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시대, 중세 - 폭력과 아름다움, 문명과 종교가 교차하던 중세 이야기
매슈 게이브리얼.데이비드 M. 페리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중세 유럽을 연구하는 역사가 두 명이 공저한 책으로서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 시대 들여다보고 중세에 대한 고정관념과 이해하는 방식을 해체하고자 한다. 그들이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중세가 '암흑시대'였다는 수 세기에 걸친 신화에서 벗어나 있으며, 시각을 바꾸어 소외된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음을 전한다. 


콘티탄티누스 1세 사망 무렵의 고대 후기부터 비잔티움과 페르시아, 예루살렘과 메카, 이슬람의 팽창, 그리고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중세 초기의 브리타니아, 이후 카롤루스 왕조, 광범위했던 바이킹의 흔적, 프랑크 왕국과 십자군 전쟁,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의 다문화주의, 다채로운 마법으로 장식됐던 12세기의 유럽, 제4차 십자군 원정에서 자행된 폭력과 학살, 황제와 교황의 권력 다툼, 13세기 왕권의 중심지로 부상한 파리와 가장 기독교적인 왕 루이 9세의 치세, 프란치스코회와 몽골 제국, 유럽을 비롯해 흑사병이 휨쓸고 간 14세기, 그리고 중세 시대를 관통하고 지배했던 종교를 서술한다. 







 
다른 관점과 시각을 강조하는 이 책의 시작이 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갈라 플라키디아라는 여성의 서사로 시작하는 점이 인상적인데, 이 여성을 통해 대대로 로마의 멸망이 암흑시대의 시작이라는 판단이 무 자르듯 단순하지 않고 좀더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5세기 초 내내 로마의 연속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인물로 갈라 플라키디아를 꼽는다. 또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아내 테오도라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 권력자들에 대한 묘사와 가부장적의 질긴 힘을 읽어낼 수 있음을 얘기한다. 더하여 성적 능력을 여성의 출세와 연결하는 관행이 문학과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 오히려 남성들이 두려움을 느꼈다는 증거라고 말하는데 이 부분 역시 남성중심의 역사관에서 드러나는 시대의 한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6세기 후반과 이후 바이킹까지, 당시의 제한적인 위치에도 불구하고 여성 권력자들이 가졌던 주체성은 이 책의 곳곳에서 언급된다. 그리고 '암흑시대'는 폭력적인 남자들과 순종적인 여자들의 세계,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세계를 상상하지만, 사료에 주목하는(이면에 숨겨져 있는) 중세는 훨씬 더 미묘하고 복잡한 것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벨리사리우스가 라벤나에서 황제가 될 수 있는 유혹을 물리치고, 황제와 로마 제국에 충성을 한 이유를 6세기 초 로마 세계의 정치적 현실과 권력 지형의 중심에 있다고 판단했다. 3개 대륙 출신의 사람들이 모인 콘스탄티노폴리스야말로 다양성의 측면에서도 전형적인 로마 도시다.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근거지로 통치하는 로마인들은 스스로를 결코 '비잔티움인'이라 칭하지 않았고, '로마인'으로 자처함으로써 변화가 아닌 연속성에 의의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중세 내내 로마가 복수형으로 존재했다고 생각하며 전형적인 제국의 유일하고 진정한 후손을 가려내는 데에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연관성과 정통성을 주장한 사람들의 방식과 그 동기를 분석해야함을 짚는다.  


공존은 쉽지 않고 어제나 불평등하지만, 최소한 이슬람교가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도처에서 빨리 전파될 수 있었던 비결이 되었다. 이슬람교가 도래하면서 개종을 강요하는 압력이 초래된 것은 분명하나 로마와의 지적 연속성도 잃지 않았다.   


알다시피 중세 세계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현대와는 완전히 달랐다. 정치가 종교였고, 종교가 정치였다. 사회 범죄들은 국왕의 사법권에 의해서 처리되어야하지만, 11세기에는 신으로부터 버림받는 처벌을 받았다. 12세기는 유럽사에서 의미심장한 세기다. 문학이 번성했고, 학교가 급성장했으며, 중앙집권 국가가 부활했다. 이 때는 십자군의 시기, 황제와 교황의 시기, 철학과 학술 논문의 시기였다(스콜라 철학이 본격적으로 번성한 시기이기도 하다).  



모든 순간들 중에 중세의 끝이라는 자격을 완비한 것은 없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처럼 역사에는 명확하게 구분지을 수 있는 출발점이나 종착점이 없다. 그럼에도 천 년에 이르는 역사의 한 부분을 하나의 명제로 단순화했다. 그러나 저자는 암흑, 그리고 한편으로는 빛의 시대는 인간성에 내재된 온갖 가능성을 담고 있기에 인류 역사에서 중추적인 장소이자 시간이라고 말한다. 빛의 시대 내내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경계를 넘어 다녔다. 정치적.종교적.언어적.문화적 차이를 뛰어넘어 중세 시대의 모든 지역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연속성'과 '복잡성'이다. 온갖 요소들이 담겨 있는 중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한층 더 복잡하다.  


세상은 정체하지 않고 끊임없이 돌고 돈다. 유럽 최대의 도시 주거지들은 여러 세기에 걸쳐 정치, 경제, 농업이 발전했다. 잉여 식량과 잉여 인구가 증가했고 지역 경제들이 싹텄다. 시민들은 다양한 형태의 중첩된 공동체에 참여했고, 길드 같은 여러 기능을 겸비한 공동체들이 활동했다. 또한 이를 같이해 여러 정치 체제들이 이합집산을 반복하며 변화해갔다. 그렇다고해서 이 책은 중세 시대가 그야말로 '빛의 시대'라고만 얘기하지 않는다. 단지 '암흑시대'라고만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면에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서사들을 통해 시각을 바꿔보자면 '빛'이 공존했던 시대였다는 것일테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과연 어떤 시대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여전한 차별과 유리 천장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등급과 계급이 존재하고, 보통의 사람은 미처 생각지도 못할 온갖 프레임들이 난무하며 부지불식간에 이를 당연하게 여기게끔 되는 현재는 암흑인가, 빛인가. 아마도 '암흑시대'는 인류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지속될 것이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빛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우리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인들에 대해 서술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에 역사를 예정된 결론을 향해서 필연적으로 돌진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음을 짚으면서 역사는 절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음을 강조하는데, 이에 대해 공감하는 바다.  


개인적으로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그 지점에 대한 가려운 부분들을 읽을 수 있어서 만족스러운 읽기였다.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