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십대 초반에 만나 인생의 대부분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실패와 성장을 반복해나가는 두 남녀의 이야기다. 이렇게 단순한 문장 하나로 정의하기에 이 소설은 복합적인 감정을 담고 있다.  


소설에서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성, 그리고 언어를 가진 인물들이 만난다. 한국계 이민 1세대를 비롯해 일본계 이민자, 유대인, 한국계 이민 2세대, 유대인과 한국계 미국인 혼혈, 일본인과 한국계 미국인 혼혈 등 각자의 입장에서 겪은 정체성과 차별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게임이라는 소재와 어우러져 흥미롭게 진행된다. 


소설의 진정한 시작은 1997년 게임 '이치고' 출시다. '이치고'는 셰익스피어의 <십이야>, 일본의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그림 <거대한 파도>에서 영감을 얻었다. 출시 10년 후 이에 대해 문화적 전유appropriation를 비난하는 비평가들에 대해 샘은 제 나라 문화만을 레퍼런스로 삼는 세상, 오로지 제 자신의 문화만을 옳다고 주장하며 다른 문화와 경험에는 눈멀고 귀먹은 세상을 비판하는데 이러한 맥락은 소설 전반에 걸쳐 있다.  


이치고 게임에서 눈에 띄는 점은 게임 속 '이치고'의 성별이 처음에는 불분명하다는 것. 샘과 세이디는 애초에 이치고의 성별을 확정하지 않았고, 게임 속에서는 아이로 남아있다. 즉 다인종 · 다민족 등 소설 속 청년들을 모두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는 짐작을 해본다. 이처럼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실질적으로 화면에 구현하는 게임을 만들면서 20대의 그들도 내적 성장을 이뤄간다. 돈과 명예, 사회적 성공, 우정, 사랑, 협력 등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 늘 따라다니는 가치라고 봤을 때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존재라는 생각도 잠시 스친다.  




 



백인과 한국인 혼혈인 샘은 상처받는 게 두려워 자신을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벅찬 사람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호의를 베푸는 것에 익숙치 않지만, 그는 말없이 내색하지 않고 친구를 걱정한다. 유복한 집안이었지만 난치병 환자였던 언니로 인해 부모로부터 방치된 유년 시절에 샘을 만난 세이디는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이성과 감정을 오락가락하는 인물이다. 마크스는 샘을 동생처럼 좋아했다. 샘을 보호하고 샘이 세상을 살아가기 좀더 편하게 도와주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주변을 챙기는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샘은 자신이 마크스에게 도움을 받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싶은 사람, 마크스.  


우리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사소한 일까지 우연과 선택의 연속 안에 살고 있다. 모두 다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 긍정의 순간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자의든 타의든 매순간 벌어지는 우연과 선택에 연연하지 말자. 애나와 샘이 비밀의 고속도로로 핸들을 돌리지 않았다면, 그들이 애초에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세이디가 '메이플월드'에 결혼 기능을 추가하지 않았다면, 마크스가 1층 로비로 나가지 않았다면, 앤트가 내려오지 않았다면... . 



소설 막마지에 세이디는 자신들이 그 시대에 태어난 게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조금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혹은 조금 더 늦게 태어났다면 지금보다는 더 힘들었을 거라고. 문득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운좋게도(?) 정부 차원의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를 피했고, 살인적인 실업사태를 청년기에 직격탄으로 맞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SNS가 대중화 되기 전의 시대를 살아본 경험이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열심히 하면 노력의 대가가 지금보다는 좀 더 명확했던 시대를 살았다. 


갈수록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겠다는 열망이 점점 더 커지는 세태다. 연예인의 데뷔 시기도 십대 초반으로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프로게이머, 유튜버, 가상화폐 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른 나이에 억대 수입을 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새삼스레 이러한 폐해에 대해서 구구절절 늘어놓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어떤 측면에서든 성공과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열정페이'나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의 말도 불편하고 거슬리지만, 비록 한때나마 순수한 열정 없이 자극적인 성공만을 바라보며 달리는 모습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마크스는 게임이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라고 정의한다. 무한한 부활과 무한한 구원의 가능성. 그 어떤 죽음도 영원하지 않은. 인간이, 혹은 인생이 그런 것 아닐까. 상처가 계속 상처로만 남지 않는다. 선택, 후회, 상처, 일시적 성공이 보이지 않는 어떤 반응으로 내일의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당면한 문제들을 겪어가며 우리는 세대를 이어가고 내일의 희망과 낙관을 바라며 동어반복하듯 생을 이어간다. 동현이 세이디에게 오락기 '동키콩'을 유증함으로써 샘과 세이디의 우정을 되새겼듯 우리는 죽음을 통해 삶을 확인하며 내일을 기대한다. 


소설은 허구다. 샘, 세이디, 마크스. 이들의 관계, 순전한 우정과 연민이 어쩌면 평행이론이나 우주를 날아다니는 SF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게 우리네 모습이다. 그래서 이런 소설을 사이사이 찾아 읽는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들의 모습을 현실에서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내 마음이 좀 부드러워지기를 바라면서.  



개브리얼 제빈의 작품을 세 번째 읽는다.
<섬에 있는 서점>은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있고, <비바, 제인>은 살짝 아쉬웠으나, 이 소설이 그 아쉬움을 덮었다.  


나도 이렇게 마크스가 그리운데, 그들은 오죽할까.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