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유혹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3
엘리자베스 폰 아르님 지음,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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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우리가 딱 한 번 우리끼리 멀리 가서 좀 쉬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건가요? 



지중해 연안의 중세 이탈리아식 작은 성에서 4월 한 달을 보낼 기회를 준다는 <타임스>에 실린 광고를 보게 된 로티 윌킨스 부인은 <타임스>를 유심히 보고 있는 다른 여성 로즈 아버스넛 부인 역시 그 광고를 읽고 있다고 직감한다. 두 여성은 산 살바토레에 가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지만 결정적으로 비용이 부족하다. 그들은 추가로 두 명의 멤버를 모집하고, 번거로운 여러 결정들을 빠르게 해결한 뒤 각자 이탈리아로 향한다. 마침내 산 살바토레에서 만난 네 명의 여성 로티, 로즈, 피셔 부인, 캐럴라인. 그들의 좌충우돌 한 달 살이가 시작된다. 마법과 사랑의 섬 산 살바토레에서.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박완서 선생의 소설로 시작해서 셰익스피어의 희극으로 끝나는 유쾌한 소동극' 이라고 하겠다. 산 살바토레로 향하게 된 이유가 제각각이듯 인물의 캐릭터 역시 뚜렷하게 구별되는 이 소설은 도입부에서 1920년대 여성들이 가부장제 사회의 관례에 따른 여성의 미덕에 갇혔던 모습들을 보여주다가 중반 이후 내용상 분위기가 급변한다.  


변호사로서 사회적으로 평판이 높고 오로지 성공만 좇는 남편에게 있어서 가정 내 자신의 존재가 오로지 '행복한 가정'의 전시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로티는 외롭고 어디에 갇혀있는 것처럼 답답하다. 도덕이 행복의 기준인 로즈 아버스넛은 남편이 외설적인 회고록으로 돈벌이를 하는 것을 그만두기를 바라지만 이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결국 남편과의 사이가 벌어져 서로 외면하는 처지에 이른다. 그럼에도 로즈는 늘 남편의 관심과 사랑이 그립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부유한 귀족 집안의 딸로서 어릴 때부터 뭇사람들에게 칭송을 습관적으로 받아온 캐럴라인은 소위 과잉보호 속에서 성장했다. 정해진 길 외에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없다는 낙담, 주변에 넘치는 허위와 가식에서 벗어나고픈 일념으로 산 살바토레에 왔다. 그야말로 '꼰대'의 전형을 보여주는 피셔 부인은 혼자 조용히 고독을 누리기 위해 산 살바토레에 왔지만, 사실 그녀는 많이 외롭다.  



1922년에 첫 출간한 이 소설은 지금의 독자가 읽기에 여러 작품이 연상될 만큼 잔잔하면서도 다양한 매력이 넘친다.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로즈와 로티가 마중나온 이탈리아 청년에게 겁을 집어먹거나 혹은 혼자 있고 싶어서 모르는 사람들과 이탈리아까지 왔는데 일하는 이탈리아인들이 잠시도 쉬지않고 번갈아가며 왔다갔다 하면서 끊임없이 조잘거리며 말을 걸어오는 통에 짜증이 치미는 캐럴라인, 자신의 권위가 전혀 통하지 않는 세 여자에게 혼자 분해서 동동거리는 피셔 부인, 멜러시의 목욕탕 폭발 사건, 멜러시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그의 속내도 모른 채 산 살바토레의 마법이 남편에게도 통했다고 믿는 로티의 미소, 로즈에게 호감을 보이다가 캐럴라인을 본 순간 한눈에 반해 정신 못차리는 토마스 등 동상이몽인 것만같은 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연이어 그려져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에서는 몇 가지 변화의 계기가 되는 우연, 가벼운 장난, 농담 등의 장치나 등장인물의 감정이 급변하는 모습은 마치 요정이 쏜 사랑의 작대기가 꽂힌 것처럼 의아할 정도인데, 이는 로티의 말대로 산 살바토레 자체가 마법을 부린다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소설은 시작과는 다르게 로맨틱 코미디의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어서 독자들에게는 유쾌한 시간을 선사한다.


나이와 살아온 환경이 다르며, 무엇보다 네 여성은 필요에 의해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다. 상대에 대한 선입견을 갖은 채 각자의 목적만 이루면 그뿐이라고 생각했기에 굳이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할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여기저기에서 삐걱거린다. 그때 이들의 심리적 구심점 역할을 하는 인물이 로티다. 천성적으로 쾌활하고 밝은 그녀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력이 뛰어나고 특히 통찰력이 예사롭지 않다(사실 산 살바토레에 도착한 후 가장 반전이 큰 캐릭터이다). 캐럴라인은 로티를 가리켜 '자유롭지만 친밀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데,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ㅡ 


9월 독서모임 선정도서였는데, 멤버들의 평도 아주 좋았다. 특히 읽는 동안 소설 속 그들과 너무 행복했다고.  


우선 등장인물 톺아보기를 통해 보여지는 것 너머 그들 네 여성을 비롯한 당시 여성들의 삶과 고민에 대해 얘기하고, 각자 자신이 어떤 인물에 가까운지를 말했는데 가장 많은 사람은 아무래도 로즈와 로티였다(아무도 자기가 피셔 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는!).  


소설 이후 산 살바토레에서 돌아와 마법이 끝난 일상에서의 그들이 이전과는 다른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 아니면 이 한 달 동안 마법의 힘이 적게나마 영향을 미쳤을지에 대해 나누면서 환경의 변화 혹은 여행을 통해 변화된 일상이 있었는지의 경험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달이라는 시간, 산 살바토레라는 장소. 
우리에게도 그런 마법이 주어지기를 기대하며 독서모임을 마쳤다.



인생에 있어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에는 사랑만한 게 없다. 캐럴라인은 허위의 사랑에서 벗어나려고 산 살바토레로 왔는데 그곳에 있는 모두가 각자 다른 사랑의 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아마도 현실의 우리 역시, 색채와 형태가 다른 각자만의 사랑의 단계를 거치는 중일지도.  







※ 출판서 독서모임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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