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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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맛집을 소개하는 책이다. 다만 21세기 서울이 아닌 한양(서울)이 경성으로 불리던 식민지 시대의 경성 맛집 이야기다.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식민지 경험을 수긍하는 것이 아님을 저자는 미리 밝혀두면서 오히려 경성의 맛집에 드리웠던 식민지 그늘을 주목한다. 








경성시대에도 소위 맛집 핫플레이스가 있었다. 그것도 인기 메뉴를 맛보기 위해 온종일 줄을 서기도 했던, 그야말로 오픈런이 있었던 유명한 식당이 여럿이었다고 한다.  


이 책은 모두 열 곳의 맛집을 소개한다. 1부에서는 본정에 위치했던 네 곳의 음식점을 둘러보고, 2부에서는 종로에 있는 맛집 세 곳, 3부에서는 장곡천정과 황금정 특히 '조선호텔 식당'을 서술하는데 이와 함께 경성을 배경으로 하면서 이 장소들을 언급한 당시 소설들도 살펴본다.  


본정은 식민지 시대 경성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당시의 유명세에 비해 지금 본정의 위치를 정확이 하는 사람은 드문데, 대략 명동 부근이다. 명동에서 충무로까지 횡으로 이어진 상가가 발달한 상업 공간이었다. 식민지 시대 본정이 일본인들의 번화가였다면 종로는 조선인들의 거리였다. 지금의 종로 모습에서 한양 또는 경성의 화려한 중심가였던 종로의 옛 명성을 떠올리기는 어렵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움으로 남지만. 지금을 기준으로 장곡천정의 위치는 프라자호텔이 있는 곳, 황금정은 을지로에 해당한다. 황금정은 금융기관이 밀집되어있어 경성의 '월스트리트'로 불기기도 했다고.  


​김말봉 <찔레꽃>, 이태준 <딸 삼 형제>, 박태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염상섭 <삼대>, 이광수 <흙>, 채만식 <인형의 집을 나와서> <탁류> <금의 정열>, 현진건 <적도>,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홍성유 <인생극장>, 유종석 <냉면 한 그릇>, 김낭운 <냉면>, 심훈 <불사조> 등 근현대 소설가들의 여러 소설들과 그 소설들이 연재됐던 신문이나 잡지의 삽화들을 적게나마 엿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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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점한지 100년이 훌쩍 넘어서 지금도 영업 중인 '이문설렁탕'을 비롯해 당시 내로라하는 식당, 카페, 요릿집들이 모두 인상적이었는데, 아무래도 조선호텔이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조선호텔이 문을 연 것은 1914년 10월이다. 그 규모(특히 부지)가 엄청난 것도 있지만 조선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물로도 유명했다. 독일인 게오르크 데 랄란데가 설계를 했으며, 건축 자재  역시 독일을 비롯한 서양에서 수입했다고 한다. 랄란데는 총독부 청사, 경성역 설계를 담당하기도 했는데, 조선호텔은 당시 북유럽에서 유행하던 '유겐트 슈틸' 양식으로 지어져 이국적이고 우아한 모습으로도 유명했다. 읽다보니 사진 자료에서 보이는 조선호텔 공연실의 호화로움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되고, 근대에 지어진 건축물들이 왜 전부 비슷한 분위기로 연출됐는지 알만하다.   


조선호텔은 처음에 철도호텔로 개장되었다. 이는 조선호텔이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철도를 건설했던 목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대한제국 시절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인 '환구단'의 자리에 식민 지배를 위한 철도호텔이 중심에 있고, 신위판을 봉안하는 부속 건물인 '황궁우'가 호텔을 돋보이게 만드는 배경이 되게끔 했다는 것은 일본 제국과 식민지 조선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저자는 조선호텔이 위치했던 장곡천정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면서 조선호텔이 위치한 공간의 의미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짚는다. 


1936년 조선호텔 식당의 정식 메뉴판을 보면 종업원으로 보이는 여성 그림이 있는데 의복이 독특하다. 개량한복처럼 보이기도 하고. 정말 깜짝 놀랐던 부분은 당시 조선호텔의 방값이었다. 하루 방값이 12만원이었는데, 지금 시세로 따지면 60만에 해당한다.



몇 가지 재밌는 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배달이다. 책의 삽화에 보면 국수나 설렁탕 배달은 쟁반을 이용했다면 중국음식점 배달은 지금과 비슷한 손잡이가 달린 통이었다(지금과 아주 흡사하다). 다른 또 하나는 '낙랑파라'의 사진이나 내용을 읽어보면 그곳이 예술가들의 살롱 역할을 한 장소가 아니었나싶다. 사진을 보니까 왠지 낭만적으로 느껴지고 괜히 흐뭇해진다.  


책을 읽으면서 신기한 점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건물의 규모, 메뉴의 특성, 변화한 입맛, 달라진 사회 정서 등을 고려해야겠지만, 한 예로 당시에 전문 디저트 카페가 있었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놀라웠다. 또한 특별한 목적 없이 거리를 걸으며 윈도우 쇼핑을 즐겼던 당시의 젊은이들 모습에서 지금의 우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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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다. 제목처럼 단순히 경성 맛집 투어에 그치지 않는다. 그 당시 경성 중심가의 모습과 사회 계층의 구조나 생활상, 무엇보다 조금 생소한 근대의 문학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짧게나마 만나볼 수 있다는 매력이 가장 크다. 또한 책장을 넘길 때마다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저절로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런데 읽다보면 조금씩 씁쓸해진다. 서문에서 저자가 말했듯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이 얼마나 소리없이 교묘하게 조선의 일상에 침투했는지 느껴지고, 열악한 근무 조건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일해야 했던 당시 조선인의 위치가 어땠는지를 새삼 깨달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먹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다. 그래서 요즘 한창 유행인 소위 '먹방'이나 그와 관련한 콘텐츠나 프로그램을 거의 시청하지 않는다. 외식도 즐기는 편이 아니고 일상의 끼니는 웬만하면 직접 만들어 먹는 게 편하다. 여행이나 답사를 갈 때도 검색하지 않는 부분 역시 현지 맛집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자 했던 이유는 저자가 서문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그 시대의 맛집을 살펴본다는 것은 곧 동시대의 문화를 알 수 있기 장치이기 때문이다. 어떤 음식이 유행했고, 유행한 계기는 무엇이며, 변화된 식생활 문화가 미친 영향까지 짐작하다보면 당시를 살던 사람들을 이해하고, 생각지 못했던 지금의 우리를 반추하게 된다.   


재미있는 경성 여행이었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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