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지에서 생긴 일
마거릿 케네디 지음, 박경희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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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8월 22일, 소설의 프롤로그에서는 절벽의 붕괴로 펜디잭 매너 호텔이 주저앉아버렸고, 사망자와 생존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미리 알려준다. 책을 읽으면서 독자가 궁금해지는 부분은 과연 누가 살아남았으며,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호텔 주인인 시달 가족부터 투숙객에 이르기까지 평범하지 않다. 너나할 것 없이 이기심, 자만과 교만, 거짓과 비열함, 나태와 무관심, 허영과 위선, 폭력과 완고함, 자격지심과 피해의식 등으로 뒤엉킨 인간군상의 집합소처럼 그려진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인 레이디 기퍼드, 타인의 불행을 통해 즐거움을 찾는 미스 엘리스, 형의 헌신과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더프와 로빈, 자식을 편애하는 것을 정당하게 생각하는 시달 부인, 자신이 세상에서 중요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랙스턴, 강압적인 아버지 때문에 자존감이 바닥에 있는 이밴절린, 희생을 통해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했던 제리, 딸을 잃고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는 페일리 부부, 마치 세상사에 있어 초월자인 양 구는 은둔자 딕 시달, 세상의 모든 불행을 짊어진 사람처럼 구는 코브 부인, 자격지심에 엇나가는 열 살 소녀 히비와 다른 모습이지만 같은 아픔을 안고 있는 코브가의 세 자매 등 이들 외에도 우리 주변에서 있을 법한 인물들이 이야기를 엮어간다. 



우리는 종종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구속하고, 어느 누군가의 친절과 헌신에 감사하지 않는다. 타인의 상실과 슬픔에 대해서 가벼운 위로를 던지면서 곧 잊어버리고, 나의 결핍에는 과장되게 고통을 지운다. 무심함이 세련됨이라고 착각하는 세태 속에서 자신의 행운보다 타인의 불행에 더 희열을 느끼는 미스 엘리스의 모습이 소설 속 캐릭터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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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목요일에 펜디잭에서 머무는 사람들의 열띤 논쟁에서 절정을 이룬다. 정치, 권력, 평등과 공정, 신분, 차별, 돈, 이념, 도덕 등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는데, 그들의 말만큼이나 행동이 일치하는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가난해 본 적이 없는 자가 말하는 가난이 가져다주는 행복, 타인에 대한 배려와 너그러움이 없는 자가 말하는 교양, 자신이 가진 힘을 비열하게 사용하는 자가 말하는 계급투쟁, 자식을 억압하고 강요하는 자가 말하는 신의 사랑과 가르침,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가 말하는 공정, 제 처지에 대한 분노로 가난이 모든 죄의 면죄부인 것처럼 항변하는 과부, 비열한 처세술로 살아가면서 노동의 가치를 부르짖으며 노동량과 노동 시간 단축을 주장하는 하층민, 가난의 원인을 개인의 무력과 게으름에 두고 그들의 욕망을 허영이라고 단정하는 상류층 인사, 골방에 틀어박혀 가정사를 포함해 주변 모든 일을 외면하면서 사회적 구조의 결함과 도덕불감증을 지적하는 은퇴한 법조인. 세상의 부조리를 조목조목 짚는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다. 모두 옳다. 하지만 그들의 성토는 공허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페일리 부인이 스스로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면 싸움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밴절린에게 건넨 조언, 딕 시달이 말하는 자만심과 자존감, 그리고 인내와 굴종의 차이, 삶과 사람이 중요하며 인간은 모두가 외롭고 누구도 타인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낸시벨의 깨달음은 눈여겨 읽을 만 하다.  


붕괴사고에서 살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만약 그 기회들 중 단 한 번이라도, 어느 한 사람이라도 주의를 기울였다면, 그들은 모두 살았을 것이다. 펜디잭 호텔에 머무는 사람들은 각자 제 말만 하기에 급급하고 누구의 말도 경청하지 않는다. 생존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살아있는 이유가, 소설이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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