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6
잭 케루악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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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삶을 찾는 두 젊은이의 이야기다. 샐 파라다이스를 1인칭 화자로 두고 있는 소설은 십대 시절부터 이미 밑바닥 인생을 경험한 거칠고 광기어린 딘 모리아티와 그를 동경하는 샐이 거의 무일푼에 가까운 여비로 미 대륙을 종횡하는 한편의 로드무비같은 작품이다. 


책임감이나 신뢰, 이타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딘 모리아티의 인생의 목표는 오직 '재미'가 전부다. 인생에 있어 진지함과는 거리가 멀고 필요하면 취하고 소용이 없어지면 버린다. 이런 딘을 샐은 '성스러운 바보'라고 부른다. 그게 바로 딘이라면서. 


그들에게는 어디로 간다는 종착지만 정해져 있을 뿐, 목적은 없다. 주유소에서 몰래 주유하고, 담배를 훔치고, 돈을 갈취하고, 외도쯤이야 예사로우며,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마약을 하고, 고작 40달러로 미국 일주를 하겠다는 그들. 그 와중에 샐이 사이사이 보았던 것은 산, 아름다운 해돋이, 이슬, 계곡의 풀밭, 강, 보랏빛 공기,  시시각각 변하는 황금빛 구름, 해질녘 노을이었다. 






 



모든 게 지긋지긋했다는 샐. 그는 하룻밤 같이 보내는 리타에게 인생에서 바라는 건 뭐냐고 묻는다. 그녀는 잘 모르겠다고, 그냥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살아가려고 애쓰는 거라고 대답한다. 샐은 인간이 삶을 이렇게 슬프게 만들 때 신은 도대체 뭘하고 있었던 걸까 생각했다. 누군가 딘과 샐에게 왜 대륙 횡단 여행을 하는 건지 물었다. 그런데 딘은 마땅한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샐 역시 언제 돌아갈 예정이라는 대답만 할 뿐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답하지 못했다. 스스로 명확한 이유를 몰랐으니까. 불현듯, 샐과 딘은 답을 찾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답을 찾기가 두려웠던 걸까.



샐이 딘에게 그토록 끌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이 규정해 놓은 '좋은 삶', '올바른 삶'이라는 시스템에 함몰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일까? 어쩌면 이러한 해석조차도 내가 만든 그럴듯한 포장일 수도 있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살고 싶었고,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샐은 길 위에서 달리며 생각한다. "내가 지금 월 하고 있는 거지? 어디로 가는 거야?"라고. 길 위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때때로 이와같은 생각을 하곤 하니까(나만 그런가?). 성별과 나이와 직업을 떠나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확신하고 사는 이가 얼마나 되겠나. 살아가며 차근차근 하나하나 해결할 밖에. 


길이 곧 삶이라고 여겼던 딘에게 있어 늙어서 부랑아가 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진짜 두려움은 자유를 잃은 속박된 삶일 것이다. 다른 이들이 붤 바라든 상관하지 않고 계속 자기만의 길을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딘이 진정 바라는 길이다.  


ㅡ 


무엇이 그들을 자꾸만 길 위에 서게 했을까?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위치, 사회 조직원으로서 가져야할 최소한의 의무, 연령에 맞춰 요구되는 규범 등 타의든 자의든 우리를 구속하는 것들은 수없이 많다. 누군들 한 번쯤은 예정없이 훌쩍 떠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법과 관습의 틀에서 벗어나 원하는대로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지 않을까. 그래서 아주 조금은 딘의 광기와 샐의 부유를 알 것 같기도 하고.  


지치지도 않고 도로에서 폭주하고 마리화나를 즐기고, 길 위에서 만나는 여성들과 정사를 벌이며, 동거와 이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광란의 시간을 보내는 그들에게서 사실 나는 젊음의 열정을 느끼지 못했다(내가 너무 마음을 닫고 읽으서 그럴수도 있지만). 마치 이 길이 아니면 숨을 쉬지 못하고 죽어버릴 것만 같아서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였다. 



여행을 좋아하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데에 거부감이 없지만 말 잘 듣는 착한 딸로 살아온 나로서는 어떤... 감정적 한계를 느끼면서 읽었다. 두 여자에게서 네 아이를 낳고도 결국엔 문을 박차고 나가는 딘이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커밀을 보면서 모험을 떠나겠다고 모아놓은 돈을 다 털어서 자동차를 산 뒤 자식조차 나 몰라라하고 나가버린 사람이 만약 여자였다면 이 소설이 과연 비트감 넘치는 청춘의 방황과 폭발적인 열정을 그린 소설로 평가 받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누군가는 그들(특히 딘)을 전쟁 직후의 혼란스러운 세태에 자유를 욕망하는 젊음의 초상이라는 말 대신 사회부적응자의 방종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딘은 이러한 비난도 가치 없는 일이라며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겠지.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쓰지 마."라고.  


이 소설의 매력은 딘과 샐이 길 위에서 스치듯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각자의 역사와 그들 삶의 풍경, 그리고 다채로운 도시의 모습이다. 두 사람의 여정에 구글 지도를 열어놓고 따라갔는데, 그 거리가 어마무시하다. 넉넉한 여비로 편안함을 추구하며 다녀도 힘든 여정이다. 그걸 무일푼으로 해내네... . 


모든 길은 이어지고 펼쳐져 있으며, 그 길 위를 걷는 모든 사람들이 꿈을 꾸기를, 샐은 바람한다. 하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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