은 것처럼 허세를 부리며 연기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난을 자책하는 부모를 원망하지 않으며 오히려 위로하고, 아버지의 건강을 진심으로 걱정하면서 제 인생을 우선하는 월터의 이기적인(사실 정당한 거지만) 태도에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이 밑바탕에는 자신이 우월한 사람으로 베푸는 아량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또한 서슴없이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러한 행위에 자괴감을 느끼고, 순간순간 스스로 자아감에 대해 고민한다. 앨리스는 당시 상류층 진입을 욕망하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추앙받기를 갈망하는 여성의 여러 측면을 보여주는 입체적인 캐릭터다. 



소설에서 한 축을 이루는 요소는 '윤리'다. 가난으로 인해 비참한 처지에 내몰린 가족과 회사 기밀 사이에서 버질 애덤스는 갈등한다. 거짓말로 시작된 러셀과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갈수록 정교한 거짓말을 늘어놓은 것에 대한 앨리스의 때늦은 후회. 자식의 삶을 명분으로 삼으며 돈 앞에서는 도덕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는듯 남편을 닥달한 애덤스 부인. 자유로운 삶을 주장하고 상류층 사람들을 혐오하지만 결국 돈이 갖는 허영과 욕망의 덫에 무릎을 꿇고 마는 월터. 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지금까지도 다른 형태로 현재진행형인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코미디같으면서도 한없이 서글픈 것은 앨리스와 버질 애덤스의 불안이다. 버질은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벌이는 것에 대해 램브 사장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집착하면서 늙고 위엄있는 사장과 마주치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한다. 앨리스는 러셀이 사교계에서 험담이든 칭찬이든 자신에 대해 어떤 말을 들었는지 묻지만 사실 그녀를 언급한 사람은 없었고, 따라서 앨리스와 애덤스가에 대해 들은 얘기도 전혀 없다. 앨리스는 사람들이 러셀에게 자신과 자신의 집안에 대해 이런저런 험담을 할까봐 전전긍긍하지만 정작 그녀가 동경하는 그들의 세계에서 앨리스는 안중에도 없다. 더구나 앨리스가 아서에게 자기의 얘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 관해 하는 말은 듣지도 말라고 했던 당부가 오히려 앨리스의 발목을 잡은 꼴이 되어버렸다.


안타까운 것은 애덤스 집안의 식구들은 타인뿐 아니라 가족에게조차 어떻게 보일까를 우선하고, 상대에 대한 자신의 짐작과 생각을 사실로 단정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진솔하게 나누거나 이해하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원망을, 누군가는 의미없는 동정을 토해낸다.   



많은 일들을 겪고난 앨리스는 비로소 자신을 진솔하게 들여보고, 보여주기식 삶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무용한 일인지를 깨닫는다. 나는 이 부분도 서글프게 느껴졌는데, 결국 돈으로 결정지어져 고착된 '계급'에서 개인의 노력은 허망할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앨리스의 그동안 '노력'을 더 나은 삶을 향한 노력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애덤스 남매가 기실 지금의 많은 젊은 세대와 다르지 않다는 것 때문이다.  


소설은 불행한 인생을 대변하는 곳으로 여기며 그토록 끔찍하게 여겼던 곳의 계단을 오르는 앨리스가 삶을 긍정하는 전환점이 될지, 불행의 나락으로 스스로를 내몰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더 이상 누군가의 눈에 비춰지는 삶에는 생명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적어도 그녀는 더 이상 인형으로서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ㅡ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의 두 작품('앨리스 애덤스의 비밀스러운 삶', '위대한 앰버슨가')을 읽어보면 1920년대의 미국 사회의 전반을 그려내는 데에 있어서 그야말로 탁월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의 경제적 파탄이 일어나기 전의 풍요로운 사회에서 일어나는 폐해와 부작용을 지독하게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동시에 우리가 추구해야할 가치는 무엇인지를 짚어보게 한다.  


그의 소설이 매력적인 것은 어쩌면 원론적이고 뻔한 스토리가 돌 수 있음에도 무척 재밌다는 것이다. 소설의 중반으로 넘어가면 주인공이 맞이할 결말은 정해져 있다. 하지만 부스 타킹턴은 당연한 결말을 닫아놓지 않는다. 반성하고 다른 삶을 살겠다는 그들의 다짐과 변화된 행동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장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자는 씁쓸함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는 묘한 감정에 이른다. 1920년대 당시에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납득이 되는 작품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