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커다란 초록 천막 1~2 세트 - 전2권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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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e Gut, Alles Gut" 
 

프롤로그에서 스탈린의 사망 소식을 시작으로 하는 소설은 그로부터 2년 전인 1951년부터 1990년대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은 구심점 역할을 하는 일리야 이사예비치 브랸스키를 중심으로 가지를 뻗듯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인연이 교차하고 격동의 소련을 관통하면서 당시를 살아낸 그들의 삶과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그 많은 등장인물들(내가 헤아린 것만 칠십 여명이다)이 직.간접적으로, 크든 작든 일리야와 연관이 있다는 것. 또한 인물들의 관계, 사건과 갈등의 인과 과정 등이 시간의 순서가 아닌 관점에 따라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소설이 진행될수록 밀도감은 더해진다. 같은 시기 혹은 같은 사건을 등장 인물 각각의 관점으로 조망하며 미처 드러내지 않았던 사건의 진실과 반전들이 여러 입장을 통해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더하여 실제 사건, 허구의 인물과 실제 인물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어 마치 소설이자 르포르타주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작가의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커다란 초록 천막>은 그야말로 작가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2권에서는 당시 소련(특히 모스크바)의 서민층과 소수 민족의 삶을 대변하는 이들이 등장하는데, 매 장章마다 쓰여진 하나의 에피소드들이 연결되면서 한 권의 연작소설이라고해도 무방할만큼 내용이 다채롭다.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소설 전반에서 전해지는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예술적 지식과 소양, 그리고 감성이었다. 이러한 문학, 음악, 미술, 문화 등의 장치는 이 소설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며 저항과 투쟁의 정신을 보여주는 일리야, 일리야에게 인생을 던진 올가, 유대인이지만 러시아인이자 어른으로서 남고자 했던 미하, 섬세하고 유약해보이나 어쩌면 그들 중에서 가장 의리가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냐. 이외에도 각자의 뜨거운 서사를 안고 있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주마등처럼 스친다.  


사랑과 우정, 이념과 신념, 민족성과 정체성, 냉전시대의 잔혹함, 모두가 고아였던 시대의 끔찍함, 선한 믿음, 스승에 대한 존경과 제자를 향한 애정, 정의와 불의, 강요된 선택,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아름다웠던 사람들과 그들이 독자에게 던지는 삶의 의미.  



읽는 내내 얼마나 마음이 들썩였는지 모른다. 일리야와 올가의 삶에 아팠다가 미하의 서사에 먹먹했고 사냐의 삶에 안도했다. 류드밀라와 주니어 '일리야'의 이야기에 안타까웠지만 코스탸의 따뜻한 마음에 울컥했다. 그와같은 이들이 어디 한둘이었으랴. 책을 덮으면서 마치 내가 그들과 함께 한 시대를 살아온 양 뭉클해졌다.   


올해 읽은 소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516.
천재란 시나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에 그치지 않고 강이나 호수에 떠다니는 쇄빙선 같아서 시대를 앞서가서 벽을 부수고 얼음을 깨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서 그의 뒤에 오는 온갖 크고 작은 배와 보트가 다닐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야. 천재 뒤에는 가장 영리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따르고, 그들 뒤에는 군중이 따라와서 결과적으로 새로운 발견은 상식이 돼. 평범한 사람들은 천재들의 노력과 시간의 흐름 덕분에 점점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지. 그들은 시간을 앞서가는 사람들이고 말이야." 


518.
가치 있는 모든 것은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그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 같아. 왜냐하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것이 존재하고, 그런 세계가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거든.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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